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오피스 1인실에서 글을 쓴다. 월 33만원인데 1년 약정 특별가로 30만원을 지불 중이다. 책상과 책장만으로도 공간이 가득 차서 맨손체조도 하기 어렵지만, 노트북이랑 책을 안 들고 다니는 것만 해도 어디겠는가. 게다가 믹스커피와 차도 제공하니 카페 갈 일도 없다. 카페에서 장시간 눈치보고 있을 필요가 없어서겠지만, 5천원짜리 음료 60잔이 사무실 월세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쉽게 향하지 않는다.
365일 24시간 내내 사무실을 이용해야 본전이라도 건질 것 같지만, 막상 그러지도 못한다. 주중에는 오후 4~5시쯤 가서 다섯 시간 정도 머문다. 가족들이 등교하고 출근한 조용한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집안일을 해야 해서다. 오전 6시30분부터 가족들 식사를 준비하고 겨우겨우 먹인 다음 우당탕탕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면 8시 정도부터 온전한 내 시간이 되는 듯한 착각에 커피 한잔을 우아하게 마시지만, 이내 안다. 해야 할 게 산더미라는 사실을.
빨래도 해야 하고, 건조기도 돌려야 하고, 옷도 정리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수없이 반복해도 끝이 나질 않는 그런 일들 말이다. 반려견의 야외 배변도 신경 써야 한다. 비대면 강연 중 쉬는 시간에도 그게 신경 쓰여 강아지 목줄을 찾고 부리나케 집 밖을 나간다. 그러다가 책상 위에 올려둔 식은 커피를 발견하고 한 모금을 마시지만 맛이 있겠는가. 한숨 몇번 쉬다 보면 오후다. 그때부터 집중이라도 하면 되겠지만, 저녁 식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가 또 고민이다. 집에 대파가 있던가, 다진 마늘이 있던가 따위의 신경을 쓰면서 밥솥을 돌리고 찌개를 하나 끓여놓는다. 그제야 사무실로 향한다. 하교하고 퇴근하는 가족들과 만나는 걸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제야 쉬러 집으로 온다. 공존하기에는 서로가 불편하니, 한명이 움직이는 게 훨씬 낫다.
이런 일상을 푸념과 한탄의 추임새를 삭제하고 풀어놓으면, 남자인 내게 엄청 유리하다. 주변의 일반적인 남자와는 다른 모습이라면서, 진정한 성평등주의자 어쩌고라는 감탄이 따라오니까 말이다. 솔직히 그걸 노리고 적당히 내 모습을 포장하고 싶을 때도 있다. 요즈음은 작가의 글보다 작가의 생활이 어떤지가 더 궁금한 시대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잘 활용하면 나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다. 이런 생각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본인 시간이 날 때 가끔씩 집안일 ‘도와주는’ 수준의 남자들이 자신을 평등 전도사처럼 부풀리는 것도 많이 보았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나는 결혼 후 19년째 모든 걸 다 하고 있으니, 객관적으로 가정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론 떠벌릴 수가 없다. 그러려면 최소한 내가 이 모든 걸 좋아해야 한다. 화를 내선 안된다. 그런가? 아니다. 난 매일 투덜거린다. 입은 삐죽거린다. 너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다.
프리랜서. 내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거뿐이다. 우주의 기운이 그렇게 흐른다. 집안일을 집 안에 있는 사람이 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강력한 에너지를 나는 넘어서질 못했다. 넘어섰으면, 가정의 행복이 지금과 다를 수도 있었다 생각하면 그러지 않아서 다행임을 알면서도 현실이 객관적으로 고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고된 사람을 이길 순 없다. 둘의 차이가 수치로 측정될 순 없겠지만, 차이가 분명할 거라는 정서는 심하게 흐른다. 직장인 눈에 프리랜서의 삶은 이러나저러나 한량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거 아니라고 우기기도 했지만, 게임이 안된다. 프리랜서는 절대로 직장인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불평을 할 수는 있지만, 불평까지만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근, 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글쓰기 강연을 했다. 퇴직 후에 책 한권 내고 강사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하지만 글쓰기에 큰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동기가 좀 달랐다. 그들은 글이 좋아서 글을 쓰겠다는 게 아니다. 퇴직이 다가오니 책 한권 내고 강의 다니면서 돈 잘 버는 것처럼 보이는 아무개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대부분이 직장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 어떻게 살라고 조언하는 자기 계발 분야인데 직장인 내공이 꽤 있는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려면 명함용으로라도 책 한권은 있어야 함을 알기에 생애 처음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 그들이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로 어떻게 먹고사는지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질의응답은, 강연 내용하고는 하나도 상관없었지만 그들에겐 가장 중요한 것들로 채워졌다. 평생 건강보험료를 (돈을 받아) 공제하며 살아온 직장가입자들과 평생 건강보험료를 (돈을 벌어) 납부하는 지역가입자인 나의 삶이 많이 다르니 말이다. 그들은 인세가 얼마냐, 강연 요청은 얼마나 오느냐, 방송 출연을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지 등등을 물었고 나는 성실히 답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먹고산다는 건, 직장인의 출근부터 퇴근까지인 12시간이 다른 형태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24시간 전체가 온전히 프리랜서라는 이유 때문에 구속당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직장인이길 멈춘다는 건 보너스나 퇴직금 등 직장인이기에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직장인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포기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했다. 그제야,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알게 된다고 하니 다들 웃는다. 몇명은 책 한권 내겠다는 꿈을 접고 월급 받는 일을 찾기 위해 구인 광고를 열심히 볼지도 모르겠다.
최근 고유가지원금 신청을 하면서 조마조마했다. 나처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들은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다. 부과되는 금액이 현실적이었던가. 직장인처럼 절반을 고용주가 납부하는 게 아님을 감안해도 수긍이 되지 않는다. 이것도 짜증이 나는데, 이 금액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의 경계가 되니 어찌 기분이 좋겠는가. 내 삶이 상위 30% 안에 들어 있다는 안락함이라도 있다면 모르겠는데, 현실은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납부하려고 다른 일거리를 수락하는 지경이다. 외치고 싶다. 만국의 프리랜서들이여. 단결하자고. 아, 그러면 또 프리랜서가 아닌 것도 같네. 그러니, 오늘도 난 혼자다. 이 절대적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는 자들만이 직장을 떠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