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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겨울이 아직 남았으니까

몇달을 매달렸던 드라마가 크랭크업한 것은 지난겨울이 끝날 무렵이었다. 쫑파티 다음날, 나는 스키 장비를 꾸려 홋카이도로 향했다. 폭신폭신한 파우더 스노를 찾아서. 하지만 좋기로 소문난 홋카이도의 파우더도 이미 끝물이었다. 눈은 습기를 머금어 무거웠고, 녹았다 얼기를 반복해 딱딱했다. 예년 같았으면 아직 겨울이 한창일 텐데, 한발 늦은 모양이었다. 실망한 나는 숙소에서 삿포로 캔맥주를 마시며 세계지도를 펼쳤다. 겨울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손가락은 카자흐스탄 위에 멈췄다. 말로만 듣던 톈산산맥이 있는 곳. 험준하기로는 히말라야와 자웅을 겨룬다는 산맥. 거기서 스키를 즐기려면 좀더 기다려야 했다. 3월은 지나치게 눈이 많고 춥기 때문에.

어딘가로 두어번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 약속한 4월이 찾아왔고, 나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로 향했다. 목적이 명확했기에 다른 구경거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새벽같이 톈산산맥의 ‘투육수 빙하’ 지역으로 출발했다. 오프로드에 특화된 차도 해발 2500m까지만 우리를 올려줄 수 있었다. 산장은 3500m에 있었으니 무거운 배낭을 메고 스키 업힐을 하루 종일 해야 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겨우 도착한 산장은 군더더기라곤 없는, 살아남기 위한 것만 겨우 갖춘 공간이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지치기도 했거니와 주변이 하도 아름다워 마당의 벤치에 넋 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대기가 너무 깨끗해 햇빛이 곧장 맨살에 꽂히는 것 같았고, 도시 생활에 막힌 콧구멍과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톈산산맥의 풍경은 추상화에 가까웠다. 돌산과 눈, 그리고 하늘. 단 세 가지 색 팔레트만으로 이 정도의 임팩트를 내다니! 나는 이 풍경의 프레임을 가늠해보았다. 광각은 저 겹겹의 깊이를 퍼트릴 것이고, 망원은 납작하게 짓누를 것이었다. 표준렌즈로 아주 천천히 패닝을 해야 마땅한 풍경. 검붉은 화강암과 눈부시게 흰 빙하가 정면으로 맞붙어 있었다. 어느 미술감독이 이런 대비를 일부러 만들려 했다면 욕심이 과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해가 산등성이로 넘어가려 하자 설산이 붉게 타올랐다. 알펜글로. 타오르는 빛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곧 보라와 푸른빛이 몽환적으로 섞이며 설원을 덮었다.

해가 떨어지자 기온은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식당을 겸한 거실에서 일행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하루 만에 고도를 너무 많이 올린 탓에 몸이 무겁고 가벼운 두통이 있었다.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는 맛으로 음식을 먹는 게 아니다. 살아야 하니까 꾸역꾸역 집어넣는 것일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침상에 누우니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찼다. 내가 지구의 어느 높이에 와 있는지 몸이 알려주고 있었다. 침낭 속에서 발가락 끝을 한참 비벼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추워서 잠이 올까 싶을 정도였다. 멀리서 바람이 산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의 소음은 귀에 쌓여 피로가 되는데, 산의 바람 소리는 귀를 지나 몸속 어딘가로 기분 좋게 스르륵 사라졌다. 그러다 기억에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스키 가이드인 ‘이고르’를 만날 수 있었다. 10년도 더 돼 보이는 스키 재킷을 입어 한눈에 검소함이 묻어났다. 그리고 겉치레가 없어 손님을 맞는 인사도 길지 않았다. 출발시간과 오늘 갈 곳에 대해 극단적으로 짧은 브리핑, 그게 다였다. 환대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례하지도 않았다. 그저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 산이 사람을 그렇게 깎아낸 것 같았다. 우리는 이고르를 따라 빙하의 능선에 올랐다. 그는 능선 끝에 서서 한참 동안 사면을 살폈다.

눈 표면을 스틱으로 톡톡 두드려보는가 싶더니 별말 없이 첫 라인을 그었다. 그의 활주는 빠르지 않았지만 군더더기가 없었다. 힘으로 눈과 싸우기보다는 부드럽게 눈을 달랬다. 뒤따라 내려가 보니 실제로 이곳은 설질이 자주 바뀌었다. 바람이 다진 단단한 면, 햇볕에 녹았다 다시 언 까슬한 면, 그늘 속의 부드러운 파우더까지. 한번의 활주 안에 네댓개의 설질이 지나갔다. 몸은 그때마다 다른 리듬으로 반응해야 했다. 카메라가 아주 밝은 곳에서부터 아주 어두운 곳까지, 한 테이크 안에 담으려면 노출을 조정해야 하는 것처럼. 긴 사면을 한달음에 내려왔더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나는 금메달리스트처럼 두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드디어 탔다, 좋은 눈!많은 스키어가 폭신한 눈을 쫓아다닌다. 이른바 파우더 체이싱. 일본 홋카이도의 골짜기,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중앙아시아의 이 외진 산맥까지. 북반구의 겨울이 끝나면 어떤 이들은 남반구로 건너가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에서 또 한번의 겨울을 난다. 그저 눈 위를 미끄러지며 소리를 지르기 위해 비행기를 두어번씩 갈아타는 것이니 경박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유희하는 인간을 편들고 싶다. 생존의 이유도, 구도의 핑계도 없이 순전히 즐겁다는 이유만으로 눈밭을 뒹구는 몸에는 원초적인 정직함이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데에는 이동의 욕망뿐만 아니라, 저 너머가 재밌어 보여서 그런 것도 있었을 것이다. 유희는 문명의 잉여가 아니라 알맹이였다. 그러니 예술의 기원이라는 위상도 꿰찬 것이겠지.

지구온난화로 겨울은 점점 짧아지고, 눈은 갈수록 적게 내린다. 파우더가 있어야 할 시기에 없는 일이 빈번하니, 유희하는 인간의 무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산장에서의 마지막 날, 마당 벤치에 앉아 해질녘의 붉은 설산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이고르가 내 옆에 멈춰 함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어릴 적 보던 눈과 지금의 눈이 얼마나 다른지. 빙하는 예전에 어디까지 내려와 있었는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어쩐지 답을 알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한 움큼 쥐었다. 눈이 녹으며 손바닥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손을 털며 일어섰다. 내일 해가 뜨면 다시 설원에 라인을 그어야지. 빛을 읽듯이, 눈을 읽으며. 겨울이 아직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