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쇨베르 감독은 형형색색의 꽃다발 세개를 안고 <씨네21>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앞서 인터뷰를 마친 배우들을 위한 것이었다. 내한하기 전 집에서부터 챙겨온 선물도 동봉했다. 덴마크 전통 디자인의 손수건이란다. 땀도 눈물도 잘 닦아줄 것 같은 그 아이템은 과연 <하나 코리아> 식구들에게 어울린다. 2010년 처음 서울을 방문해 우연히 “하나의 한국을 원한다”는 두 남성과 대화하고부터, 프레데릭 쇨베르 감독은 역사적 사실 너머 개인의 일생에 관여하는 분단의 이미지를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어느 벨기에 마을 주민들을 뒤따른 전작 <고스트 타운>에서부터 디아스포라의 감각을 체화한 뒤 오랜 탈북민 취재, 라디오 다큐멘터리 제작을 거쳐 완성한 <하나 코리아>는 그의 첫 극영화 연출작이다.
- 개인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에 쓰인 프로필 사진은 한국 횟집을 배경으로 찍은 건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하나 코리아>를 준비했다. 그 사진은 한창 북한에서 온 분들을 만나 취재하던 시기에 찍었다. 탈북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던 강사라 시소픽쳐스 프로듀서를 따라 포항에 갔을 때다. 포항이 물회로 유명하지 않나. 횟집에서 물회를 먹은 기억이 영화를 시작할 당시의 추억이기도 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모델이 아니다 보니 스토리가 담긴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해두고 싶기도 했고.
- <하나 코리아>의 주인공인 탈북민 혜선(김민하)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삼켜야 하는 건 결핵약과 구충제다. 급식이 주어지던 하나원 생활을 마친 뒤에는 처음 햄버거를 접하고, 스페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혜선에게도 혀와 코로 새로운 환경을 감지하게 한 까닭은.
한국에서는 식문화가 아주 중요하더라. 같이 밥을 먹으면서 소속감을 느끼는데, 그런 의미에서 혜선은 같이 밥 먹을 사람들을 찾고 있는 주인공이다. 북한에서와 달리 한국 사회에는 삶의 선택지가 무척 많다. 식사 메뉴를 고르는 일에서도 그렇다. 그 음식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혜선은 어디에서 왔는지의 문제가 내게 중요했다.
- 혜선과 보미(안서현)가 풍선껌을 씹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조금씩 제대로 된 풍선을 불어내는 두 사람은 이제 막 희망 비슷한 것을 품기 시작한 아이들처럼 벅차 보인다. 그런데 바로 다음 컷에서 둘은 하나원 동기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일렬로 서서 체조를 한다. 자율과 규율 사이에서 진동하는 도입부다.
풍선껌을 부는 장면에서 혜선과 보미가 단순한 캐릭터로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하길 바랐다. 그들이 쌓을 유대감을 예고한 직후 제복과 규칙의 공간을 비춘 건 그들의 현재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새로운 족쇄와 관계 맺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며 균형을 맞추려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 전체의 핵심이었다.
- 또 하나의 의미심장한 장면전환이 있다. 혜선이 컴퓨터 수업 중 일명 ‘기쁨조’로 불리는 북한 청소년들의 공연 영상을 본 뒤 홀로 강당에 가서 드럼을 친다. 자기만을 위한 연주를 하는 롱숏이 미처 말해지지 않은 혜선의 과거를 암시하는 것인가.
그렇다기보다는 누군가의 과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엔터테인먼트처럼 소비되는 현실을 은유하고 싶었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모티브 자체는 실화에서 얻었다. 우리 영화에 큰 영감을 준 친구이자 취재를 하는 동안 만난 사람 중 가장 남달랐던 인물인 효린이 실제로 북한 프로파간다 음악단에서 드럼과 기타를 쳤다. 내가 뮤지션이기도 하다 보니 음악으로 고독과 좌절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다. 음악은 항상 내 영혼, 깊은 감정과 연결된 것이라 혜선에게도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 매 회차 촬영분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 배우들에게 전달했다고도 들었다.
음악은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80년대 가요나 70년대 전자음악 같은 한국 음악을 많이 들었고, 공동 각본가인 최성재 작가와도 서로의 음악 취향을 알아가며 소통했다. 내게 <하나 코리아>는 ‘따뜻한 차가움’의 이야기다. 따뜻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차가운 현실을 다루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는 그 온도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멜랑콜리한 음악을 모아 매 회차 촬영에 앞서 나눈 것이다. 이렇게 플레이리스트를 꾸려 공유하는 일은 내가 동료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곡은 영화가 관객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처럼 들리게 하고 싶어 음악감독과 공동 작곡했다.
- 도시 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혜선은 극 후반부에 보미, 숙희(김주령)와 바닷가, 강가, 산을 구경한다. 학원과 아파트를 오가던 혜선이 자연을 마주하며 정화하길 바랐나.
자연은 북한을, 도시는 남한을 상징하도록 하고 싶었다. 혜선이 자신을 마주해야 할 때, 과거를 그리워할 때, 현실을 잊고 싶을 때 자연으로 향하게 했다. 특히 혜선, 보미, 숙희가 북한산을 오르는 신은 꼭 찍고 싶었다.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품은 양가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를 이끌고 거길 오르니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웃음) 촬영장 밖에서는 가족과 제주도에 다녀온 경험이 특별히 좋았다.
- 전작 다큐멘터리 <고스트 타운>에서도 엿보이듯 공간과 자아 정체성의 관계, 즉 ‘집’(home)의 문제는 당신의 오랜 관심사인 듯하다. <하나 코리아> 개봉을 앞둔 지금, 당신 마음속에 집은 어떤 의미로 맺혀 있나.
내 작업은 자유에 관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질문을 받고 보니 그게 곧 집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개인으로서도 늘 가정 내부의 혼란을 견디면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에 몰두해왔다. 내게도 혜선처럼 가족을 상대하며 느낀 죄책감, 외로움, 상실감이 있다. 그 감정을 소화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긴장을 품고 지내왔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유사한 고통일지 모른다.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면이 있을 테다. 그러므로 나의 영화적 관심사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