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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오색약수터 예술론, 그리고 배선희

- ‘잎사귀들 색깔이 진짜 다양하다!’ 이렇게 안 끝나고 꼭 ‘자연이 이렇게 각양각색인데 우리 인간도 다양성을…’ 이러질 않나, ‘경이롭다!’ 이렇게 안 끝나고 꼭 ‘조물주여…’ 이러고, ‘아름답다!’ 하면 될 걸 금방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예술이 다 뭔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렇게 흘러가버려. 가치나 의미나 개념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건 불가능한 걸까?

인간 뇌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해.

- 연기도 다 바로 환원돼버리는 것 같아. 감정이든 뭐든 다 이름 붙고 해석이 붙고. 음악이나 무용은 안 그렇겠지? 개념 무용 말고. oo 언니가 뉴욕에 있는 야외 조각 공원 스톰 킹 아트센터에서 정시마다 자연과 교감하는 짧은 즉흥 무브먼트를 반복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움직임은, 아니면 움직일 때 언니의 상태는 어떤 의미나 가치나 개념을 설명하거나 그것으로 환원되지는 않았을 거 아냐.

보는 사람에게는 뭔가로 환원됐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이, 이, 이렇게 똑같은 움직임을 수행하는 몸이라고 하더라도, 이게 예술이 되는 순간은, 이 몸이 언제 어디에 위치하는가, 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거든. 이 배치 자체가 프레이밍이라는 거지. 근데/

- 근데 봐봐. 스톰 킹에 어떤 퍼포머를 배치했어, 큐레이터가 ‘이 퍼포먼스는 자연과 조각들 사이에 인간 몸을 배치함으로써 자연과 사물과 인간, 이 삼자가 별개가 아님을 드러내고…’ 뭐 이렇게 하는 게 예술이긴 하지, 이런 기획 자체가… 하지만 퍼포머가 수행하는 일은, ‘이 삼자가 다르지 않아요’를 퍼포밍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거잖아.

응.

- 그리고 그 다른 일은 예술 기획에서 설명된 것을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감각일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우린 둘 다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기획자가 말로 건져 올린 것 이상의, 그 말을 넘어서는, 말로부터 미끄러져서 일어나는 다른 일, 그게 사실 예술의 핵심이고 퍼포머가 해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내가 아까 ‘연기는 다 환원돼버려’라고 했을 때, 연기가 그 환원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본의 의도, 대사의 의미, 혹은 무슨 무슨 기획, 이 모든 예술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일이 일어나야 해, 로고스로 건져 올리지 못하는, 의미를 초과해버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해. 나는 오빠가 그런 일을 해서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해. 하하하하.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 하하하하하하하.

그냥 세게 읽었는데/

- 그러니까 그게/

그게 너무 플랫해가지고/

- 그게 굉장히 그그그그 프레임에/

나 여기 사진 찍어야 하니까 좀 비켜볼래.

- 빗겨나는 일이라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워. 와 여기 멋있다.

갑자기 허기지네. 바위산이 정말… 아~따. 바위가 완전히 거대하고 민둥산인 거보다 이렇게 나무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바람 소리, 찰칵)

오색약수터에서 선녀탕 가는 길. 사진제공 박경찬

-저기 스님이 바랑 하나 메고 오시네. 멋있다.

진짜, 어머 세상에.

-바랑 색깔이 좀 깨지만.

(바람 소리, 물소리)

(찰칵)

(찰칵)

정말 지루한, 교과서적인 구도의 사진을 내가 계속 찍고 있잖아? 근데 알잖아, 사실은 이게 제일 좋다는 거, 결과물을 보면/

-하하하하하.

나는, 이 지루함이 주는 결과물과 쾌감이 있는데, 이 지루함 때문에 이게 예술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건 아니다.

-음…/

그냥 더 탁월한 것이 있고… 아니 그냥 처음에 내가 프레임 이야기를 했던 건 왜냐하면, 당신 말이 맞고 다 동의하는데, 프레이밍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말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필요조건, 필요조건이라는 거야.

-그렇지 오빠 그건, 그건 필요조건이야 그건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그렇지 당연히.

-그렇다면 충분조건을 고민해야 해. 필요조건을 충족하거나 필요조건을 부연하는 것을 충분조건으로 착각하면 안된다고.

아니 그렇지. 그런데 충분조건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나는.

-아~주, 훌륭한 말이네.

아니 그렇잖아. 어떤 게 충분조건이 될 수 있어/

-필요조건을 넘어서는 게 충분조건의 시작이야. 말로 다 건져 올려지지 않을 때까지 가는 것. 기획이나 프레임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곳까지 가는 것. 그 시도를 해야 하는 것 같아.

그건/

-근데, 근데, 넘어서려는 일 자체를 하면 안돼. 어떤 다른 일을 했을 때 결과적으로 필요조건을 넘어서는 거지. 그럼 어떤 일을 하는 거냐? 이제 그걸 물어야지. (한숨) 어쨌든 환원될 수 없는 것을 해야 해.

저기 저게 선녀탕일 것 같은데?

-왠지 선녀탕이면 선녀탕이라고 푯말이 붙어 있을 것 같아.

그런가?

-그리고 저 사람들이 저 위에서 내려오는 걸로 봐서 저 위에 선녀탕이 있는 것 같아. 선녀들이었을 거야, 저 세분.

나이 드신 분들이네? 나이 드신 선녀?

-선녀탕 들어가면 젊어지지.

근데 너 이거 음성, 녹음, 저장공간 생각해야 할 거야. 너 폰 1기가도 안 남았어.

-알아서 꺼지겠지.

<눈물의 행동들> 전시 프로그램_배선희 연극. <거울 나라의 낙타, 거북이, 고양이, 물고기 그리고 바다>, d/p갤러리, 4원17일~5월23일. 사진제공 더블데크웍스

배선희가 오팔 색 비닐로 조끼를 만들어 입고 “나는 물고기예요”라며 전시장 기둥 뒤에 서서 반주도 없이 꾸밈도 없이 생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사막에서 물고기를 그리워하다 죽은 낙타 이야기에 대한 답가다. 직전에는 기둥 반대편에 기대진 전신거울 앞에 앉아서 오른손 검지를 구부려 낙타의 머리를, 나머지 네 손가락을 더 낮게 구부려 낙타의 혹과 다리를 표현한 손가락 낙타를 데리고 자기 몸을 모래언덕 삼아 물고기를 그리워하는 낙타 이야기인 ‘낙타의 노래’를 들려줬다. 나는 10년 전쯤에도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이 낙타 이야기의 프리퀄에 해당할 법한 배선희의 손가락 낙타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를 그리워하며 사막을 헤매던 낙타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모래언덕을 헤매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오늘 낙타와 나는 긴 시간을 넘어 비로소 물고기의 답가를 들었다. 사실 ‘낙타의 노래’의 낙타는 물고기를 그리워하다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이 답가는 낙타가 부재한 자리에 울리는 애상곡이다(<눈물의 행동들> 전시 프로그램_배선희 연극_<거울 나라의 낙타, 거북이, 고양이, 물고기 그리고 바다>, d/p갤러리, 4월17일~5월23일).

‘낙타의 노래’ 직전에는 몇년 전 길에서 구조해 식구가 된 고양이 추석이에 대한 ‘대단한 추석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신거울 옆 바닥에 앉아 한쪽 무릎을 거울 앞에 세운 채, 어린 시절 하굣길에 자기 무릎을 힘겹게 기어올라 매달리던 아기 길고양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관객들의 몸들 사이로 지금은 죽고 없는 과거의 아기 길고양이가 지금의 배선희 무릎을 기어오르는 것을, 거기 모인 모두가 보이지 않지만 본다. 전신거울 앞에는 고양이 이야기 직전에 들려준 또 다른 이야기 ‘대단한 거북이 이야기’에 사용된 키 작은 거울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거울들에는 배선희가 직접 오려 붙인 거북이들, 물고기들, 해초들 그림이 붙어 있다. ‘모두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는 ‘대단한 거북이 이야기’는 일본군위안부였던 이순덕, 이용수, 길원옥 할머니께서 직접 쓰고 그리신 것으로 배선희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아 동명의 연극으로 만든 것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세분이 지은 이야기와 그림이 배선희의 연극하기, 관객들의 바라보기, 경청하기, 참여하기 사이에서 새롭게 쓰이고 읽히고 발화되고 들린다. 거울들에 붙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거북이들 사이에서 아기 길고양이가 배선희의 무릎을 기어오르는 것을,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내가 함께 본다. 과거의 아기 길고양이는 나중의 길고양이인 추석이를 불러오고, 지금은 집고양이가 된 추석이와 배선희와 여러 겹의 거울 안팎의 관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넌 누구야’라고 묻는다.

<눈물의 행동들>은 제각각의 트라우마를 입은 몸을 다시 살펴보고 기록하고 회복하기 위해 2025년 봄부터 함께 읽고 쓰며 시간을 이어온 다섯명의 예술가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과 침묵을 읽고 들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몸을 기록한 전시다. 다섯명의 예술가 김보라, 김솔지, 배선희, 오로민경, 주희는 전시를 일종의 ‘몸의 지면’으로 상상하고, 몸이 실시간으로 감각을 느끼고 반응하듯이 전시 역시 관객들의 들여다보기, 기어들어가기, 누워보기 등의 ‘몸의 개입’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장되고 변형되기를 의도한다. 예술가들은 각자만의 태도와 방식으로 증언을 만나고 그들의 몸의 반응은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객 몸의 반응으로 만나고 이어진다. 프로그램의 ‘기록하는 몸 소개’란에는 배선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배우. 주체가 궁핍한 사물로 남게 되는 글쓰기와 연극 만들기를 지향한다. 의미를 초과하거나 알 수 없이 고집하는 몸의 수행성을 타자를 향한 여성적 잉여향유와 연결 짓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행위의 이중성과 모호성을 반영한 ‘시적연기설계’를 정교화하는 작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