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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혼까지 털어서 캐스팅했다” -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임필성 감독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한국인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직격한 임필성 감독의 드라마 제목이다. 영화 <마담 뺑덕>(2014), <인류멸망보고서>(2012), <헨젤과 그레텔>(2007), <남극일기>(2005) 등으로 영화 팬에게 익숙한 감독인 그는 “영화광의 DNA를 쏟아부으며” 첫 드라마를 찍었다. 19년 만에 방송드라마에 복귀한 배우 하정우와 더불어 임수정, 김준한, 정수정, 심은경이 주연으로, 김남길, 박병은, 주지훈이 카메오로 나선 그야말로 호화로운 군상극. 각양각색의 인물이 저마다의 욕망으로 전력 질주하는 이 이야기의 끝엔 무엇이 있을지, 캐스팅 비하인드부터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까지 짚었다.

- 첫 드라마 연출작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은 부동산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주택청약을 위해 아이를 입양하는 단편 <보금자리>(2017)에서부터 세속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그전까진 세속적 모티브와는 떨어져 있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시대정신을 정확히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윤신애 스튜디오329 대표가 이 작품을 제안했다. 각본을 보자마자 다음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소시민적 욕망이 스노볼처럼 커지다 와르르 무너지며 아수라장이 되는 이야기, 흥미롭지 않나. 스릴러에 블랙코미디를 가미해서 풀어보면 재미있겠다 싶더라. 영화광의 DNA를 쏟아부으며 찍었다.

- 순문학만 쓰던 오한기 작가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이전에 쓰던 작품들과 완전히 다른, 장르의 문법에 충실한 이야기라 놀라웠다.

오한기 작가와 함께 작업하기로 하고 그의 책을 사서 읽어봤다. 대중적이지 않더라. 순문학을 하시는 분도 이렇게 타락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싶었다. (웃음) 농담이고, 문학을 하던 분이기에 동시대의 문제와 인간 내면의 어둠을 더 잘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감독님 작품은 캐스팅이 늘 화려한데, 이번 드라마가 그 정점이다. 19년 만에 드라마에 얼굴을 비춘 배우 하정우부터 임수정, 김준한, 정수정, 심은경, 카메오로 김남길, 박병은, 주지훈까지. 캐스팅의 비결이 뭔가? 인덕?

늘 배우 복이 있는 편이다. 영혼까지 털어서 캐스팅했다. (웃음) 비결이 있다면, 배우들에게 새롭고 도전적인 역할을 제안해서가 아닐까? 이를테면 요나 역에 배우 심은경을 캐스팅한 것처럼. 원래 대본에선 남자 캐릭터였다. 윤신애 대표가 여자로 바꿔보자고 하면서 심은경 배우에게 제안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악역을 해본 적 없고 아이 같은 면이 있어 흥미롭겠다 싶더라. (심)은경 배우와 촬영 들어가기 전 대여섯번 만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그도 영화광인 데다 대중문화 마니아라 레퍼런스가 많다.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를 모티브로 한 눈알 커프스뿐 아니라 문신 테스트도 해봤는데 심의 때문에 실행하지는 못했다.

- 요나가 남자였다면 익히 봐온 모습이었을 것이다. 신의 한수다.

은경 배우가 캐스팅되고 대본도 수정했다. 중성적이고 속내를 알 수 없고 순수한 면이 있는 캐릭터를 잡아가다가, 그냥 “너답게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배우 본연의 순수함에서 출발하자. 여기에 직업의식이 있는 캐릭터로 풀어보자는 건 배우의 아이디어였다. 현장에 들어가니 신나서 하는 게 느껴지더라. 액션을 그렇게 잘할지는 또 몰랐다. 처음 무술 훈련을 받으러 갈 때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되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라니…. 자신이 있었던 거다. (웃음) 후반부에 큰 역할을 한다. 말 그대로 칼춤을 춘다. 하정우 배우와 붙는 신이 많은데 그도 은경 배우의 에너지에 놀랐고,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 그외에도 여성 캐릭터들이 다채롭다. 가정을 지키려는 아내처럼 보였지만 불륜을 해온 김선(임수정), 각성이 기대되는 전이경(정수정), 정의를 좇는 고주란(이주우), 부동산 부자 전양자(김금순)까지.

여자배우들의 저력을 제대로 확인한 계기였지. (웃음) 수종이란 아저씨의 욕망으로 시작하지만 마초적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면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여성의 욕망과 어두움 또한 입체적으로 그리려 했다.

- 김선을 연기한 배우 임수정의 연기가 극의 중심을 안정감 있게 잡아준다.

배우 임수정하정우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도합 50년이다. 임수정 배우는 나도, 하정우 배우도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배우 1순위였다. 드디어 만나게 된 거다. 임수정 배우는 리액션 하나도 온전히 납득이 되고 체화되어야 하는, 한컷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배우다. 매신 매컷 공을 들이는 모습이 든든했다. 전이경 역의 정수정 배우와 붙는 장면이 많은데, 두 배우가 워낙 자매 같은 사이라 호흡이 좋더라.

-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세상은 요지경으로 돌아간다. 그런 세상 속에서 독야청청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 어둡고 뒤틀린 이면의 이야기에 더 끌린다. 그를 통해 세상사를 말하고 싶다. 선한 사람이 승리한다거나, 펑펑 울리는 건 내가 잘할 수 없는 이야기 같다.

-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절부터 활동한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말은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것도 같다. 다변화한 산업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나.

그간 영화계가 보수화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전적으로 성장해온 산업인데, 어느 순간부터 흥행 공식이 생기고 그게 더는 먹히지 않으면서 혼란에 빠진 데다 팬데믹이란 악재까지 닥쳤다. 고인 부분도 있었다. 뛰어난 후배 감독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각자도생에만 빠져 있었다는 반성도 든다. 더는 영화와 드라마와 시리즈의 우위를 논할 수 없는 시대다. 직업 감독으로서,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 동안 플랫폼이나 매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