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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참을 수가 없는 걸! 2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트레일러 현장, 구교환 감독과 배우 김태리 x 손석구

본편 공개(5월7일 오전 8시)를 앞두고 캐스팅 소식과 티저만으로도 화제를 모으는 중인 올해의 미쟝센단편영화제 트레일러는 구교환이 연출하고 김태리, 손석구가 출연한다. 지난 3월29일 일요일에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는 극장에 모여 영화를 보는 두 관객의 하루치고는 꽤나 별난 소동과 여운을 안긴다.

“감독님, 이거 멜로죠?” 촬영 중반에 드디어 감을 잡았다는 듯 김태리가 묻자 구교환은 열렬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정말 멜로일까? 뒷날 구교환은 “태리씨에겐 멜로라고 했고 석구씨에겐 멜로라고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둘은 정말 무슨 사이냐고 묻자 구교환은 선문답처럼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 답한다. “아주 작은 장점이라도 있으면 그 영화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감독, 관객, 집행위원들이 모두 영화 친구 사귀는 곳.” 그러니까 이건 어느 날 옆 좌석에서 만난 영화 친구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의 고백이다.

에취! 수잔(김태리)은 야한 걸 보면 재채기를 하는 여자. 줄무늬 상의에 경쾌한 짧은 치마를 입고 나타난 김태리는 꼭 누벨바그 영화의 주인공 같다. 그의 눈앞에 놓인 영화는 무엇이고 또 얼마나 섹시하길래 자꾸 재채기를 하는 걸까? 트레일러는 극 중 두 관객이 마주하는 스크린이 곧 미쟝센단편영화제이고 “미쟝센단편영화제는 가장 섹시한 영화제”(구교환)라는 최초의 발상에서 살을 붙여나갔다. 영화제를 위한 트레일러라지만, 이 또한 하나의 짧은 영화이기에 단편영화를 위한 또 다른 심장을 지닌 사나이처럼 보이는 구교환의 비밀이 궁금했다. 트레일러 촬영 현장 이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커버 인터뷰로 만난 그가 슬쩍 힌트처럼 보여준 트레일러 편집본엔 역시나, 누구도 예상 못한 영화 한편이 수잔과 남자 앞에 상영되고 있었다. 구교환이옥섭의 팬이라면 가장 궁금해할 그 기대작이 극중극이 되어 반짝 윙크했다.

이옥섭 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한 <너의 나라>(개봉 예정) 이후 메가폰을 잡은 구교환 감독. 2X9 HD의 이옥섭 감독도 모니터 옆자리의 든든한 동료로 함께했다. 이날 구 감독의 주위엔 응원차 트레일러 촬영 현장을 찾은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 및 감독들이 내내 궂은일 하나라도 더 맡으려 배회하곤 했다. 사진 속 뒤편에도 보이는 <잠>의 유재선 감독.

범상치 않은 패션을 하고 나타난 손석구 배우. <파리, 텍사스>의 해리 딘 스탠턴 같다고 하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엔딩크레딧도 신 중의 하나임을 굳게 믿는 이 남자의 직업은 무얼까? 그는 자신만큼 끈질기게 엔딩크레딧을 보고 있는 옆자리 여자 수잔이 내내 묘하게 신경 쓰이는 눈치다.

구교환의 연출작 중 남자주인공을 구교환이 연기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한마디로 “손석구가 나의 첫 페르소나”이고 미쟝센 트레일러는 “매력적인 손석구 배우를 시작으로 앞으로 감독으로서 다양한 남자배우들을 ‘수집’하고 싶은 욕구를 불지피게 될 것 같은 터닝 포인트”(구교환)이다. 이날 대기실에서 구 감독을 만난 손석구는 성실한 해석력으로 꼼꼼한 질문 세례를 이어갔다. 논리적인 배우와 직관적인 감독의 대화는 카메라 앞에서도 흥미롭게 흘러갔다. 반나절쯤 지나 카메라 셋업이 바뀌는 사이 극장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오르던 손석구가 막 스트라이크를 친 사람처럼 기분 좋게 외쳤다. “아, 알것 같아요 이제!”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가만히 영화를 볼 뿐이라면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건 구교환의 세계다. 엔딩크레딧은 점점 끝나가고 있고 극장을 떠나야 할 타이밍에 두 남녀는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아 있다. 그리고 뒤돌아 영사실을 향해 차례로 간절하게 외친다. “불 꺼!”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 감독들이 카메오로 촬영을 마쳤다. 뚝딱거리며 즉흥연기를 소화하다가 웃음이 터진 윤가은, 이상근, 한준희, 장재현, 유재선, 이종필, 엄태화, 이충현, 이옥섭 감독. 모니터를 마친 구 감독이 배우 출신 이종필 감독의 연기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본편에 쓰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하자 카메오 감독들은 오히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손석구는 보라색, 김태리는 검정색 복면을 썼다. 복면 남녀의 사정은 아마도 엉뚱한 상상의 한 대목일 테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복면을 썼으니 영화 앞에서 함께 위험을 감수할 공범인 모양. 배우 김태리가 올해의 트레일러를 멜로라고 정의한 까닭도 이런 작당모의 장면에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로비. 이충현, 엄태화, 장재현, 한준희, 이종필 감독(왼쪽부터)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제 몫의 촬영분을 마치고 일렬로 앉은 감독들의 모습이 마치 수학여행지에서 점심시간에 모여 앉은 학급 동료들 같다.

그린스크린 위에 누운 두 남녀. 그들의 배경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영화 속에서 수잔은 남자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실화인가요?” 남자가 묻자 돌아온 여자의 대답은 “가짜”라는 실없는 농담이다. 구교환은 미쟝센단편영화제를 아끼고 동경하면서 이곳에 영화를 출품할 감독들에게 모든 영화가 그러할 것이란다. 비록 가짜이지만 우리에게 진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가 결국엔 진짜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무대가 이렇게 또 한번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