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경찰과 도둑의 부당하고 타당한 이상거래, <크라임 101>

한 남자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나 각질 따위를 꼼꼼하게 털어낸 뒤 집을 나선다. 고급스러운 직업을 가진 줄 알았던 슈트 차림의 이 남자는 차를 몰던 도중에 신호 대기 상태에서 갑자기 복면을 뒤집어쓴다. 자신을 뒤따라오던 운전자를 납치하기 위함이다. 그는 보석 절도범 마이크(크리스 헴스워스)다. 아주 신중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며,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 명민한 도둑.

그리고 보석털이범 마이크와는 전혀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남자가 있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면 아내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는 남자는 노년의 안락함 따위와는 거리가 먼 로스앤젤레스 경찰 루(마크 러펄로)라는 인물이다. 영화는 루와 마이크의 상반된 아침 풍경을 보여준 다음 또 한명의 등장인물을 보여준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샤론(핼리 베리)은 매일 아침 두터운 화장으로 자신의 많은 경력과 나이를 감추려 애쓴다. 아직도 임원으로 승진을 못하고 있으며, 거추장스러운 보석과 화려한 의상을 두른 채 무례한 부자들의 비위를 억지로 맞추는 일을 하는 중이다. 이들 세 사람은 의도치 않게 서로의 삶의 반경이 얽히고설키면서 스스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영국 제작사 워킹타이틀과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손잡고 만든 <크라임 101>은 범죄스릴러의 대가 돈 윈슬로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돈 윈슬로는 그의 대표작인 <개의 힘><카르텔><국경>시리즈를 쓴 뒤에, 고독하고 철두철미한 로스앤젤레스 배경의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을 썼고, 거액의 판권 경쟁에서 넷플릭스를 제치고 승리한 아마존 MGM에 의해 영화화됐다. 이야기의 규모에 비해 꽤 많은 9천만달러가 투입됐다. 덕분에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이 집결했다. 마블 세계관 통합을 먼저 이룩한 것처럼 보이는 토르, 헐크, 스톰을 연기한 주연배우들의 조합을 비롯해 <덩케르크> <킬링 디어>의 배리 키오건, <탑건: 매버릭>의 모니카 바바로, 제니퍼 제이슨 리, 닉 놀티 등이 출연한다.

유능하지만 외골수인 탓에 아내도 떠나고 직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찰 루는 오직 마이크를 검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마이크는 범죄자로 사는 삶이 슬슬 피곤해지던 차에 평범한 여성을 만나 마음을 빼앗기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에 치이고 젊은 후배들에게 일자리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샤론은 우연히 마이크를 만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남자 오먼(배리 키오건)이 등장해서는 이 모든 판을 뒤엎으려 한다.

완벽한 범죄 트릭의 허를 찌르는 수사, 스펙터클한 규모의 미학을 선사하는 범죄스릴러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크라임 101>은 거액의 절도 범죄에 휘말린 세 사람이 도덕적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심리묘사에 좀더 치중한다. 멋진 카 체이스 추격전이나 하드보일드한 총격전은 등장하지 않는 대신, 가슴을 울리는 엔딩이 기다린다.

CLOSE-UP

범죄스릴러가 이토록 잔잔하게 진행되는 게 어색하다 싶을 때쯤 오먼이 난데없이 등장해서는판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출신지나 가정환경 등 배경에 관해서는 아무런 묘사가 되지 않는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지령을 받으면 무조건 행하고 마는 저돌적인 범죄자 유형은 예측 불가의재미를 안겨준다. 혼돈을 추구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이 남자는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다.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는 범죄영화에 균열을 일으키는 그의 존재감을 주목해야 한다.

CHECK THIS MOVIE

<블리트> 감독 피터 예이츠, 1968

원작 소설 자체가 할리우드의 ‘킹 오브 쿨’, 스티브 매퀸에게 헌정을 바치는 이야기다. 차갑고 냉철한 도둑 마이크와 집요하고 끈질긴 형사 루의 이미지는 모두 <블리트> <겟어웨이>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와 같은 영화에서 보여준 스티브 매퀸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만든 캐릭터다. 극 중 형사 루가 은퇴 후에 몰고 싶어 하는 자동차로 언급되는 차종이 바로, <블리트>의 카 체이스 장면의 상징과도 같은 1968년형 포드 머스탱 패스트백 GT 390이다. 이 차가 영화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주목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