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reams Come True > 발매 1998 아티스트 S.E.S
학생 때 들었던 글쓰기 수업을 추억하고 있다. 교칙을 위반한 애들을 모아 반성문을 쓰게 하는 대신 ‘나’에 대한 글쓰기를 시키는… 나머지 공부인데… 좀 다른… 이를테면 ‘팝업 클래스’ 같은 걸로 부를 수 있으려나…. 아무튼 그건 성이 특이하고 서울 말씨를 쓰던 국어 선생님이 교감으로 승진하며 만든 실험적인 규정이었다. 글쓰기가 꼭 형벌 같다고 느껴질 때마다, 진정 죗값으로 ‘글쓰기 형’을 받았던 그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수업에서 ‘글쓰기’를 싫어한다는 글을 썼다. 글을 쓰면 우울해져요. 글을 쓰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저를 숨 막히게 한답니다. 당장 할머니가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든 산다면 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정부는 청년들의 일자리 어쩌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지, 이것 또한 자본주의 문제인지,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혁명하지 않는 건지, 나보고 앞장서라면 그건 또 무섭고 등등… 그 모든 상념이 합을 맞춰 저를 괴롭혀요. 근데 글쓰기는 그걸 또 다듬어서 문장으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다 때려치우고 싶어요. 안 할래요. 진짜…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고… 차라리 매 맞고 말지…. 마음 가는 대로 쓰다 보니 교사에게 바치는 투서 형태가 되어버리는 글.
선생님은 거둬 낸 몇편의 글을 읽으며 힘없이 웃다 수업이 파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며 말했다. “다들 싫어하는 게 정말 많네. 근데 싫어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건 그렇게 나쁘지 않아. 좋아하는 건 취미로만 간직해야 오래 좋아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말을 더 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던 감정. 진로를 고민할 때마다 떠올렸던 그 고요하고 침침한 얼굴.
S.E.S.의 노래 <Dreams Come True>를 두고 ‘광야’의 시작이니 토대니 하는 얘기를 하던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나는 이 노래를 그저 진통제로 인식하고 있다. 어디에다 붙여도 그럴싸해지는 그놈의 ‘몽환’에 의미를 되찾는다면, 이 곡은 그 몽환이란 것의 표준이 될 수 있는데, 그런 몽롱함이 감각을 교란하면서 동시에 오직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가사가 최면을 걸어 고통을 완화하기 때문이다. 들어보면 이것도 결국 너와 함께할 미래를 꿈꾼다는 사랑 노래지만 K팝을 듣는다는 건 노랫말에 있는 ‘사랑’을 이것저것으로 끌어다 확장하는 일이니, 이 노래의 사랑은 이부프로펜, 아세트아미노펜에 대한 내 마음이고, 그것만이 나에게 미래를 만들어준다는… 그런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S.E.S. 노래엔 바다가 모든 걸 쏟아내는 파트가 있고, 그건 좋을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의 보컬은 그야말로 바다다. 물결, 파도, 윤슬, 심해, 갯벌, 수평선, 조수간만의 차, 한류와 난류… 그 모든 것이다. 이 노래에서 바다의 ‘그’ 파트는 해일이다. “더 이상 슬픈 노랜 듣지 않을 거예요, 내 맘을 알겠죠.” 바다는 이걸 신이 노해서 인류에게 퍼붓는 저주처럼 부른다. 물론 슬픈 노래들이 대체로 저주이긴 하다. 슬퍼서 슬픈 노래를 듣는다는 건 (나름의 효과가 있겠지만) 어쨌든 변태 같은 행위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슬픈 노래를 듣기 위해 슬퍼지고 마는 피학적인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슬픈 노래를 듣지 않겠다는 다짐은 좀 슬퍼도 말짱한 정신으로 버텨보겠다는 의지 같은 거고, 나는 그 마음을 기꺼이 알아주는 것이다.
내 글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은 아쉬움과 억울함이다. 내가 가져다 쓴 노래들의 목록을 본다. 거의 다 앨범 타이틀이며 그중엔 그리 좋아하지 않는 곡, 그러니까 쓰기 위해 억지로 끌어온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나의 아쉬움이고, 또한 “아, 이 사람 진짜 알못이네… S.E.S.는 <꿈을 모아서>지”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분명, 분명! 있고, 그런 말들이 내게 약간의 억울함이 되는 것이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나는 이 글들을 쓰면서 K팝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정말 꼴도 보기 싫고… 듣기만 해도 내가 쓴 글들이 생각나 화끈거리고… 그러니까 애초에 쓰지 않았다면 평생 좋아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런 짓을 해서… 하지만… 내 생각에 모든 혐오는 자기가 진짜 뭘 싫어하는지,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만만한 물체를 때려보는 것이고… 그러니 잠시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K팝이 싫어졌다. 왜? K팝에 대한 글을 써서. 이 이상한 논리는 ‘글을’과 ‘써서’ 사이에 ‘못’을 넣어야 완성되는 것. 그러니까 나는, 그냥 ‘글쓰기’를 혐오, 아니 글을 더럽게 못 쓰는 나 자신을 혐오하는 거다.
‘싫어하는 것을 일로 삼는 편이 낫다’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반쯤 실현된 상황에서 나는 이제 체념을 하려 한다. 글쓰기라는 건… 내가 싫고 좋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삶의 방편 중 하나이고… 뭐더라,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고…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건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강요한 적이 없고… 정말 언제든 멈추고, 관둬도 되니까… 부디 쓰는 것이 싫다고 듣기를, 읽기를, 보기를, 닿기를 포기하진 마….
p.s. 가끔은 정말 헷갈렸지만 분명한 건 이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긴 시간 연재를 이어가주신 복길 작가님과 더불어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