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들이 죽어나간다. 궁에서 그보다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그 재앙이 아들 영안군(조단)에게까지 미치려 하자 왕(조승우)은 방도를 찾아 나선다. 그 해답이 바로 구천(남주혁)이다. 비록 지금은 은둔자로 살고 있으나 귀신을 보고 없앨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구천은 조력자인 궁녀 생강(노윤서)과 함께 궁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저주를 하나씩 풀어간다. 배우 남주혁이 제대 후 복귀작으로 <동궁>을 택했다. 입대 전 마지막 작품 <비질란테>에서 낮에는 경찰대 학생, 밤에는 다크 히어로를 오가며 상반된 모습을 보여줬던 그가 <동궁>에서도 극과 극의 면모를 드러낸다. 구천은 현실에선 잠잘 궁리만 하며 뺀질대다가도 귀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검술에 능한 해결사가 된다. 남주혁은 무심함과 대범함, 기저의 슬픔을 아우르며 인물의 결을 살려냈다. 7월17일 작품 공개 이후 현실과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구천의 활약에 호기심이 모이는 지금, 남주혁에게 그 세계에서 머문 시간에 대해 들었다.
- 대본을 읽는 동안 귀의 세계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다. 초현실적인 존재와 공간을 처음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가 그려졌나.
당시 즐겨 하던 게임에 빗대보기도 했으나 우선은 내 상상력만으로 귀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 이후 촬영장에서 직접 귀의 세계를 마주했을 때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싱크로율이 맞아떨어져 놀라웠다.
- 작품과 무관한 일상에서도 상상하는 걸 즐기나. 예를 들어 길을 걷다가도 ‘저 사람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같은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그런 편이다. 산책하다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보면서도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을지 상상해본다. 이런 습관이 배우로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보통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에서부터 캐릭터를 만들어나간다.
- 귀의 세계 세트에 처음 들어갔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다 타버린 듯 어둡고 폐허 같은 분위기가 압도적인데, 특히 신기하거나 인상 깊었던 요소가 있었나.
첫 세트 촬영하는 날, 완벽하게 구현된 하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정말 놀랐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했다. 미술적 요소는 물론 소품 하나하나와 조명까지 디테일이 살아 있었고, 세트만으로도 귀의 세계가 80% 정도 완성된 느낌이었다. 덕분에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다. 나중에 완성된 작품을 보는데 스태프의 노고와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감탄스러웠다.
- 구천은 스스로 고립을 택한 인물처럼 보인다.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그가 마음의 문을 닫게 된 요인 같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인물에 살을 붙여나갔나.
나 역시 비슷하다. 살기 위해 발버둥친 끝에 세상과 멀어지기로 결심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타의로 궁에 들어갔을 때는 궁궐 안의 모든 것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엄격한 규율 속에서 자유로움을 표출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구천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행동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처한 고립을 조금씩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발성과 발음을 중요시해 꾸준히 연습하는 걸로 알고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방송국 기자 역할을 맡으며 집중적으로 훈련했다. 그만큼 구천의 말투와 목소리 톤을 잡는 데도 신경을 썼을 것 같다. 어떻게 만들어갔나.
초반에 캐릭터를 잡으면서 생각했던 ‘궁과 구천의 불협화음’을 여기서도 기본값으로 삼았다. 어딘가 자유롭고, 궁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신경 썼다. 구천이 점점 피폐해가는 상황에 맞춰 목소리에도 조금씩 힘을 빼려고 했다.
- 전작 <비질란테>에서 고도의 액션신을 소화하기 위해 복싱과 유도 등을 배웠다. 평소에도 탁구,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걸로 안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을 위해 새롭게 익힌 운동이 있었나.
특별히 없었다. 구천이 검을 능숙하게 다루는 인물인 만큼 검술에만 집중했다. <동궁>을 준비할 때부터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꾸준히 액션스쿨에 다녔다. 현장에서도 틈틈이, 집에서는 찍어둔 영상을 보며 동작을 반복 또 반복했다. 돌이켜보니 정말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액션에 매달렸던 것 같다. 완벽한 합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안전한 촬영은 중요하니까.
- 2화 소금 광 귀신과의 대결이 초반 액션 시퀀스의 하이라이트다. 귀의 세계에 들어간 구천은 생강(노윤서)과 힘을 합쳐 소금 광에 갇혀 죽은 궁녀들과 맞선다. 일대다 액션을 소화하는 과정은 어땠나.
워낙 액션이 많은 작품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 시퀀스를 찍을 때는 에너지가 두배 정도 빨리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웃음) 액션신은 배우뿐 아니라 현장의 모든 스태프에게 힘들다. 그만큼 모두가 최대한 집중해 효율적으로 촬영하려고 노력한다.
- 중요한 일대일 액션 시퀀스를 꼽자면 좁은 골목에서 별감 귀신(최재림)과 벌이는 맞대결이다. 현장에서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대본과 달라진 점이 있었나.
‘트리니티’ 로봇암 같은 특수촬영 장비와 다양한 기법이 활용되다 보니 변수가 생기면 안되는 현장이었다. 한 장면을 완성하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정교하게 짜인 카메라 동선에 맞춰 움직였다. 합을 맞추는 게 워낙 중요했던 작품이라 <동궁>을 떠올리면 모두의 수고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 왕자들을 죽인 원귀로 알려진 연못 귀신(홍수주)과는 수중 대결을 벌인다. VFX와 수중촬영이 어우러진 장대한 시퀀스인데, 배우로서 어떤 부분에 가장 집중했나.
VFX의 비중이 높을수록 현장에서는 상대 배우를 믿고 서로의 호흡에 의지한다. 이 장면 역시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다. ‘내 체력이 무너지기 전에 어서 저 연못 귀신을 없애야 한다!’는 일념으로 촬영에 임했다.
- 실제로 물에 들어가는 수중촬영이 상당했을 것 같다. 원래 물과 친한 편이고, <역도요정 김복주>에서는 수영선수 역할도 맡아 비교적 익숙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떘나.
이렇게까지 수중촬영이 많은 작품은 처음이었다. 물에 오래 들어가 있다 보니 물과 한몸이 된 것 이상이었다. 물속에서 땀이 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웃음) 구천처럼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감각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나마 경험했다.
- 왕의 어린 아들인 영안군(조단)을 살리지 못하면 죽을 수 있고, 양기마저 빠져 쇠해져가는 상황이라 구천의 웃는 얼굴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를 웃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대본을 다시 떠올려보고 촬영 당시를 돌이켜봐도 온전히 행복한 구천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외롭고, 외부와의 단절을 자처한 인물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구천은 내게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 인물로 남을 듯하다.
- 고된 촬영이 이어졌던 만큼 현장의 남주혁도 구천처럼 좀처럼 웃지 못했을까.
다행히 나는 웃을 일이 많았다. 워낙 도전적인 장면이 많아 사전에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준비한 것들을 현장에서 하나씩 시도하고 모두가 합심해 최선의 결과물이 나올 때마다 쾌감을 느꼈다. 몸이 힘든 날이 많았지만 오늘은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재미가 있을지 기대하며 촬영장으로 향하곤 했다.
- 남은 하반기 계획은.
현재 디즈니+ 시리즈 <코드>를 촬영하고 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하반기에는 이 작품을 무사히 마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다가올 새해도 준비하고…. (웃음) 너무 이른 인사일 수도 있지만 <씨네21> 독자들도 다가올 겨울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