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휴먼드라마의 대가를 꼽으라면 흔히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노희경 작가일 것이다. 노희경 작가는 감각적 영상 중심의 트렌디드라마 전성기이던 1990년대에 등장,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 극의 초점을 돌려놓으면서 일찌감치 한국 휴먼드라마 거장의 지위를 획득했다. 최근에 그 계보를 잇는 존재로 각인된 이름은 박해영 작가다. <올드미스 다이어리>(KBS), <청담동 살아요>(JTBC), <또! 오해영>(tvN) 등 시트콤, 로맨스 장르에서도 인간의 다양한 내적갈등에 주목했던 박해영 작가는, 2018년 방영작 <나의 아저씨>(tvN)부터 <나의 해방일지>(JTBC)를 거쳐 현재 방영 중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JTBC, 이하 <모자무싸>)까지, 휴먼드라마 삼부작을 통해 한층 본격적인 인간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두 작가의 휴먼드라마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소외, 결핍, 상처에 집중하지만 전개 방향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가령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 인간은 대개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긍정하는 편이라면, 박해영 작가의 작품은 그저 실존하는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의 노력에 더 가깝다. 그리하여 박해영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더 문제적이며, 시청자들 각자가 지닌 혐오와 연민의 경계를 자주 넘나든다. <모자무싸>에서 명대사로 회자되는, “내 인생이 왜 네 맘에 들어야 하는데요?”라는 동만(구교환)의 말은 박해영 휴먼드라마의 인간관을 관통하는 대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닫힌 세계, 붙박힌 존재들
박해영 휴먼드라마 삼부작은 기본적으로 닫힌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인물들의 집, 직장, 지하철, 버스, 건널목 등 지극히 제한적인 주요 공간과 이곳을 오가는 인물들의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 잘 드러난다. 더 나아가 아예 한자리에 붙박힌 듯한 인물들도 많다. <나의 아저씨>에서 운신이 힘든 지안(이지은)의 할머니 봉애(손숙), 일하는 시간 외에는 같은 자리에 앉아 술 마시는 게 일상인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손석구), <모자무싸>의 진만(박해준) 등이 대표적이다.
더 상징적인 장면은 <나의 해방일지> 1화에 등장한다. 편의점 본사 직원 창희(이민기)가 담당 점주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다. 은퇴를 앞둔 점주를 향해 본사에서 물건을 정리할 때까지 가게를 닫아두라고 조언하는 창희에게 점주는 말한다. “어떻게 잠그는지 몰라. 내가 24시간 영업을 10년을 했는데 문을 잠가봤겠냐.” 물리적 잠금장치도 필요 없을 정도로, 닫힌 세계가 내면화된 실존의 표현이다. “어디에 갇혔는지 모르겠는데 꼭 갇힌 거 같아요. 속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미정(김지원)의 말도 마찬가지다. 제목부터가 <나의 해방일지>인 작품은, 닫힌 세계에서 한껏 왜소해진 인물들의 불안과 출구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들 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점프 신은 이같은 해방에의 욕구를 반영한다. <나의 해방일지> 5화 엔딩 신에서 구씨가 보여준 마법과도 같은 점프가 그렇다. 같은 자리만 맴돌던 인물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던,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놀라운 점프는, 망상으로만 탈출의 순간을 그려왔던 인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모자무싸>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등장한다. 황동만은 자신이 극도로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유명한 점프 신을 시청하거나 따라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마음의 출구, 감정의 서사화
왜소한 존재들의 출구 전략은 다름 아닌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2023년 3월12일자 <씨네21>과 진행한 ‘22 WRITERS⑥’ 특집 인터뷰에서 박해영 작가는 “감정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박해영 작가의 휴먼드라마 삼부작은 ‘감정 삼부작’ 혹은 ‘마음 삼부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내면 탐구에 천착한다. <나의 아저씨>의 겸덕(박해준)이 이야기한 ‘마음공부’, <나의 해방일지>에서 해방클럽의 자전적 글쓰기, <모자무싸>의 감정 패턴 분석 등이 일관된 특징이다.
이에 따른 감정의 서사화 기법도 박해영의 휴먼드라마를 인상적으로 만든다. <나의 아저씨>에 등장하는 “내심과 외경, 내 속에 있는 걸 밖에서 본다”는 겸덕의 말은 그 서사 전략을 요약한 문장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박해영 작가의 작품은 외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감정을 중심으로 한 극 전개를 선보인다. 대표적 사례가 작품들의 매 회차 엔딩 신이다. 가령 <모자무싸> 1화 엔딩 신을 보라. 주인공 황동만이 시련의 하루를 보낸 뒤 어두운 방에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눈물이 그렁한 동만의 표정 위로 낮에 만난 제작사 대표 최동현(최원영)과의 일화가 지나간다. 평소 동만을 무가치한 존재로 멸시하는 동현의 “건설적으로 살라”는 모욕적 충고에, 동만은 “내 인생이 왜 네 맘에 들어야 하냐”고 반격을 가한다. 소위 ‘엔딩 맛집’의 임팩트를 추구하는 기존 드라마 관습을 따른다면 탁자 위로 점프해 동현을 향해 달려드는 동만의 사이다 같은 반격으로 끝을 냈겠지만, <모자무싸>는 그 일화를 회상하며 영화 속 빌리의 점프에 환호하는 동만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분노와 억울함을 자가 치유하려는 인간의 안간힘, 그 격동하는 감정을 화면의 중심에 놓으며 충분히 흡인력 있는 신을 만들어낸 사례다.
이처럼 인간 내면에 밀착하는 박해영 작가의 휴먼드라마는 뒤틀리고 배제되어 채 이름 붙여지지 못한 다양한 감정도 건져 올린다. <모자무싸>에서 종종 ‘알 수 없음’ 상태로 분류되는 동만과 은아(고윤정)의 감정들이 그러하다. 그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무시하는 이들 앞에서 불쑥 떠오르는 “분노43, 절망20, 좌절16, 슬픔14, 간절함7 퍼센트”의 감정에, 은아는 ‘자폭’, 동만은 ‘도와줘’라는 이름을 붙인다. 보통 부정적 감정으로 분류되는 ‘쓸쓸’이 동만에게는 긍정적인 감정색으로 새겨지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또는 분명히 ‘분노’라고 표기되어야 할 순간에 ‘허기’라는 상태가 표시되는 장면처럼, 시청 과정에서 섣부른 판단과 선입견이 뒤집히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나의 해방일지> 최종화, 오랜만에 만난 해방클럽 4인방이 대화를 나눈다. ‘해방 좀 됐냐’는 물음과 ‘힘겨움의 원인을 짚었다는 것 외엔 잘 모르겠다’는 누군가의 말에, 조용히 듣기만 하던 미정이 대꾸한다.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내 문제점을 짚었다는 것.” 박해영 작가의 휴먼드라마는 인간의 본질이 어떠하다고 정의하지 않는다. 다만 그 내면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그만큼 진중해진다. 최근 극적인 사건에만 치중하며 ‘숏폼’식 전개라는 평을 자주 듣는 한국 드라마계에 꼭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