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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말과 말과 말 그리고 이미지들, 오진우 평론가의 <그녀가 돌아온 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정수(송선미)는 밤인데 왜 커튼을 쳤을까? 눈이 안 좋다면 연기 연습실의 내부 조명을 꺼야 했다. 암흑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만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실제 영화관에서 <그녀가 돌아온 날>의 5장에서 나는 눈을 잠시 감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정수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표정, 몸짓, 시선 등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들이 흐릿한 숏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는 빛에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빛은 언제나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크게는 홍상수 영화에서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일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그녀가 돌아온 날>을 보기 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중인 ‘홍상수 전작전: 인트로덕션’에서 보았다. 30년의 간극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경(이응경)이 신문지를 깔고 베란다로 향하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엔딩은 여전히 강렬하고 미스터리하다. 하지만 이번에 봤을 때 엔딩보다 오프닝이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검은 화면에 크레딧이 나오며 이상한 소음들이 뒤섞여 들렸다. 영화가 끝나고 반추해 보니 이 오프닝은 앞으로 펼쳐질 장면들에서 사운드를 따로 떼서 음악과 함께 배치한 것이었다. 화면을 비워둔 상태에서 사운드가 불길하게 들리는 오프닝은 좋은 의미에서 잡(雜)스러웠다. 그가 카메라로 포착하는 세계 역시 그러하다. 갤러리부터 시장 길바닥까지 근사하고 추잡한 것들을 엮어 충돌시키거나 한 프레임 안에 동시에 담아낸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은 상당히 세련되고 모던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모순은 곧 홍상수가 표현하는 세계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인물들은 순수를 향한 결벽증적인 태도를 보인다. 영화를 보며 새삼스럽게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수많은 얼룩의 이미지다. 김칫국부터 구토, 빵 부스러기, 침대 위 오염된 자국 그리고 낭자한 피까지. 인물들은 이러한 얼룩들을 지우려고 애쓴다.

순수를 향한 집착은 상대의 마음을 쥐고 흔들려는 소유욕의 다른 말이다. 이러한 욕망은 인물들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다. 홍상수의 영화적 세계는 얼룩과 순수라는 양극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좌충우돌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의 정수도 그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존재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친구에게 선물을 주려다 생긴 일화를 꺼낸다. 정수는 오랜 친구에게 선물과 함께 편지를 쓰려고 하는데 펜에서 잉크가 나와서 카드에 얼룩이 졌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때 꽂힌 그 이미지에 선물을 보내지 말자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고백한다. 이 장면은 <해변의 여인>에서 중래(김승우)가 문숙(고현정)에게 이미지와 싸우고 있다고 강변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체에서 특정한 포인트들에 시선이 가면 환기되는 이미지가 생기고 그러면 실체는 없어지고 이미지만 남게 된다. 따라서 다른 포인트들을 발견하고 같이 보려는 노력을 통해 실체에 좀더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면 상투적이고 사악한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중래의 지론이다. 문숙은 나중에 그것을 ‘개똥철학’이라고 비난한다. 문숙은 중래에게 선희(송선미)와 함께 숙소 문 앞에서 자고 있던 자신을 넘어갔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중래는 이에 대해 말하지 않고 외면한다. 그는 실체에 가까운 이미지를 추구하기 위해 싸운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위해 진실을 취사선택하는 쪽에 가깝다. 홍상수의 인물들은 자신의 지론을 번번이 배반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인물들이 내뱉는 말들이 언뜻 멋져 보이지만, 문숙의 말처럼 ‘개똥철학’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비슷한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인물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도 등장한다. 민수(손민석)는 민재(조은숙)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둘의 섹스신에서 민재는 자신의 눈을 보고 하라고 민수에게 말한다. 민재는 지금 벌어지는 육체적 관계를 보라는 것이지 결코 마음을 내준 것은 아니었다. 민수는 육체적 관계를 곧 사랑으로 오인해 민재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버린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눈먼 자다. 김예솔비 평론가의 표현처럼 “눈의 종말”은 홍상수의 영화적 세계가 시작되면서 인물들이 겪는 신체적 증상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돌아온 날>

<그녀가 돌아온 날>로 다시 돌아오면 정수가 앞서 언급한 일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늘 나오는 말이자, 감독 자신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홍상수의 지론이지만, 그가 영화를 통해 이를 관철하려고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역설하는 쪽에 가깝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과 동시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두 가지를 필모그래피 전체를 통해 실험하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하하하>에서 항구에 있는 거지를 보며 이 주제에 대해 탁상공론이 벌어진다. 호프집에서 저 멀리 항구에 있는 거지에게 줌인하고 다시 줌아웃하는 카메라의 왕복 운동은 인상적이다. 호프집과 항구 사이에 유리창이 존재한다. 유리창은 투명하여 밖의 대상을 볼 순 있어도 결코 알 수는 없다. 결국엔 그렇게 가까이 도달했지만, 표면에 불과한 것이다. 이후에 한 커플이 항구에서 거지와 대면하고 질색하며 달아난다.

보이지 않는 실체와 그를 둘러싼 말과 그 말로 빚어낸 이미지. 이 사이에서 무엇을 믿을지 옴짝달싹 못하는 홍상수의 인물들. <그녀가 돌아온 날>은 말의 영화라고 할 정도로 정수의 말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우리는 정수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 이미지는 정수라는 인물의 실체에 근접해 있을까? 그녀의 말처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한편 정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우선 관객의 입장에서 우리는 세번의 인터뷰를 본다. 정성일 평론가의 유행어처럼 “같은 말의 다른 판본”처럼 느껴지는 세번의 인터뷰에서 정수의 말을 영화를 보는 내내 하나하나 비교할 순 없다. <해변의 여인>의 중래의 지론에 따라 반복되는 어떤 포인트를 따라 정수를 그려나갈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한 꼭지 중 하나가 ‘조언’이다. 기자들은 정수에게 요즘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을 부탁한다. 정수는 “자신을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인 정수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터뷰라는 짧은 만남 속에서 그녀의 말은 도를 닦는 현자의 말처럼 멋지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한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 이야기를 기사에 싣지 말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 역시 대외적으로 비칠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있는 그대로 정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3개의 인터뷰를 한번에 보는 방식일 것이다. <그녀가 돌아온 날>의 트레일러에서 구현한 중첩된 이미지는 실체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이 트레일러는 글과 말의 형태의 비평보다 홍상수 자신의 비전에 걸맞은 비평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지속되는 시간 속에서 변화의 양상을 표현한 세잔의 그림처럼 트레일러의 이미지는 홍상수가 구현하고 싶은 한폭의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사운드는 그렇지 않다. 트레일러의 사운드는 인터뷰에서 한 말들을 중첩시켜 음악과 함께 배치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처럼 들린다. 본편인 <그녀가 돌아온 날>에서의 말의 중첩은 정수의 대본에서 이뤄진다. 트레일러의 이미지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방식인 것이다. 정수가 작성한 대본은 실체에 가까운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돌아온 날>의 5장에서 세번의 인터뷰에선 듣지 못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은 흥미롭다. 즉흥적으로 지어낸 것인지 대본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영화를 보며 눈을 감아봤다고 말했다. 비슷한 구도와 고정된 숏으로 진행되는 영화이기에 말만 들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침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때 정수와 연기 파트너인 준희(박미소)는 대본을 들여다본다. 침묵이 흐르다 다시 말이 이어지고, 그 말에 반응하는 얼굴과 몸짓을 통해 정수는 인터뷰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4장부터 영화는 저화질로 바뀌며 흐릿한 세계로 진입한다. 하지만 여전히 빛은 정수의 얼굴 위로 내린다. 홍상수는 흐릿한 세계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빙빙 도는 말 속에서 새로운 말을 탄생시킨다. 그의 영화가 때론 흐릿하고 뭉개질지언정, 완전히 어두운 밤이 되어 목소리만 들리는 세계가 될 수는 없다. 여전히 그의 영화엔 지켜볼 무언가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