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포커스] 한국영화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하여 - 정부-제작사-매니지먼트사,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상생협약 체결

사진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 7월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국내 주요 매니지먼트사 및 영화제작 단체들과 함께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정부-제작사-매니지먼트사간 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최휘영 문체부 장관, 한상준 영진위 위원장을 비롯해 손석우 BH엔터테인먼트 대표, 최원영 매니지먼트숲 팀장, 김경진 제이와이드컴퍼니 본부장,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이하영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전문위원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영진위가 실시하는 ‘중예산 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지원작은 주조연급 배우의 출연료를 순제작비의 10% 미만으로 책정되도록 협조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번 협약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도덕적 합의 성격을 가진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쉽게 회복하지 못한 극장가와 영화산업계를 위해 체결된 일종의 민관 MOU이고, 문체부가 직접 규제를 두거나 제지하는 부분은 없다. 허리급의 중예산 규모 영화제작이 이전처럼 활발하지 않은 만큼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는 자발적인 연대와 참여로 적극적으로 나섰다.

영진위의 입장, 느슨한 제도로 시작되는 인식의 변화

순제작비 10% 미만 책정의 기준은 문체부와 영진위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수치가 아니라 제작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매니지먼트사와 협의하여 마련한 기준이다. 중예산 규모 영화에서 주연배우 1인의 출연료가 총제작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큼인지, 조연·단역 배우들까지 종합할 때 출연료 비중은 얼마큼 올라가는지 등 다양한 사안을 고려해 설정한 것이다. 물론 영화마다 규모와 장르, 제작 방식이 다르고 배우의 경력과 시장가치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 기준을 모든 작품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예산 영화 제작지원 사업에 신청하는 작품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는 “배우 출연료가 순제작비의 10% 이내라면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제작 전반에 필요한 재원을 보다 균형 있게 배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견을 다수 제안했다. 해당 협약은 배우들의 출연료를 획일적으로 제한하려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성격과 흥행 가능성, 배우의 인지도와 역할 비중에 따라 출연료는 충분히 다르게 책정될 수 있다. 이로써 한정된 제작비가 특정 항목에 집중되기보다 시나리오 개발, 촬영, 미술, 후반작업 등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다양한 분야에 적절히 활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럼에도 해당 협약이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것은 시장 논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지속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진다. 이에 대해 영진위는 <씨네21>에 “상생협약은 한정된 제작비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균형 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의식을 공유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답변을 주었다. “이번 협약 하나만으로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곧바로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한국영화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서 누군가는 먼저 문제를 꺼내야만 하고 그 뒤에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생협약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수많은 창작자와 산업 주체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이자 산업인 만큼, 중요한 변화는 강제나 규제보다 공감과 합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영진위 또한 제도적 취지와 필요성이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경청해야 한다.”(영진위 공정성장센터)

제작자의 입장, 제작 부담을 낮추는 것부터 산업 활성화는 시작된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이 상생협약은 무척 중요하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형 상업영화와 제작비 10억원 안팎의 독립·예술영화. 최근 양극화가 심해진 한국영화계에서 30억~80억원 규모의 중예산 영화는 투자받기 가장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크라우드펀딩 같은 제작사의 독립적인 시도가 많아졌지만 잠재적 관객층에만 의지하기에 목표 금액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흥행 문제를 논하기 전, 제작 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작품 자체가 많지 않고 위축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논제 중 배우 출연료 부분을 검토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영진위는 매니지먼트사와 제작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등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렸고, 영화시장의 침체를 경험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손을 잡았다. 이은 회장은 “대체로 신인을 기용하는 독립영화나 대형 투자가 붙는 블록버스터와 달리 10억원에서 80억원 규모의 중예산 상업영화는 상대적으로 배우 출연료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을 상호적으로 조율하면 부담이 줄어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결과적으로 영화제작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실현돼야 제작사와 영화 스태프, 배우 모두가 일할 수 있고, 중견 규모 영화의 다양성이 뒷받침돼야 극장가도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이번 협약은 무너진 한국영화의 허리를 다시 세우기 위한 첫 번째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낮춰진 배우 출연료는 러닝개런티(고정 출연료 외에 작품의 흥행 성과에 따라 추가로 지급하는 성과보수)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 분위기가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작품 흥행의 몫을 배우가 함께 나누는 형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러닝개런티로의 전환은 초기 제작 비용을 낮춰 부담을 줄이고 제작사가 전적으로 안고 있던 투자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실효성 측면에서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지만 이런 이야기가 산업 내에 오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된다. 한국영화에서 지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보고, 영화제작 활성화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제고할 수 있다. 어떤 제재를 가하는 일은 없지만 상호 성장의 중요성을 느슨한 제도로서 돌아볼 수 있다.”(이하영)

매니지먼트사의 입장, 결국 더 좋은 이야기를 기다린다

상생협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연 배우들과 매니지먼트사의 의지다. 협약이 강제성 없는 도덕적 합의를 지니는 만큼 매니지먼트사의 이해와 동의가 필수적이다. 손석우 대표는 오래전부터 배우들의 출연료 조율이 암묵적으로 진행돼온 만큼 무리 없이 동참할 것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작품 계약 내용을 일일이 말할 수 없어 대대적으로 기사화되지 않았을 뿐 배우들이 작품 규모에 맞춰 출연료를 조정하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 BH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제작비 50억원 규모의 <미씽: 사라진 여자>에 출연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했고, 45억원 규모의 <싱글라이더>를 공동제작할 때에도 그랬다. 제작사와 배우의 현실적 상황과 예산 규모에 맞춰 협의해왔다. 이런 협약에 뜻을 함께하는 이유는 매니지먼트사도 배우들도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은 규모의 작품을 배우들이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드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산 문제로 작품이 이행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더욱 다양한 작품이 배우들에게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이것은 우리 회사의 몫일 뿐 우리의 선택이 모든 매니지먼트사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대변하진 않는다. 매니지먼트사들도 각기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손석우)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탄탄한 스토리 투자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출연료 조정에 이어 러닝개런티가 보편화되면 관객들에게 선택받을 만한 양질의 이야기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상생협약은 단순히 제작비 항목 하나를 조정하는 데 있지 않고, 한국영화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산업 구성원이 함께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특히 중예산 영화는 신인 창작자를 발굴하고 새로운 소재,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는 중요한 토대로서 한국영화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이를 발판 삼아 선순환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