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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칸에 뜬 미확인 한국영화(들)

미확인 물체. 감독 나홍진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싶다. 살을 조금 보태자면, 그의 영화는 확인되지 않은 물체라기보다는 확인이 되어도 여전히 미지의 상태를 유지하는 에너지덩어리에 가깝다.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지연시킴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정석의 ‘서스펜스’와는 비행 궤도가 다르다. 나홍진이 구성한 장면들은 존재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기주장이 분명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분명히 해당 장면에서 무언가를 정확하게 본다. 그리고 이내 곤경에 처한다. 목격하긴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대상은 투명한데 해석이 불투명해지는 상태. 한마디로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다.

<호프>는 공개 전부터 이미 수많은 풍문이 돌았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이 단일 영화로 한국영화 최고 수준에 이를 거란 소식이 들리자마자 기대가 하늘을 찔렀다. 단순히 규모가 큰 작품, 이른바 대작에 거는 기대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진절머리 날 정도로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이 창작자가 상업적이어야 하는 프로젝트의 키를 잡았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나홍진 감독의 현장에는 항상 괴소문에 가까운 고생담들이 따라다닌다. 그의 완벽주의는 정평이 나 있고 우리는 그 결과물을 수차례 목격해왔다. 여기에 확인할 수 없는 몇 가지 작은 소문들이 더해지면 어느새 나홍진의 현장은 무시무시한 괴담으로 승화한다. 확인 불가능한 소문과 반응의 메커니즘을 스크린에 옮겼던 <곡성>처럼, 영화 바깥을 둘러싼 이야기가 들려오는 순간부터 ‘나홍진 영화’라는 정서가 축적되기 시작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나올 거라는 기대(혹은 불안) 속에 기꺼이 현혹되고 싶은 마음.

진짜 재미있는 건 칸에서 영화가 공개된 지금도 <호프>의 정체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별 다섯개와 한개로 홍해처럼 갈라진 <호프>의 극단적인 반응은 도리어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아무리 많은 설명과 반응과 말을 보태보아도 윤곽이 안 잡힌다. 대체 이번에는 뭘 만든 걸까. 결국 직접 목격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높은 확률로 직접 보고난 뒤에도 이 간극은 메워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그게 연출자 나홍진이 스크린이라는 미로 속에 관객을 가두는 방식이었으니. 리뷰와 비평, 인터뷰와 반응을 찾아볼 때마다 바닷물을 들이켠 것마냥 호기심의 갈증이 더해질 뿐이지만 이 혼돈의 쾌락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나홍진 영화의 진짜 재미는 곧게 뻗은 것처럼 보이는 길을 헤매는, 기묘한 과정에 깃들기 때문이다. <씨네21>에서 일대일 인터뷰와 특집기사를 통해 <호프>의 소식을 길게 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래 다른 특집을 준비 중이었지만 <호프>를 둘러싼 엇갈린 반응(혹은 소문)의 홍수 속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소풍 전날이 오히려 더 기대되고 즐거운 것처럼, 이 미확인 물체가 국내 극장가에 출몰하기 전까지는 실체 없는 말의 게임을 만끽하고자 한다.

한편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칸에서 가장 먼저 날아와 국내 극장가에 도착했다. 어쩌면 나홍진 감독과 가장 멀리,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연출자 중 한 사람이 연상호 감독일지도 모르겠다. 나홍진 감독이 극호와 불호의 양극단의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정확한 중간값의 지점에서 모든 걸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연출자다. 대중상업영화로서 이만한 미덕도 없다고 해도 좋을 귀한 재능이다. 올해는 <군체>를 필두로, 칸영화제에서부터 한국영화의 파도들이 차례로 당도할 예정이다. 크기도 높이도 질감도 다른 영화의 파도들을 기다리는 재미가 벌써부터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