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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서울동물영화제 존폐 논란, ‘해체’와 ‘재정비’ 사이

집행위원회 “사전 협의 없는 사실상 해체”… 카라 “폐지 아닌 재정비일 뿐”

제8회 서울동물영화제 개막식 전경.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서울동물영화제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3월31일 서울동물영화제 집행위원회(김현미, 김현민, 손수현, 신은실, 왕민철, 장윤미, 황미요조)는 “영화제 주최 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가 일방적인 영화제 해체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카라는 “올해 영화제를 개최하지 않기로 한 것은 맞으나 중단이나 폐지가 아닌 재정비”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측의 입장 차이는 단순히 올해 개최 여부를 둘러싼 갈등을 넘어선다. 집행위원회는 이번 사안을 2023년 이후 누적된 변화의 결과로 보고 있으며, 카라는 단체 운영 전반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내려진 판단이라고 설명한다. 갈등의 배경에는 영화제의 성격과 역할을 둘러싼 시각 차이, 지난 3년간의 조직 변화가 맞물려 있다.

일방적 해체 vs 자원 조정

집행위원회는 갈등이 심화된 시점을 2023년 하반기로 본다. 같은 해 10월, 6회 영화제 폐막 이후 카라가 조직 재편을 단행하면서 영화제가 속해 있던 교육팀이 해체됐고, 영화제팀은 조직도에서 삭제되며 독립적인 위치를 잃었다는 설명이다. 이 시기부터 영화제 관련 논의가 줄어들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무자 참여가 제한됐다는 것이 집행위원회의 인식이다. 2024년 초부터 영화제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기존 집행위원회는 해산을 요구받았다. 황미요조 서울동물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당시 “왜 집행위원회가 해산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으며 “이후 집행위원이 위원을 추천할 수 있는 구조를 통해 6월에 새 집행위원회를 꾸렸으나 운영 과정에서 배제는 이어졌고, 2024년에는 전년 대비 30% 이상 삭감된 예산으로 치러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2025년 영화제는 전년 대비 80% 삭감된 예산으로 개최됐다. 집행위원회는 2026년 2월, 2026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 수립, 영화제의 향후 운영에 관한 공식 질의를 카라에 전달했으나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열린 정기총회에 제출된 전체 예산안에서 영화제 예산은 전액 반영되지 않은 채 통과됐다. 당시 총회 과정을 온라인 중계로 지켜본 황미요조 프로그래머는 “총회에서 제시된 영화제 관련 자료는 충분하지 않았고, 발언권이 고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영화제 향방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답변 없이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집행위원회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영화제 존속 여부에 대한 판단이 사실상 내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제 존폐 논란에 대해 전진경 카라 대표는 서면 답변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전 대표는 올해 영화제를 개최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현재 여건에서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우선 투입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카라는 동물 구조와 보호, 정책 대응, 재난 상황에서의 긴급 구호 등 생명과 직결된 영역에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이런 조건에서 영화제를 예년과 같은 방식과 규모로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영화제의 의미가 줄어들었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재정 여건 역시 고려 요소로 언급됐다. 전 대표는 “후원 감소의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핵심은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특정 사업의 중단을 단체 전체의 위기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현재는 자원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을 ‘중단’이나 ‘폐지’가 아닌 ‘재정비’로 규정한 점도 강조했다. 전 대표는 “안정적인 운영 기반과 재원을 마련한 뒤 다시 개최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구체적인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운영 구조를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했다.

서울동물영화제의 가치

집행위원회는 서울동물영화제를 시민사회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온 ‘공적 자산’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제 존속 여부 역시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집행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영화제 성과의 계승과 사업 지속 보장 ▲해체 시도 중단 ▲운영 과정에 대한 설명과 대책 제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황미요조 프로그래머는 “3년간 예산 삭감과 조직 내 배제를 견디며 영화제를 이어온 이들이 지금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올해 개최에 대한 확답이 아니다. 그동안 축적한 활동과 성과를 정당하게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동물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고평가를 받고, 2025년 영화제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관객수 6% 성장을 달성하며 신뢰와 자생력을 증명했다. 동물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발간, 관련 영상 모니터링, 영화 제작진과의 포럼 등을 통해 동물 출연 영상 제작 문화를 개선하는 데 기여해왔고 시민 교육, 문화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관객과 함께 성장했다. 이 점에서 지켜져야 할 이유가 분명한 영화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라는 영화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한 내부 평가가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진경 대표는 “서울동물영화제는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그 가치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결정이 시민과의 접점을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방식의 변화일 뿐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행위원회는 공동성명에 대한 카라의 입장을 기다리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설사 영화제가 현재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역사를 이어갈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카라는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구조와 보호, 정책 대응 등 현장 중심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거듭 밝혔다. “문화사업 역시 중단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제의 필요성과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지속 방식과 시점, 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서울동물영화제의 향방은 양측의 추가 논의 여부에 달려 있다.

서울동물영화제는

2018년 동물권행동 카라 주최로 출범한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영화제다. 첫해 상영작을 4개국 6편으로 시작한 영화제는 최근 28개국 48편까지 출품작을 늘리며 외연을 넓혀왔다. 동물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을 바탕으로, 비거니즘과 기후 위기, 환경문제 등 동물과 인간, 생태를 둘러싼 다양한 의제를 영화와 포럼을 통해 확장해왔다. 운영 전반에서도 환경적, 윤리적 가치를 실천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인디스페이스, 한국영상자료원, 국립현대미술관 등과의 협업을 통해 영화와 동물권의 접점을 넓혀왔으며, ‘동물권 활동가를 위한 인권 길라잡이’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등 관련 담론 형성에도 기여해왔다.

사진제공 서울동물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