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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지구인이 꿈꾼 몸이 닿지 않는 포옹, <프로젝트 헤일메리>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속 인간과 외계 생명체의 서사에서 먼저 손을 뻗는 쪽은 대개 후자다. 반복되는 신호로든 안타까운 불시착으로든 음흉한 목적을 감춘 행로로든 그들이 지구에 온다. 지구인은 이 움직임을 ‘침입’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하곤 한다. 하지만 낯선 존재의 출현에 두려움보다 호기심에 사로잡히는 예외적인 인간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주류영화에서 그 호기심은 주로 과학자 혹은 어린이의 몫이다. 그들의 본능은 베일에 싸인 타자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향하며 타자와의 접촉 지반을 확장할 방식을 골몰한다. 그 길을 발견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전쟁의 스펙터클 한편에서 이야기의 주요한 축을 이룬다. 아무리 허구의 장르 안에서라도 ‘다른’ 세계와의 접속이란 단숨에 일어나기 불가능하다는 점, 공동의 언어란 수월하게 획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이들 영화가 공유하는 최소의 토대인 셈이다.

요컨대, 넓적한 얼굴과 짧은 팔다리의 외계인이 처음으로 소년의 이름을 어눌하게 내뱉어 그를 기쁘게 만든 순간은 종의 차이를 동심으로 융화하는 영화(<E.T.>)에서조차 마법처럼 바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계 생명체와 소통하는 선율(<미지와의 조우>)이나 수학적 패턴(<콘택트>)은 탐구하고 전송한 후 간절히 수신을 고대하는 단계의 역학이다. 아예 언어학자를 등장시켜 외계의 이미지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 그들의 세계가 구성되는 질서를 배우고 경험하는 일임을 일깨우며 그 절차에 서사 대부분을 할애하는 영화(<컨택트>)도 있다. 말하자면 두 생명체가 언어를 교환하며 교감을 시작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은 필수적이다.

과학자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와 외계 생명체 로키의 우정을 그린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이들 영화의 잔상이 유머처럼 얼마간 배어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완전히 낯선 두 세계의 대면에는 적대감은커녕 망설임과 의심의 순간이 개입하지 않는다. 교류는 간단하고 빠르게 성공한다. 거대한 비행선에서 그레이스의 우주선을 향해 날아온 통 하나가 공격을 의도한 폭발물이나 덫이 아니라 대화를 요청하는 편지라는 사실은 몇 차례에 걸쳐 친절하게 제시된다. 이 편지는 클릭 한번에 상대에게 날아가는 이메일처럼, 심지어는 정확한 수신을 고려해 조절된 속도로 우주를 가로질러 그레이스에게 도착한다. 편지의 경로에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일촉즉발의 사건 같은 것은 없다. 우주 한가운데서 편지가 든 통을 상대에게 던진다는 아날로그적인 설정은 지극히 디지털적인 편의성으로 실현된다.

이후 그레이스와 로키가 물리적으로 마주하는 장면들 역시 매끄럽게 진행된다. 우선, 로키가 고안한 다리가 광활한 우주 속 동떨어진 둘의 장소를 단번에 연결한다. 어둠 속에 펼쳐진 다리는 타자의 심연으로 향하는 미지의 불가해한 길이 아니라, 액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편리하게 작동하는 자동화된 통로로 두 세계를 효율적으로 합체한다. 이를테면, 타자를 ‘나’의 세계로 끌어당기기 위해 작은 초콜릿 알들을 숲에서 집에 이르는 행로에 하나하나 깔아두는 아이의 육체적인 노력 같은 것(<E.T.>)에 이 영화는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우주를 부유하는 외로운 개체라는 둘의 유사성 앞에서 탐색의 시간은 최소화되고, 부딪힘의 여지는 제거된다. 이 영화가 내세우는 진취성은 종족의 차이를 탐구하는 대신, 공동의 목표를 향한 어울림의 시간을 향유하는 일, 차이의 복잡다단한 구조를 제쳐둔 채 공유의 감각부터 부각하는 일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방향성은 무엇보다도, 그레이스와 로키의 의사소통 도구인 번역기의 속성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크리퍼로 불리는 외계 생명체의 울음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변환하는 통역기의 직접성과 노골성이 이미 우리에게 당혹감을 안긴 적이 있지만(<미키 17>), 이 영화의 번역기는 그보다 최첨단의 성능을 자랑한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더 뻔뻔하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몸짓, 숫자, 음성 등을 기반으로 생성된 번역기는 외계 생명체의 소리를 인간의 문자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레이스가 선별한 목소리를 바로 입는다. 얼굴 없는 문어처럼 생긴 외계의 형상이 인간의 언어를 발화하는 듯 들리는 이 기괴한 상황에 우리는 금세 익숙해지고 그 모양새의 이질성이 우리에게 안기던 전율은 또렷한 발음과 함께 어느새 잊힌다. 외계 생명체의 이해 불가능한 웅얼거림은 어떤 잉여도 남기지 않고 인간화된다. 9년 전만 해도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영화 속 과학자들은 컴퓨터 화면의 수많은 데이터와 씨름하는 데 시간을 쏟았건만(<컨택트>),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방법은 새로움이 아닌 효율성을 좇는다. 외계의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 필수적이던 경로, 그 이야기의 시간이 단축된 덕분에 서사는 타자를 향한 호기심이 빚어내는 좌충우돌, 차이가 불러오는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고도 공감을 말할 수 있는 비약에 이른다. 이 ‘편리한’ 공감의 정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통로를 만들어 그레이스를 초대한 로키는 이 작은 공간을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환경으로 내어준다. 그레이스가 더이상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로키가 투명한 구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인간이 방호복을 벗는 행위는 타자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는 사뭇 다르다. 로키의 선택은 음파로 세계를 인식하는 그의 속성을 고려하면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그레이스와의 원활한 소통을 추구하려는, 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헬멧을 벗은 순간 그 공간에서 신체적 자율성을 먼저 확보하는 자가 인간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를 인간이 우위를 점한다는 식으로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인간과 마스크를 쓴 외계인의 모습에서 주목할 만한 건 낯선 두 존재가 비교적 손쉽게 이룩한 관계의 안정이란 둘이 같은 공기를 호흡하지 않는다는 설정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레이스는 로키와 함께 지내면서도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연신 중얼댄다. 그와 로키가 각각의 개체라는 점도 자주 강조한다. 그의 투정 섞인 말은 농담에 가깝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시각적으로 환기하는 경계와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우주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는 우주의 방대한 스펙터클이기보다 두 존재가 자리한 비좁은 실내, 투명한 막으로 나뉜 한정된 공간이다.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서 지구인과 외계인은 한 장소에서 함께 생존할 수 없으므로 협상하고 충돌하고 대가를 치르고 슬퍼하고 체념하고 결국 서로를 떠난다. 하지만 여기서는 인공지능이 둘의 언어장벽을 단숨에 극복한 것처럼, 유리구 하나로 그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그레이스와 로키를 분리하는 그것은 로키가 보여준 이타심의 산물이기 전에 둘의 서사를 예측 불가능성으로부터 방어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들에게는 서로의 얼룩이 묻을 틈새가 없다. 불길하고 위태로운 전염의 잠재성은 여기 들어설 수 없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포옹은 몸을 직접 밀착하지 않는 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가 사랑하는 ‘공감’의 정서는 둘을 가르는 명백한 막, 일정한 거리감을 전제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가장 큰 울림은 그러므로 그 막이 무너질 때 생긴다. 그레이스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던 로키는 온몸을 부딪쳐 막을 찢는다. 로키가 그레이스를 구하는 이 대목의 면면은 영화 전반의 분위기와 달리 모호하고 거친 방식으로 재현된다. 막 바깥으로 나온 로키는 점점 실루엣을 잃어가는 형체로 날뛰며 인간의 언어가 아닌 짐승의 소리로 포효한다. 요란하게 깜빡이는 불빛 속에서 그의 동선과 행동은 정확히 헤아려지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존재의 정념만으로 한 세계가 요동한다. 그 시간은 그레이스, 그러니까 인간의 시야 외부에서 일어난 실재의 요동인 것일까. 이후 그레이스가 깨끗한 침대에서 의식을 되찾는 장면은 더없이 정갈하고 밝다. 로키의 처절한 사투는 그가 흘린 검은 피의 흔적으로 남겨진다. 구 근처에서 처참하게 뭉개진 모습으로 쓰러진 채 발견된 로키에게는 회생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다음과 같은 가정이 그리 엉뚱하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로키는 그 장면에서 이미 죽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그레이스가 로키를 두번이나 살려내는 후반의 이야기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안온한 공생을 꿈꾸는 그레이스의, 인간의, 우리의 환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결말이 그런 가정에 힘을 싣는다. 지구로 가는 대신 로키를 구한 그레이스는 예상과 달리 우주를 떠돌지 않고 육지 위에 세워진 집 안에서 하루를 맞이한다. 그곳은 로키의 고향인 에리드 행성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평화로운 해변을 걷는 그레이스는 변함없이 헬멧을 벗은 상태인데, 로키는 아직도 투명한 막을 쓰고 있다. 우리는 이내 이들이 비대해진 유리관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레이스를 위해 산소를 보존한 유리관, 조명과 온도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장소, 인간의 조건에 최적화된 설계. 그레이스와 로키는 여전히 같은 공기를 숨 쉬지 않는다. 이 유리관의 세상을 마침내 로키가 돌아간 그의 땅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분명한 건 이곳이 지구가 아니며, 잠정적일지언정 그레이스가 새롭게 점유한 영토라는 사실이다.

세속의 지구는 그레이스와 로키가 우주선 스크린으로 즐기던 사계절의 이미지, 아름다운 환영의 막 너머에 있다. 그레이스 혹은 영화가 귀환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세계는 고차원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체제만이 아니라 태양열 문제가 해결되어도 갈등과 충돌이 언제든 일어날 정치의 장소다. 원작 소설과 달리 영화의 플래시백은 고군분투하는 지구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그리는 일에 세심한 공을 들이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영화의 제한된 시간 탓이겠으나, 그 선택은 어쩐지 그레이스의 은밀한 소망과도 통하는 것 같다. 그에게 통제할 수 없는 지대, 불안을 안기는 ‘바깥’은 우주가 아니라 지구다. 결말에서 그레이스가 영위하는 인공의 유리관 세상은 티끌 하나 없이 쾌적하다. 막을 한겹 걸친 채 적정선을 넘지 않으며 그레이스에게 조건 없이 땅도 선물한 로키는 참으로 선한 이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결국 그 무결함에 대한 찬가다. 이 시대에 영화로 꾼 꿈은 세계의 소용돌이에 뛰어드는 불확정적인 모험이 아니라, 혼돈을 차단한 축소된 울타리 안의 사적인 평정을 향하는 것일까. 이 꿈은 그러나, 너무도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