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움짤’을 즐기는 사람이다. ‘움짤’이라는, 한때 신조어였지만 지금은 벌써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단어의 의미가 무언지를 세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그러려면 ‘짤방’이라는 단어부터 이야기해야 하고, 그것이 소위 ‘밈’과도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까지 말해야 한다. 친절할 필요는 있지만 제한된 지면 안에서 그걸 다 해야 할지 말지는 필자의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만 더 말하건대, 나는 동물들의 어떤 행동을 포착한 대체로 10초 이내의 동영상 이미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러 짧은 동영상을 스크롤링하며 소비하는 쇼츠나 릴스 등은 사양한다. 아니 심지어 경계하고 혐오하는 쪽이라 해두자.
내가 즐기는 귀여운 동물 움짤은 괜찮고, 대다수가 몰입해 즐기는 쇼츠와 릴스는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고만 답하겠다. 나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조롱하고 폄훼하고 왜곡하기 위해 자극적인 부분만 잘라서 무한 반복시키는 콘텐츠를 싫어한다. 그리고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중독을 야기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증오한다. 그래서 그런 서비스를 사용하거나 그것에 과몰입하는 건 당신들의 정신 건강에 매우 해로울 뿐만 아니라, 그런 플랫폼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범람하게 만들고, 그로써 우리 사회 전반을 집단적인 사고 마비 상태로 이끄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AI 같은 건 이런 때 쓰면 된다. 찾아보시라. 수백편의 논문이 쏟아질 테다. 숏폼 콘텐츠가 짧아서 문제라면 그런 네 글도 결국 짧아서 문제일 게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짧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짧다’는 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형식적 조건일 뿐 필연적 원인이 아니다. 그 짧은 형식에 무엇을 어떤 의도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담느냐가 핵심이다. 누군가를 해할 목적으로 왜곡을 더해 혐오를 표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짧은’ 콘텐츠는 독약의 독성, 마약의 중독성을 증폭시키는 범죄행위다.
그 어떤 표현보다도 아름답고 진중한 (매우 탁월한 종류의) ‘시’가 있을 수 있는 반면, 사람을 패망으로 이끄는 (매우 나쁜 종류의) ‘훅송’도 있는 법이다. 전자는 때론 천재적인 능력과 훈련 그리고 상당한 노력과 고민이 수반되어야 하나, 후자는 ‘악의’만 있으면 된다. 선의는 짧은 형식 속에서 구현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면, 악의는 오히려 짧아야 만들기도 쉽고 그 효과도 크다. 중독적 숏폼으로 먹고사는 기술 기업들과 그에 기생하는 업자들이 각자의 가슴에 품은 악의를 구현해줄 무척 쉽고 대중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이 ‘짧고 유해한 것들’을 향해 앞다투어 몰려가고 있다. 그걸 즐길 뿐만 아니라 몹시도 필요로 하고, 그런 걸 신이 나서 만들어내는 ‘악의의 순환구조’가 이미 구축돼 있다. 그 안에선, 보통 사람이건, 전문가를 자처하는 자건, 누군가의 길고 어려운 이야기를 욕하기 위해 공들여 살필 인내도, 윤리도, 실은 지적 능력마저도 없다. 그저 누군가 혐오를 담아 짧게 왜곡해놓은 것에 자신들의 혐오를 더해서 그 또한 짧게 만들어 유통시키면 시쳇말로 땡이다.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마지막 행을 변주하며 글을 마친다. “바깥은 전쟁중. 발광인류의 군집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