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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스필버그 게임, 이미 아는 세계와의 낯선 조우

거장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설레고 즐거운 한편, 반복되는 숙제를 다시 받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저 한편의 새로운 영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게 오해하지 않고 영화를 정확히 보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곁을 지켜준 감독이 그간 걸어온 궤적을 자연스럽게 뒤돌아보는 건 싫어도 귀찮아도 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조건반사에 가깝다. 거장의 지난 경로를 복기하는 시간은 대체로 익숙하고 종종 부담스럽지만 가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봉을 앞둔 <디스클로저 데이>는 단순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신작 이상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얼핏 익숙해 보여도 새로운 보물을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여러 지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중에서도 오랜만에 돌아온 스필버그의 SF, 외계인과 음모론에 얽힌 이야기라는 점에서 솟구친 기대감이 공개된 내용을 앞서간다. 스필버그의 기나긴 필모그래피를 몇 단어로 축약하긴 곤란하다. 심지어 그는 오른쪽과 왼쪽, 그러니까 작가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응시하는 게 가능해진, 희귀한 창작자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기획하는 한편에서 <우주전쟁>을 상상하는 연출자라니.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보고 정리하면서도 의미가 있을까 의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록버스터의 출발점으로서의 스필버그는 이미 잘 알려진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럴 때마다 언제나 낯선 얼굴을 들이밀어왔다. <디스클로저 데이>가 얼핏 이미 수십 차례 반복된 빤한 소재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앞에 스필버그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함부로 넘겨짚을 수 없다.

‘외계인과 만나는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 전환점에는 단연 <미지와의 조우>가 자리한다. <죠스>의 대성공 이후 자신이 진짜 꿈꿨던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제작한 이 놀라운 SF는 실은 ‘외계인’으로 상징되는 다른 존재와 소통하는 방식을 탐구한 영화다. 느린 호흡, 낯선 음악, 서스펜스의 응축까지. 소리와 빛으로 빚어낸 미지의 존재와의 만남이라 해도 좋은 이 걸작은 스필버그가 좋은 이야기꾼 이전에 시인임을 증명한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 영화가 선의와 상상력에 기반해 미지의 존재와 접촉하는 방식은 영화라는 행위,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후 <우주전쟁>에서 스필버그는 정반대의 냉혹한 시선을 선보인다. 마치 <미지와의 조우>나 <E.T.>의 안티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동시대 미국의 공포와 부서져가는 가족 중심 공동체의 실상을 날카롭게 헤집는다. 스필버그가 시대와 사회를 고스란히 투영해왔던 미국영화의 위대한 영혼을 이어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이 영화에서 외계인의 침공은 맥거핀일 뿐이다. 그의 시선이 맺힌 건 결국 사람, 달리 표현하면 일종의 휴머니즘이었다. 외계인을 소재로 삼아도 스필버그의 카메라의 중심엔 늘 인간이 있다.

그리하여 꼭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A.I.>다. ‘디지털 피노키오 스토리’이자 스필버그의 최고작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이 작품이야말로 21세기 스필버그의 분기점이다. 문명에 대한 비판과 염세적인 자리에서 끝내 온기를 발견하는 스필버그의 애절한 상상력은 익숙한 방향으로 향하는 듯하다가 꼭 경로를 벗어난다.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어서 죄송해요”라고 매달리는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표정보다 슬프고 무서운 장면을 보지 못했다. 거의 트라우마처럼 새겨진 이 장면에서 느낀 것과 같은 놀라움이 이번 신작에도 박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디스클로저 데이>를 위한 짧은 예고편을 준비했다. 어쩌면 이걸 읽으며 오히려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대감은 한층 부풀어오를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