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본 것’만이 영화다. 한번 보고 만 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건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목격하게 된 교통사고와 같은 것.”(장정일) 내게는 한번 보고 만 인생 영화가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하비 밀크를 그린 <밀크>다. 2010년 기초의원 선거를 준비할 무렵 개봉했다. 2009년 말 나는 고향인 구미로 돌아가기로 했다. 서울에 있어봤자 취업 전망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서울에서 고향 친구를 만나 “내년에 진보진영 선거를 거들겠다”고 했다.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너 같은 놈이 해야 하는데.” 나는 정치 지망생이 아니었다. 당시 구미는 모두 2인선거구였기에 승산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정과 배경이 나를 이끌었다. ‘어차피 기회는 이번뿐이다. 내 20대의 정치 활동을 결산하자. 져도 괜찮다. 이기면 4년만 조금 다르게 살자.’ 그런데 그 직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구미에 3인선거구가 네 군데 생겼다. 지역 진보진영은 출마자 기근이었고, 그중 한 군데가 내 지역구로 정해졌다.
그즈음 <밀크>를 봤다. 노조와의 연대 장면은 공단 지역에서 활동할 나를 고무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개똥 조례’였다. 마이크로 아이템에도 애착을 갖게 됐다. 지인들 앞에선 이 영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밀크의 낙선 에피소드와 마지막 장면에 그들이 심란할 것 같았다. 본격 선거전에 앞서 가족, 친구, 선거대책본부장들이 차례로 앓아누웠다. 나도 후보로 뛰고 보니 ‘캠프 관계자’일 때와는 딴판이었다. 나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더욱 힘겹고 고독한 일이었다. 다만 <밀크>는 불길한 징조가 아니라 나만 알면 되는 계시였다. 선거 구도의 윤곽이 드러나자 당선될 거라는 확신이 섰다. 내 능력과는 무관했다. ‘선거는 구도가 7할’이라더니, 그 이상이었다. 온갖 우여곡절이 다 액땜처럼 여겨졌다. 유세용 전동자전거에서 연기가 나 소방차가 출동했을 때, 투표 전야에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어느 차량이 자전거를 받았을 때, 마감 30분 전 자전거가 교차로 광장에 주저앉았을 때,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밀크와 달리 한번에 당선됐다. 되고 보니 그의 짧았던 재임 기간이 마음에 걸렸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재관람을 미루었다. 2014년, 크게 바뀐 구도에서 근소하게 낙선한 뒤에도 <밀크>를 보지 않았다. 의회에 복귀하면 다시 보기로 했다. 나는 결국 낙선 이듬해 재도전을 접었다. 형편이 좋지 않았고 권력의지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애초 예감대로 2010년이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나는 2016년 5월 처음 평론가 직함을 달고 라디오방송에 나갔다. 평론가로서 세 번째 지방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지방선거 때마다 시무룩하다. 방송 프로그램은 지방의원 출신 평론가를 놓고도 지방선거에 걸맞은 질문을 좀처럼 건네지 않는다. 우리의 지방선거 방송이란, 서울과 경기 등지의 단체장 선거를 중계하는 일이다. 주민 대다수는 여전히 지방의원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선거 자체도 재미가 없다. 매번 ‘정책 실종’ 이야기가 나온다. 나 같은 소수파 당선자도 크게 줄었다. 이제는 나도 흘러간 옛날 정치인이다. 문득 돌아보니 지난 10년 동안도 <밀크>를 보지 않았다. 남들에게 소개한 적은 있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밀크>를 부러 외면해온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