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이모, 저 덕연이 딸인데요~.” 갑작스러운 입수보다 더 놀라운 건 해안가 치킨집을 찾아가 능청스럽게 김치를 얻어먹던 원이의 모습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정겨운 이웃, 뜬금없는 낚시질과 뜬금없는 파라파라 댄스, 뻔뻔하리만치 귀여운 갸루 페르소나까지. 많은 이들이 철부지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정감 어린 풍경과 그간 아이돌의 공략 포인트가 아니었던 친근함을 콘텐츠 ‘떡상’의 이유로 분석하지만 더 근원적인 단계로 들어가보면 오랫동안 누적돼온 첨예한 시대정신이, 정확히는 시대적 갈망이 이 안에 작용해 있단 걸 알 수 있다.
선망 비즈니스인 아이돌은 또래 세대가 동경할 만한 상류 이미지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 국가 전체가 IMF를 직격탄으로 맞은 아이돌 1세대 때만 해도 얼마나 궁핍하고 엄혹한 보릿고개 시절을 이겨왔는지를 영웅담으로 펼치곤 했지만 시간이 흘러 가수라는 통칭에 뭉뚱그려지기보다 아이돌이라는 세부 카테고리로 장르화되고, 연예인보다는 아티스트로 명명되면서 이전처럼 친근한 이미지만으로 성공을 담보하긴 어려워졌다. 게다가 전 세계적 팬덤 규모를 한눈에 환산할 수 있는 ‘좋아요’ 산업까지 보편화되면서 아이돌이 지닌 모든 요소는 잠재적 전시 대상이 되었다. 무엇을 선망의 매대에서 판매할까. 어떤 것을 두드러지게 보여줄까. 확실한 건 그게 무엇이든 예사로운 것, 가까운 것이어선 안됐다. 그렇게 많은 팬덤은 신화화한 마케팅을 꾸리기 시작했다. 일명 금수저 아이돌. 이따금 자신의 최애를 이렇게 소개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아이돌 안 했어도 원래 부자야.” “해외 명문학교 출신이야.” “어느 지역의 땅 N%가 전부 최애네 집안의 것이래.” 타고나기를 남들보다 우위하다고,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라고 최애를 마케팅한다. 헝그리 정신의 예술가? 이런 건 고리짝 시절의 멋이다.
금수저, 엄친아 선망이 틴에이지 세대를 조우하면서 ‘영 앤드 리치’ 숭배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어린 아티스트들은 프라이스 태그를 안 본다고 노래하고, <포브스>는 ‘30 under 30’(30살 이하의 유망주)을 선정하기 바쁘다. 이 모든 대중문화의 영향권에 있는 일반인은 릴스와 틱톡에서 어린 나이에 거둔 성과를 자랑한다. 작게는 팔로어부터 넓게는 광고 수익까지. 일찍, 빠르게, 어릴 때 성공하는 게 진짜 힙이다. 이 사이에 실패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리처드 다이어의 ‘스타 이론’(Star Theory)에 따르면 대중성을 지닌 아이콘으로 부상하기 위하여 두 가지 모순이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평범하지만 비범해야 한다. 나와 다름없는 소탈한 인간처럼 보여야 하지만(나처럼 빵집에 줄을 서는 장원영), 동시에 내게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반짝이는 왕관과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아이돌 장원영). 두 번째로는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우리 곁에 없어야 한다. SNS를 켜면 차고 넘치게 볼 수 있어야 하고, 주변인과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정보를 얻는 데 원활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만날 수 없어야 한다. 한없이 가깝지만 한없이 먼 존재. 이것이 스타 이론의 필연적인 두 번째 역설이다. 그런 측면에서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이하 <안원잘부>)는 한쪽이 무너진 시소처럼 이론적 요소가 하나씩 빠져 있다. 화려함 섞인 비범함을 내세우지 않고, 만나기 어려운 거리감을 상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상적인 나머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삶으로 자청하여 나아간다. 어린 아이돌 멤버들이 명품 앰배서더로 발탁됐다는 소식이 가벼운 뉴스처럼 소구될 때, 리센느는 서울공화국이 아닌 저 먼 지방의 홍보대사가 되어 정감 어린 사투리로 말한다.
그 하나의 빈자리. 그것을 채우는 것이 무엇인가. 리센느 멤버들이 귀여워서? “거제 야~호” 밈이 알고리즘을 타서? 갸루 설정이 독특해서? (모두 맞지만) 그보다는 이른 성공을 숭배하는 시대에 늦게 도착한 이들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돌아간다는 거시적 메시지가 대중들 사이에 환영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구나 아이돌 산업상 중소기획사가 지닌 물리적 한계를 생각하면 이들이 손에 쥐고 있던 기회의 수는 다른 이들과 동일하지 않았다. 왁자지껄 천진난만한 거제 여행기가 조회수 1천만건을 넘는 동안, 한 무대 행사에서 1분만 더 달라고 호소하던 무명 시절 영상이 동시에 조명받은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장난스러운 바다 수영에 수익 창출을 포기하면서까지 삽입한 히사이시 조의 가 낭만적인 연출로 콘텐츠의 초기 흥행 이유를 설명한다면, 조금씩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눈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멤버들의 감격스러운 표정은 (그리고 그것을 일부러 강조한 <안원잘부>콘텐츠들은) 유튜브 채널의 지속적 흥행을 납득시키는 이유이자,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진짜 ‘성공’의 모습에 가깝다. 숨가쁘게 이른 성공을 증명하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사람들은 남몰래 기다려왔는지 모른다. 사실은 성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늦게 골인 지점에 들어온 이들에게도 여전히 ‘다음 기회에!’가 존재한다는 것을.
거제 여행기 이후 <안원잘부>의 평균 조회수는 846만1천건. 유튜브 채널로서 최상위권이다. 여기서 리센느는 갸루, 거제 소녀, 신라 공주 등 아티스트보다 예능 캐릭터로 존재할 위험성을 동시에 떠안는다. 게다가 세 캐릭터가 멤버들의 삶에서 착안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캐릭터를 쉽게 분리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첫 예능 캐릭터가 뭉근하게 오래 지속되는, 그래서 한번 정착하면 그것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은 한국 예능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중성은 진중하게 돌아봐야 할 참이었다. 그때 <안원잘부>는 갸루를 묘사해온 미나미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진짜 미나미의 삶을 구성해온 것들을 좇는다. 정갈한 서예, 오랜 선생님과의 포옹, 엄격한 식사예절, 단편영화 같은 등굣길까지. 거제와 갸루가 완전한 보증수표가 될 때, 채널은 과감히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바깥의 다른 모습을 채택한다. 우리를 흥행하게 한 것이 도리어 우리를 옭아맬 수 없도록. ‘무엇을 보여줄까’가 출연자의 역량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담아낼까’는 연출자의 역량이다. 씨줄과 날줄이 팽팽히 접선한 직물처럼 <안원잘부>는 두 요소가 조화롭게 맞물렸다. 이 느리지만 뭉클한 박수갈채는 우연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들만이 끝까지 외칠 수 있을 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