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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의 클로징] 풍요의 시대라서만 생기는 문제일까?

넷플릭스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OTT가 제시하는 방대한 영상 목록 앞에서 무엇을 고를지 주저하다가 시간만 낭비하거나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워낙 흔한 일이 되었고, 딱히 어려운 말도 아니어서 기가 막힌 용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게 된다. 이 풍요의 시대에, 누구나, 여기저기서 겪고 있는 결정 장애만을 의미할까? 뭔가 더 깊은 이유가 있고, 더 방대한 함의가 있을 것 같은데?

넷플릭스 증후군에 연계되어 있는 여러 현상이 있다. 주저함, 쓸데없는 시간 낭비, 선택한 것에 대한 집중력 저하와 불만족, 전체적인 효용과 만족감의 하락,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음. 이건 단지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생기는 현상인 것만 같지는 않다. 나는 원래 선택지가 많다고 해서 결정 장애를 겪는 성향도 아니다. 최적의 선택을 내려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게다가 선택지가 많다면 개별 선택에 대해서 너무 고심하지 않아도 된다. 실패하면 다시 선택하면 되고 새로운 비용을 지불할 필요 없다.

그런데 여기서 희소한 것은 개별 영화가 아니라 내 시간이며, 따라서 아까운 것은 돈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내가 던져야 하는 시선이다. 개별 영상이 내 시선을 제대로 빼앗지 못한 채 단지 그 시간과 노력을 앗아갔을 뿐이라는 사실에 허탈해진다. 그러니 개별 선택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모든 후보작들은 ‘과거에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어서, 예컨대 알고 있는 맛을 고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평소 좋아하는 맛집을 찾아 그 먹어본 맛을 다시 즐기려 할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주저함이, 음식 배달 플랫폼 화면 위에서는 발생하는 이유도 같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선택하고 싶어지고, 항상 더 나은 선택이 있을 것 같은데, 나쁜 선택의 씁쓸한 뒷맛이 너무 자주 너무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그놈의 알고리즘’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내 취향이 분석이 되어 좋은 추천이 이뤄지기는커녕 내 취향에 전혀 맞지 않거나 아주 저질에 가까운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내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경험이 쌓일수록 그 느낌은 점점 더 확신이 되어간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뜬 것이 아닌 그 뒤에 감춰진 무언가를 찾아 더 많이 헤맬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어느 정도 예상과 기대를 품은 채 선택했던 것에선 확실히 실망감이 적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 막연히 첫 화면을 열었을 때에는 확실히 막막함이 크고 더 오래 더 넓게 헤매다가 이내 기력을 잃곤 하는 것이다.속이고 실망시킬 것이 뻔한 OTT 서비스의 알고리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이 여가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해야 할 것만 같은 모종의 의무감적 욕망 사이에 끼어 있는 나. 단지 풍요로워서만이 아니라 믿지 못하겠어서,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인 것 같아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그 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