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와 롯데월드타워를 한 공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사무실. 서울의 두 랜드마크를 정면과 후면으로 품은 이 공간은 어쩌면 KHS에이전시가 지향하는 좌표를 시각적으로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비상을 꿈꾸며, 업계의 마중물이 되고자 ‘토털 탤런트 에이전시’ KHS에이전시를 차린 게 지난해 7월7일. “한국에도 전문적인 에이전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회사 이름이 너무 정직한 것 아니냐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에이전시가 무엇인지 우리가 제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이 컸다.” 전직 CJ ENM 대표이사 및 CJ주식회사 경영지원 대표였고, 한때는 법조인이기도 했던 강호성 KHS에이전시 대표는 최근 회사 설립 1주년을 맞아 이곳에서 클라이언트들과 소박하지만 뜻깊은 파티를 열었다. ‘에이전시’라는 정직하고도 무거운 이름을 내걸고 첫 업무를 개시한 지 1년. 그의 얼굴에는 확신에 찬 여유가 묻어났다.
2023년 말 그가 사표를 던지고 에이전시를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내로라하는 대형 로펌의 영입 제안과 대기업들의 달콤한 오퍼를 뒤로하고 왜 하필 리스크가 큰 새로운 영역에 뛰어드느냐며 만류했다. 그러나 훗날 누군가 이 길을 먼저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 어떨까를 떠올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 시작하지 못한 후회가 더 클 것 같았다. 그런 후회를 하게 된다면 너무나 괴로울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그였고, 경험과 경력 또한 충분했다. “내가 오솔길이라도 내면 후배들이 그걸 보고 더 큰 길을 닦아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제로에서 시작한 KHS에이전시는 불과 1년 만에 개인 클라이언트 80여명, 회사 클라이언트 20여곳을 확보하는 성장을 이루어냈다. 배우 이영애, 가수 바다와 옥주현, 영화감독 이병헌과 임순례 등의 아티스트 및 크리에이터들이 합류했다.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시니어들과 전문 변호사들도 그의 비전에 동참했다. 그의 비전은 미국 할리우드의 ‘토털 탤런트 에이전시’처럼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의 커리어를 관리하고, 폭넓게 갖춰진 아티스트 풀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에이전시인가. 그 둘의 차이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매니지먼트의 주요 역할은 신인을 발굴·육성·케어하는 것이다. 반면 에이전시는 섭외·협상·계약 등 대리 및 중개 업무를 맡아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고 커리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은 그동안 매니지먼트사가 에이전시의 역할까지 겸해왔다. 강호성 대표는 이러한 한국식 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가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고 말한다. “에이전트법이 존재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기획사가 아티스트와 전속계약을 맺고, 그들에게 투자하고, 투자에 대한 수익을 회수하는 구조다. 중요한 건 기획사가 계약의 직접 당사자라는 사실이다. 순수하게 아티스트의 편에서 아티스트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수익 정산 과정에서도 정보 비대칭으로 불신이 생겨 분쟁이 발생하기 일쑤다. 산업이 제대로 세팅되려면 엄격한 미들맨(Middleman)의 존재가 필요하다.”
에이전시는 아티스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강력한 IP와 세계관을 가진 음악 매니지먼트사와 달리 배우 중심의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경우 수익 구조에 대한 고충이 존재한다. “스타가 될수록 아티스트의 협상력은 극대화돼서 기획사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계약 기간이 끝난 아티스트가 높은 사이닝보너스를 좇아 떠나버리는 경우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수익을 늘리기 위해 제작을 시도하지만 거기에도 리스크는 따른다.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기가 어렵다.” 매니지먼트사와 에이전시 사이 적절한 분업과 협업이 이루어지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게 강호성 대표의 생각이다. 실제로 KHS에이전시는 중소 매니지먼트사들과 상생의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인적 자원과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족한 중소 기획사를 대신해 에이전시가 조타수이자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아티스트의 리스크를 매니지먼트하는 방식으로 협업한다. 또한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 감독과 작가 등 폭넓은 풀을 바탕으로 투자가 용이하도록 캐스팅 패키지를 기획·제안한다.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과 해외 협업의 경로를 모색해 더 큰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면, 그 위상의 상승으로 인한 본질적인 이득은 매니지먼트사와 아티스트 모두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서로가 잘하는 영역에 집중할 때 비로소 선순환이 일어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산업이 합리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혜안은 강호성 대표가 걸어온 이력과도 관련이 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의 검사 생활 이후 2000년대 초반 한국 최초의 엔터테인먼트 부티크 로펌을 설립했던 그는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던 대형 연예계 사건들을 전담하며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1세대로 활약했다. 검사로서 굵직한 사건을 맡던 때에도 영화와 음악 등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놓은 적은 없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갔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시절, 주말이면 영화제에 놀러가 영화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나도 그들이 신기했고 그들도 나를 신기해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6년간 스쿨밴드를 하며 해적판 레코드를 2천장 넘게 수집했고, 빌보드 차트 복사지를 보며 밤새 라디오를 들었다. 모든 콘텐츠를 닥치는 대로 섭렵하던 시절이었다. “미성년자 ‘절대’ 관람불가 영화가 개봉을 하면, 까까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뒤집어쓰고 아버지 코트를 빌려 입고 극장 입구에서 모르는 아저씨 옆에 붙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미성년자 절대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영화를 섭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콘텐츠 키드’로 살았던 시간이 강호성 대표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변으로 이끌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은 뒤엔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으로 진입한다. 2013년 CJ ENM 전략추진실 부사장 자리를 시작으로 그룹의 법무실장, 리스크 관리를 총괄하는 경영지원 대표, 그리고 CJ ENM 대표이사와 지주사 공동대표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최전선에서 업계의 명암과 과제를 캐치했다. 음악부터 영화, 방송, 공연 등을 아우르는 토털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영역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글로벌이라는 화두를 일찍이 고민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배움이었다. “CJ ENM 대표이사로 있던 2020년은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성과가 가시적으로 폭발한 때였다. 그해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고, 넷플릭스의 아시아 콘텐츠 톱10을 한국 콘텐츠가 섭렵했다. 한국 시장만 보는 건 근시안적이다. 해외시장을 개척해야만 지속 가능한 콘텐츠 제작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글로벌은 그때도 지금도 늘 중요한 화두다.”
미디어 환경, 미디어 패러다임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시대. 강호성 대표는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를 독립된 IP로 접근해야 한다고도 했다. “과거 ‘유명세’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렀던 아티스트의 가치는 이제 디지털플랫폼을 통해 명확한 데이터로 계량화되고 수량화되었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정교하게 파악 가능한 시대에, 권력은 미디어나 구단주 같은 비즈니스 유닛에서 팬덤을 보유한 IP의 주체로 이동했다.” 할리우드의 에이전시들이 전직 대통령부터 스포츠 스타까지 모든 영역의 셀럽들을 관리하는 ‘토털 탤런트 에이전시’를 지향하는 것도 디지털플랫폼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디지털플랫폼의 등장으로 아티스트의 위상은 커졌고 그만큼 리스크도 커졌다. 전방위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해진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 하는 셀럽들. 더불어 그들의 IP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된 에이전시. 서로의 니즈가 충족되는 구조다. “이제는 이 거대한 휴먼 IP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다양한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글로벌 에이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크로스 보더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우리가 그 허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은 팬덤이다.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팬덤 산업, 그게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산업의 종사자들 역시 행복해야 한다.” CJ ENM 대표이사 시절 그는 스스로를 “행복 공장장”이라 칭했다. 한국에 없던 에이전시 시스템을 고민하는 그는 지금도 행복하게 오솔길을 닦아나가는 중이다. 남산타워와 롯데월드타워, 거대한 두 타워 사이에서 그는 시작하는 자의 설레는 눈빛으로 새로운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ITEM
지구본
“지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인데, 책상 한켠에 이 지구본을 두고 늘 글로벌이라는 화두를 생각한다. 에이전시 일을 시작하고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들이 더 많이 해외에 소개되고 더 많이 해외에서 협업할 수 있도록, 우리가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해외의 콘텐츠 제작자들은 한국의 아티스트는 물론이고 한국적인 요소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그 기회를 잘 살릴 필요가 있다.”
CAREER
2025.07.~ KHS에이전시 대표이사
2022.10.~2023.12. CJ주식회사 경영지원 대표
2020.12.~2023.03. CJ ENM 대표이사
2018.10. CJ그룹 법무실장, 총괄부사장
2013.06. CJ그룹 법무실장, 부사장
2013.05. CJ E&M 전략추진실 부사장
2012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2000 법무법인 두우
1997~98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검사
1995~97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검사
1993~95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