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담벼락을 신나게 뛰어넘은 노란 개나리가 무색하다. 제주 4·3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는 현재를 잠식하는 과거다. 귀향한 참전군인이 겪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대표적인 증상은 그들이 여전히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고 착각하는 환상 속으로 호출되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시간의 흐름과 영원히 불화하기를 택한 과거라면, 역사적 참사를 잊지 말자고 외치는 구호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될까? ‘기억하자’는 네 글자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실천이고 그것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자는 말인 동시에 참사에 관한 공동의 서사를 창안하여 함께 ‘기억’하자는 말이다. 그러니까 ‘기억’은 두 가지의 실천을 선행조건으로 삼는다. 정확한 사실의 발굴,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서사의 작성이다.
사회학자 제프리 C. 알렉산더는 사건의 발생 자체가 트라우마를 직접 촉발하는 것이 아니며 사건 전후를 둘러싼 맥락과 사실의 재구성, 사건에 대한 공동의 상상력이 관여한다고 말한다. 그의 논의는 트라우마의 본질적인 차원을 문화적인 자장 안으로 들여오고, 이때 사건은 여러 맥락과 해석이 작용하는 하나의 서사가 된다. 사실의 규명과 피해자의 구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부각되는 것은 참사의 서사가 시민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설득은 지식인이나 정치인, 사회운동가, 또는 예술가 등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담론을 전개하는 이들에 의해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학이나 영화의 재현은 물리적인 스토리텔링에 국한되지 않는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발화다.
클로이 자오의 영화 <햄넷>은 셰익스피어가 전염병으로 아들 햄넷을 잃는 허구의 이야기를 파라텍스트로 삼아 희곡 <햄릿>을 당사자의 사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모두의 비탄으로 나아가는 국면을 담는다. 현실에서 죽은 자는 햄넷이지만 그는 ‘햄릿’으로 무대 위에서 살아나고 아들을 잃은 셰익스피어는 유령(선왕)의 위치에 놓인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원한은 극 중 햄릿에게 전치되고 그가 행하는 복수의 서사는 그 불가능성과 더불어 인물과 관객 모두의 슬픔으로 거듭난다. 영화 <햄넷>은 사실관계의 ‘리얼’한 모사가 아니라 그것을 역전시키고 변형하여 사건의 원본성을 극적으로 가공함으로써 애도의 범위를 피해자뿐만 아니라 남은 자들의 세계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사적인 응보로서 복수(revenge)의 정동은 비천해지고 남은 자들의 분노는 공공의 선과 정의를 향한 대리적 차원(avenge) 안에서 공동의 슬픔으로 긍정된다. 당사자의 단독자적 시점이 아닌 일인칭 복수(plural)의 시점으로 화하는 공감과 연대의 요청, 그러한 사회적인 발화가 죽은 자와 남은 자 모두를 위무하고 삶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사건을 공동의 것으로 ‘다시’ 쓰는 일이며, 이를 재현하는 예술은 과거를 향한 분노를 현재의 슬픔으로 변환한다. ‘기억하자’는 말은 비극을 되풀이하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상상력의 고유한 주체로서 사회적 참사를 감응할 수 있음에 대한 각성과 그 실천의 촉구를 의미한다. 참사는 언제나 세계의 가장자리에 놓인다. 비극은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공동의 중심으로 들여오는 것은 사회적 존재, 서사적 존재로서 인간의 행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