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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높고 오랜 길 위에서

‘샤모니’에서 처음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몽블랑’이 구름 위로 솟아 있었다. 4807m. 유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나는 그 산 아래에서 스키 부츠의 버클을 조이고 있었다. 목적지는 ‘마터호른’이 솟아 있는 스위스의 ‘체어마트’.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두 도시의 직선거리는 70km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건너야 할 설원은 훨씬 더 길고 험했다. 이 루트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높은 길’이라는 뜻의 ‘오트루트’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 투어링 루트일 것이다. 우리는 다섯명이 한팀이었고, 프랑스인 가이드를 하나 두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자크였다. 처음 만났을 때 자크는 특별한 인상이라 할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중년 아저씨였다. 그러나 스키를 타고 활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다섯살 때부터 알프스에서 스키를 탔다는 그는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무색하게 눈 위를 날아다녔다. 수십년을 눈과 함께 살아온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보였다. 직업이 스키 가이드라 매년 이곳에서 지겹게 스키를 탔을 텐데도 여전히 즐거운 모양이었다. 신난 아이 같은 그 표정은 속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눈을, 산을, 알프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크는 단순한 스키 가이드가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 국립 스키·등산 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고산 가이드였다. 1943년 몽블랑 자락에 세워진 이 학교는 고산 가이드, 스키 강사, 산악 구조대원을 국가 차원에서 양성하는 곳으로, 전 세계의 인재가 모이는 곳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가이드는 최고 수준의 자격을 인정받는데, 그것은 스키를 잘 탄다는 증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빙하 위의 생존법, 눈사태 구조, 크레바스 탈출 등 알프스의 모든 위험을 관리하고 타인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다는 총체적 증명이다. 그러니 크레바스가 가득한 오트루트를 횡단할 때 자크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했겠는가.

오트루트의 가장 큰 매력은 ‘헛 투 헛’(hut to hut)투어라는 데 있었다. 일주일 정도 걸리는 여정에서 하루에 딱 하나의 산장이 나왔다.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그날의 산장에 도달해야만 했다. 눈앞에 뻔히 산장이 보이는 데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절망감을 뚫고, 굳어가는 다리, 터질 것 같은 폐를 안고 기어이 산장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온기란! 주방에서 새어나오는 수프의 김, 나무 타는 냄새,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이 테라스에서 쉬는 모습은 또 어떻고. 무심코 지나칠 만한 것도 고생 끝에 얻을 땐 한없이 감사하고 달콤했다. 평범한 진리를 오트루트는 매일 가르쳐주었다. 산장의 물자는 모두 헬리콥터로 운반되어 생수 1리터가 10유로였다. 씻는 것은 언감생심이라 양치질만 겨우 할 수 있었고,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컵도 단 하나였다. 그것으로 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양치질도 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오트루트 여행의 묘미였다. 산장에서는 아무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어차피 전파가 안 터지니까. 동료들과, 그리고 낯선 나라에서 온 여행자와 담소를 나누었다. 언어가 달라도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 사이엔 깊은 유대의 정이 흘렀다. 아무리 물자가 귀해도 저녁 식사에는 반드시 와인이 곁들여졌는데, 설원 한가운데 홀연히 솟은 산장에서 마시는 레드와인 한잔의 묵직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트루트에서는 일반 스키장에서 타는 스키가 아닌 투어링 스키가 필요하다. 일반 스키는 오직 내리막길만 갈 수 있지만, 투어링 스키는 부츠 뒤꿈치가 자유롭게 들려 오르막길을 올라갈 수 있다. 스키 바닥에는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 특수한 천을 붙인다. 내리막길에서는 천을 떼어내고 부츠 뒤꿈치를 고정해 보통의 스키처럼 활주한다. 애초에 스키는 눈 덮인 땅을 이동하기 위한 교통수단이었으니,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소화하는 투어링 스키를 타며 나는 자꾸 먼 과거를 생각했다. 100년 전, 나무 스키를 신고 오트루트를 최초로 완주한 사람들을. 그들에게는 고어텍스 재킷도, 날씨 예보도, 도움을 요청할 아이폰도 없었다. 크레바스에 빠지면 그냥 끝이었고, 악천후를 만나도, 길을 잃어도 끝이었다. 그보다 더 먼 과거로 가면 로마인들이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었고, 한니발은 코끼리를 몰고 이 산맥을 횡단했다. 눈과 얼음, 절벽과 추위, 이 모든 장벽도 인류가 저기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욕망을 막지 못했다. 이 욕망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했고, 호기심이기도 했으며, 탐욕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채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했다. 기어이 아프리카를 벗어난 이래, 빙하기의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로, 카누를 만들어 태평양을 건너 폴리네시아로.

오트루트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테트 블랑슈’ 능선에 올라 마터호른을 정면으로 보았다. 피라미드처럼 날카롭게 하늘로 솟은 봉우리가 설원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팀 전원이 말없이 멈춰 서서 세계적인 미봉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목적지가 눈앞에 있다는 감동과 인류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왔는가 하는 경이로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크는 우리 옆에 서서 조용히 웃고 있었다. 수십번은 보았을 이 풍경이 여전히 좋은 모양이었다. 체어마트로 내려가는 긴 빙하 사면, 발밑으로 펼쳐진 광경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억겁의 시간 동안 쌓이고 흘러온 빙하의 표면에 오후의 빛이 튕겼다. 인간이 이 빙하 위를 처음 걷기 시작한 것이 겨우 200여년 전이라는 게 새삼 신기했다. 여기의 산들은 인간이 오기 훨씬 전부터 있었고,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한참 더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인류는 여기에 왔다. 보고 싶어서, 넘고 싶어서, 저쪽 편이 궁금해서. 그러고보니 여기가 알피니즘이 태동한 알프스다. 1786년 자크 발마와 미셸 파카르가 몽블랑을 처음 오르던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이동에 대한 욕망에 기대어 나도 여기에 섰다. 내 발 아래에 선조들의 숱한 도전과 희생이 빙하와 함께 겹겹이 쌓여 있음을 잘 안다. 수직이동의 몽블랑이든 수평이동의 오트루트든, 이동을 갈구하는 인류의 욕망이 위대하지 않다면, 눈물겹지 않다면,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눈물겨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