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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그래봤자 영화, 그래도 영화

때론 부분이 전체의 합보다 크다. 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도, 아니 희미해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대사들이 있다. 드라마 <미생>의 내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지금도 필요할 때 종종 꺼내 보는 조언은 ‘체력을 기르라’는 말이다.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길러라. (중략)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도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성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이 올바른 말이 뇌리에 박힌 건 현명한 통찰이 담긴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표현이 와닿아서 좋았다. 따끔한 일침을 듣고 새긴 지금도 여전히, 운동 안 하고 넘어갈 핑계를 찾는 쪽으로 몸이 기울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방치된 몸뚱이를 끌고 허덕이다가 자기 전에 다짐한다. 내일은 꼭 운동 시작해야지.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는 영화판 언저리라도 발 담가본 사람이라면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드라마다. 한번 준비하는 데 3, 4년은 가뿐히 잡아먹는 영화가 몇편 엎어졌더니 10년 세월이 우습게 지나버린 이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만난다. 분명 치열하게 뭔가를 했는데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때, 혹은 자신이 뭘 했는지 자신 빼고는 아무도 알 수조차 없을 때,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결과만이 곧 존재증명이 될 때, 아무리 강한 인간도 응당 주저앉기 마련이다. 20년째 장편 데뷔를 못한 감독 황동만(구교환)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모두가 그를 감독 지망생이라고 말할 때 누군가 한명쯤 ‘그는 감독’이라고 말해준다면 우리의 우주는 멈추지 않고 다시 움직일 수 있을까. 드라마는 기적 같은 상상력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길들여줄 관계의 가느다란 실을 소중히 따라간다.

<모자무싸>를 보자마자 문득 <미생>의 대사 한줄이 떠올랐다. “그래봤자 바둑. 바둑 한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런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나에겐 전부인, 그래도 바둑.” 영화와 바둑만이 특별할 리 없다. 일과 삶, 직과 업에 얽힌 사연은 모두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부를 걸 만한 일을 찾고 있다. 평생 헤매는 사람이 태반이고, 운 좋게 찾아도 자신이 그 일을 사랑하는 만큼 답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설사 사랑한 만큼 돌려받지 못해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모자무싸>는 그 해묵은 좌절을 건드린다.

당연하다면 당연히, 갑갑하고 불편한 고구마 전개가 느릿느릿 이어진다. 쉬운 위로는 그만큼 빨리 휘발되는 법임을 알기에 일단 견디는 중이다. 벌써 시청률 2%에 갇혔다며 (데뷔 못한 황동만을 한심하게 보는 투자사 대표에 빙의해) 걱정해주는 기사들도 보인다. 우선 폄하도 비교도 아니라는 점을 먼저 분명히 밝혀두고 말하자면, ‘깊은 생각 금지 드라마’로 인기몰이 중인 옆 동네 작품과 대조적인 분위기가 흥미롭다. 드라마 바깥에서도 외면할 수 없이 냉정한 현실이 이어진다. <모자무싸>를 본 뒤, 미련하게 종이 매체를 고집 중인 영화잡지 입장에서 황동만을, 아니 구교환 배우를 만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물어야 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우리의 일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걸까요.

ps. 사실 구교환 배우는 몇해 전 이미 답을 했다. “이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 난 너무 영화를 사랑하지만 언제든지 우린 이별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상실감을 갖지 말자라고 계속 나를 훈련시킨다.”(<씨네21> 1321호, ‘김혜리의 콘택트’ 인터뷰 중) 다시 한번, 예술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고, 부분이 전체의 합보다 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