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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book] <권위>

안드레아 롱 추 지음 허원 옮김 동녘 펴냄

“어째서 우리는 이곳 ‘문화의 알프스’에서 요들송이나 부르고 있었는가?” 작품을 재치 있게 ‘까는’ 것으로 정평난 평론가 안드레아 롱 추가 평론가를 평론하는 글로 <권위>의 문을 연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정치의식은 쉽게 상품화되며, 현재주의의 허영은 모두를 갉아먹는다. 책상을 쾅쾅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에서 중요한 전제는 “모든 진정한 권위의 비밀은 돈에 있다”. 비평이 처한 위기를 진단하면서도 돈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돈이 진실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과 비용을 보장받는다는 일이 창작만큼이나 평론에서도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다.

안드레아 롱 추는 특정 작가들을 ‘저격하는’ 비평을 쓴다고 말해진다. 안드레아 롱 추는 그런 말을 듣는 데 불만이 없다(“어째서 서평이 개인적이어서는 안되는가?”). 숏폼 플랫폼에서 책을 읽은 독자들이 표지사진처럼 우는 영상을 올리는 화제성으로 바이럴을 타며 ‘끌올’된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에 대한 글은 작가의 강점이 곧 약점이 되는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안드레아 롱 추의 칼은 멈추지 않는다. “야나기하라의 소설에 여성 인물이 유독 드문 것은 작가로서 그녀가 여성 주체성을 자신만의 것으로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이 문장은 여성 독자들의 BL 향유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평론이 평론하는 대상을 떠나서 그 자체로 문학적 가능성을 지닐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하는 듯한 이 책에 실린 글 중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에 관하여> <권위> <가짜 신성>같은 글은 특히 흥미롭다. <권위>는 “어째서 우리는 비평가에게 권위를 요구하는 걸까?”로 시작하는데, 당연하게도 그 질문은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타오 린의 소설에 대해 던지는 오토픽션에 관한 다음과 같은 통찰 역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어떤 글을 ‘오토픽션’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엄숙한 이름이 암시하는 자의식이 아니라 자기를 은폐하는 대담함이다. 다른 종류의 소설에서는 작가가 플롯과 인물, 문체 뒤에 숨는 반면, 오토픽션에서는 자기 자신의 삶 뒤에 숨는다.” 정의를 구체적 작품에 적용시키는 작업은 이토록 창의적으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2026년 상반기 최고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