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는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고래가 놀라지 않게, 마음 상하지 않게, 거슬리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고. 바다에 뛰어들어서도 안되고, 쫓아가서도 안된다고. 그저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고래를 수면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고. 규칙을 어기면 선장이 그 자리에서 투어를 접는다고 했다. 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배라고 해서 탔는데, 규칙이 이토록 엄격하다니. 배에 타자마자 주눅이 들었다.
고래가 내 버킷 리스트에 오른 것은 남자 인어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다. 주인공은 종종 혹등고래와 수영을 했다. 인어니까. 내가 고래를 실사로 찍어오겠다고, 아무리 CG라도 실사 레퍼런스가 있어야 한다고 큰소리쳤지만 제작자와 CG 슈퍼바이저는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여행 좋아하는 내 속이 뻔히 보였던 거겠지. 그러면서 고래는 내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수소문해보니 모리셔스, 프랑스령폴리네시아, 통가에 가면 고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겠는 먼 나라들. 비용과 고래 출몰 시기를 견주고 있는데, 의외로 가까운 오키나와에 가면 혹등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놀라운 마음으로 나는 냅다 비행기표를 끊었다.
항구를 벗어나자 배가 제법 거칠게 흔들렸다. 2월의 바닷바람은 아직 칼칼했고, 물보라가 얼굴까지 튀어 올랐다. 배에 탄 사람들은 난간을 붙들고 저마다 수평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버스만큼 거대한 짐승인데, 망망대해에서는 그 큰 것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단서는 오직 블로(Blow) 하나. 고래가 수면으로 올라와 숨을 내뿜는 물기둥이다. 그 작은 물보라를 발견하겠다고, 배에 탄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무전기에서는 근처를 살피는 다른 배들의 목소리가 지직거렸다. 서로 본 것을 일러주며 너른 바다를 함께 더듬었다. 나도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한쪽 바다를 살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바다는 그저 출렁이기만 했다. 이 돈 내고 고래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슬슬 엄습할 무렵, 누군가 소리쳤다. 고래다! 저 멀리 수면 위로 하얀 물기둥이 솟구치고 있었다. 배 위의 모두가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줄기 물기둥만 봤는데도 본전 생각이 싹 가셨다. 배는 엔진 소리를 낮추고 숨을 죽이듯 그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가까워지자 푸슉, 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거대한 숨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날개인지 지느러미인지 모를 거대한 것이 수면 위로 올라와 바다를 철썩 때렸다. 인사인지 위협인지 모를 그 한번의 손짓에 배 위가 잠시 조용해졌다.
고래는 잠깐 수면에 올라 숨을 쉬고 다시 잠겨 드는데, 그 짧은 순간에 드러난 진행 방향을 가늠해 배가 길목을 미리 지켰다. 그러면 여남은명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바다에 쏟아져 들어간다. 퐁당퐁당. 쫓아가는 게 아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다. 인간이 성가신 고래는 속도를 높이거나 방향을 크게 틀어 우리에게 허망함을 안기기 일쑤였다. 고래는 좀처럼 얼굴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군말 없이 배에 올라와 다시 도열해 다음 찬스를 기다렸다. 고래가 똑똑한 영물이라는 걸 다들 알기에, 어떻게든 그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만나려고 애썼다. 늘 새끼가 먼저 수면으로 떠오르고, 어미가 뒤따라 올라왔다. 거대한 몸이 물 위로 솟구치는 브리칭 장면을 기대했지만, 내가 본 것은 대개 검고 매끈한 등의 일부와 잠깐 치켜든 지느러미와 꼬리뿐이었다. 한번은 새끼 고래가 깊이 잠수하며 꼬리를 급하게 퍼덕였다.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물으니, 가이드가 웃으며 답했다. 어미에게 장난을 치는 거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거라고. 그 거대하고 신비로운 짐승도 제 어미 앞에서는 떼쓰는 아이였다.
한번 모습을 보여준 고래는 두번 괴롭히지 않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라 했다. 협회 차원에서 늘 규칙을 손보고, 고래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더 엄격하게 죈다고 한다. 그렇게 애를 써도 언젠가 고래가 이 바다를 찾지 않게 될지 모른다고, 가이드는 걱정했다. 멕시코 출장 때 들은 말도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혹등고래에게 아예 다가가지 않는다고.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만남이 잠시 허락된 호의처럼 느껴졌다. 고래를 보고 싶은 마음과 귀찮게 해선 안된다는 마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눈물겹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오키나와를 찾는 혹등고래는 멀리 베링해에서 온다고 했다. 차갑고 먹이가 많은 북쪽 바다에 살다가, 새끼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짝짓기를 하려고 이 온화한 바다까지 내려온다는 것이다. 먹이는 적어도 물이 따뜻하니, 새끼를 낳아 기르기에는 이만한 데가 없는 모양이다. 12월의 어미는 갓 새끼를 낳아 아주 예민하고, 2월쯤 되면 한결 누그러진다고 했다.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내가 오키나와에 머무는 동안 바닷물은 줄곧 흐렸다. 수면 아래는 카메라의 초점을 잡기조차 쉽지 않았으니 고래는 흐릿하게만 보였다. 검고 매끈한 등이 잿빛 바다 속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지고 말아, 또렷한 한컷을 끝내 얻지 못한 채 배에서 내려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 흐릿한 만남이 더 좋았다. 선명하게 다 봐버렸다면, 고래는 그저 거대한 동물로 내 안에 정리되었을지도 모른다. 흐린 물 너머로 아스라이 만났기에, 내게 고래는 끝나지 않은 신비다. 어쩌면 야생동물을 만난다는 건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온전하게 다 볼 수 없는. 그리고 그 흐릿한 만남을 핑계로 나는 여전히 고래를 좇는 여행을 꿈꾼다. 모리셔스, 통가, 프랑스령폴리네시아가 내 버킷 리스트 상단에 건재하다. 밑줄에, 별표까지 달고서.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