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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의 해상도를 높이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본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바야흐로 전세살이 기피 시대. 2025년 국토교통부에서 보고한 ‘전세사기 피해 실태조사 결과 및 피해자 지원 현황’에 따르면 전세사기특별법에 의해 피해자로 공식 결정된 것만 총 3만400건. 세입자 227명이 엮인 강서구 빌라왕의 단일 피해 규모는 426억원에 달하고, 2024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깡통전세·전세사기 집주인을 대신해 되돌려준 보증금만 4조5천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피해자 4명 중 3명은 2030 청년층. 그리고 이 안에 ‘나’도 있다. 우리 집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특이하다. 우리 지역에 빌라 1천채 이상을 보유한 A가 있는데(전세사기피해자지원센터에서 그의 이름을 말하자 모두가 아는 이름이라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어머니와 전 여자 친구가 바로 우리 집 공동명의 주인이다.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임대인 조합. 이토록 기괴한 상황에서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피해자 인정 받기, 경매 입찰 알아보기, 그리고 혼자서 울기뿐이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건물주 기수종(하정우)이 맞닥뜨리는 소동을 그린다. 수종은 퇴직금, 대출, 사채, 심지어 장인의 선산까지 끌어모아 세윤빌딩을 샀다. 사랑하는 딸 다래(박서경)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빠가 건물주잖아”이고, 주변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난 건물 있잖아”다. 친구 활성(김준한)은 자꾸만 꼬마빌딩이라고 낮잡아 부르지만 이것이 수종 인생의 최대 업적이자 그의 정체성이고, 가족들을 향한 미안함을 상쇄시켜주는 유일한 끈이다. 그렇기에 수종은 건물에 매달려야만 한다. 영끌한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전단지, 대리, 배달, 택배, 배관 청소까지. 게다가 세입자 관리는 왜 이리 힘든지. 공실은 채워지지 않고 각종 수리 민원은 시도 때도 없다. 그러니까 수종은 너무나 가엾고 측은한 건물주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활성이 자기 아내 이경(정수정)을 납치한다. 바로 수종네 건물 지하 냉동창고에. 지역에서 현금 부자로 유명한 전양자(김금순)의 외동딸을 두고 익명의 협박을 하면 어차피 언젠가 받을 유산, 미리 당겨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수종을 유혹한다. “언제까지 무시당하고 살래? 내가 끼워줄게.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돈만 받으면 아무도 다치는 사람 없어. 다 안전해. 이경이는 내 와이프잖아.” 그리고 딱 이틀간, 하루에 세번 신경안정제를 주사하라는 주문을 남긴다. 황당한 제안이지만 더 황당하게도 수종은 이것을 거부할 수 없다. 기존 채권자가 대출 채무를 리얼캐피탈에 위임하면서 당장 다음주까지 일부금 10억원을 상환하지 않으면 경매 및 차압을 진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목숨과 같은 건물을 잃을 수 있다.

작은 거짓말이 걷잡을 수 없는 범죄와 난투극으로 꼬여가는 드라마는 수종이라는 애처로운 가장을 통해 ‘건물주’라는 욕망에 담긴 세속적 서글픔을 보여주고 싶은 듯하다. 건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납치극이라도 해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여기서 오늘날의 아버지니 애환이니 그런 곁가지를 빼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시청자가 궁극적으로 따라가야 할 주인공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사건의 진실이 아슬아슬하게 밝혀질락 말락 하는 순간, 우리가 응원하게 되는 주인공은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진 사람인가? 기수종은 한마디로 제 건물을 지키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그러나 서글픈 서민이라는 낭만적 설정으로 모든 죄를 희석시키는 인물이다. 극 중 수종이 자기합리화로 내세우는 말과 행동은 실제 전세사기범들이 늘 반복하는, 지긋지긋하리만치 흔한 것들이다. 건물을 유지하느라 세금 낼 돈이 없었다고.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도 세금이 N억원 쌓여 압류당하고 말았다고. 그리고 현실에 놓인 뻔뻔한 마침표. 건물이 가압류되어 보증금을 줄 수 없다고. 제 건물을 불리기 위해 어린 세입자를 볼모 삼는 사기범들과 제 꼬마빌딩을 건사하려 여성 납치극에 동조하는 남성 사이엔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수종의 기이한 질주를 막는 사람도 있다. 그의 아내 김선(임수정)이다. 그는 이만 건물을 팔아버리고 딸 다래의 유학길에 함께 오르자고 말한다. 얼핏 가족을 우선하는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적극적인 설득 이면에는 불법촬영으로 찍혀버린 활성과의 섹스 동영상이 있었다. 결국 불륜 사실을 남편 수종에게 들키고 말았을 때 그는 다소 뻔뻔하게 모든 걸 털어버리고, 진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경의 납치금을 모조리 챙긴 남편을 두둔하는 것. 5화 말미, 수종이 “납치하자고 했을 때 거절해야 하는 건데”라며 얕은 후회를 드러내자 김선이 답한다. “아니야,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 우리를 위해서 한 거잖아. 어딜 가든 끝까지 같이 가보자.” 정말 기괴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하정우임수정의 얼굴로 묘사되고, 따뜻한 음악으로 포장돼버리지만 객관적으로 말하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여성 범죄에 가담한 건물주와 그를 대리 용서하는 아내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드라마는 이 문제를 이미 예상한 듯 수종 부부가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경제난과 이자 상승, 언어 장애를 가진 딸과 그의 유학비 부족을 거듭 보여주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채 그저 도둑 맞은 소시민성만이 허술하게 반복될 뿐이다.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고 피해자 상담센터로 달려갔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액이 N억원이라 모든 재산이 가압류되었다고. 집주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봤다지만 잘 안됐다고. 나는 얼마를 포기해야 할지 무기력하게 물었다. 그리고 법무사가 답했다.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없어요. 가압류가 된 건 그들의 사정이지 그걸 우리가 이해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현실에선 건물주의 사정을 이해하지 말라고 하고 드라마는 계속해 그의 처지를 이해해보라고 한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다. 현실과 픽션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특정범죄로 인한 피해자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 가해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활약을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지 않다. 욕망을 스토리화하는 과정에는 실제 그것이 놓인 현실 세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야만 한다. 그게 동시대성이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무엇을 대변하고 싶은 것일까. 진짜 소시민인가, 욕망 어린 건물주인가. 어설픈 설계도로 작품이 길을 헤매는 사이, 현실 세계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공감하길 바라는 이상한 가상 세계에 하릴없이 갇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