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보다가 <스타크래프트> 한판 하고 나온 느낌이네.” 수요일 점심, 방금 아내와 <호프>를 보고 나오는 길이라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반적으로는 아쉬웠다는 말과 함께 보내온 저 직관적인 한줄 평을 들으니 흐릿해지려던 인상이 선명해졌다.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은데, 뭔가 말을 더 보태고 싶어지는 기분. 마침 <호프>에 대한 비평을 쓰던 중이었는데, 따끈따끈한 일반 관객의 반응을 들으니 온갖 생각이 솟구친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너무 몸을 사렸나. 괜히 입장과 상황에 눈치를 보고 있는 건가. 좀더 과감하게 써야 하나. <곡성> 때 썼던 지난 글을 뒤적여보니 그건 또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이땐 왜 이렇게 화가 나서 쓴 거야? 설명하기 힘든 자기검열이 이어진다.
개봉 첫날 35만 관객 동원이란 스코어보다 훨씬 와닿는 반응을 접하며 새삼 <호프>를 향한 기대를 실감한다. 1년에 영화 한두편 보기 힘든 친구가 개봉하자마자 부부 동반으로 첫 상영을 관람할 정도면 이 영화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긴 하는구나 싶다. <호프>의 열기가 뜨겁다면 그 절반은 이 영화에 응당 쏟아질 호불호의 반응 덕분일 것이다. 이 영화는 애초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두루뭉술한 작품이 아니다. 거대한 집념이 빚어낸 경이로운 시청각적 성취, 전에 없던 것을 선보이고자 하는 야심과 재미에 대한 집착으로 갈고닦은 뾰족한 결과물이다.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다 포함하여 관객의 취향과 인내심을 깊숙하게 찔러 자극한다. 이미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허를 찌르는 미확인 물체의 출현이라고 해도 좋겠다. 당부드리건대 반드시 직접 보고 판단하시기 바란다. 쾌감이든 불쾌감이든 이 정도 떠들썩한 에너지가 극장가를 휩쓰는 풍경 자체가 흥겹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안팎으로 시끄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애초에 3주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던 <호프> 특집에도 변수가 생겼다. 이번주 특집으로 예정된 나홍진 감독 인터뷰와 <호프>의 제작기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취소됐다. 기대하셨을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대신 한주 뒤에 예정됐던 <호프>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는 비평 특집을 준비했다. 불가피한 변경이었지만 막상 영화가 공개되고 나니 ‘잘됐다’ 싶다. <호프>는 보자마자 자신이 어떻게 봤는지,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밝히고 싶어지는 종류의 영화다. ‘내가 지금 뭘 본 건가’ 싶은 극상의 극장용 오락은 극장 바깥까지 이어져, 각자 목격한 것을 고백하기에 바쁘다. 5가지 주제를 가이드 삼은 다양한 비평이 보태지면 흐릿하고 헷갈리던 희망의 정체가 한층 선명해지리라 믿는다.
좋지 않은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때가 있다. 그럴 때 해야 할 일은 벌어진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얼룩은 지우려 할수록 더 지저분하게 번질 뿐이다.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무기력이다. 더러워진 물을 길어내는 것보다 깨끗한 물을 들이붓는 편이 더 빠른 것처럼, 불행의 이유를 찾기보다 다음에 닥칠 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편이 이롭다. <호프>가 극장가에 어떤 기록과 의미를 남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희망의 건너편을 바라보며 다음을 준비해나가려 한다. 영화는 계속되고 극장에는 새로운 희망들이 계속 싹틀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