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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35일 비가 내리는 섬

아주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7천년을 살았다는 삼나무. 사람의 셈으로는 가늠도 안되는 시간이다. 그런 나무가 야쿠시마에 있다고 했다. 일본 규슈 남쪽, 한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는 섬. 달력에도 없는 그 닷새치의 비를 뚫고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나무였다. 가고시마에서 고속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배가 파도를 가른 지 두어 시간 지났을까, 멀리서 섬의 윤곽이 드러났다. 섬은 온통 초록이었다. 멀리서도 물을 잔뜩 머금은 짙은 빛이 보였다. 섬에 내리자 비 냄새와 풀 냄새와 바다 냄새가 한꺼번에 끼쳐왔다. 한 모금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폐가 씻기는 것 같았다. 함께 간 여자 친구와 나는 부두에 선 채 한참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서두를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섬은 도착하자마자 일러주었다. 한국에서 일에 치여 지내는 동안 얼마나 자주 이 시간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야쿠시마에서는 늑장을 부리면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조금만 때가 지나도 식당이 죄다 문을 닫았다. 문 연 곳을 찾아 헤매다 결국 카페에서 케이크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저녁 먹기도 만만치 않았다. 동네 식당이라 예약할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는데, 대부분의 식당이 예약 손님만 받았다. 그렇다고 자리가 꽉 차는 것도 아니고 재료가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섬에 머무는 동안 단골 빵집이 하나 있었는데, 오후에 가면 남은 빵이 하나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리 늦은 오후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잘 팔리는데 왜 넉넉하게 굽지 않는 걸까. 혼자 짐작하기를, 야쿠시마는 여유롭게 살려는 사람들만 남았거나 흘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치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도쿄나 오사카로 가는 것이고. 빌린 차도 무언가 엉성했다. 연식이 너무 오래된 것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첫날부터 타이어가 펑크 났다. 주인 아저씨한테 전화하니 자꾸만 친근하게 굴어서 따지기도 힘들었다. 야쿠시마에서는 다들 그렇게 사는 모양이었다. 느슨하게, 느긋하게.

하이킹 첫날엔 ‘시라타니운스이쿄’를 다녀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모노노케 히메>를 만들 때 영감을 주었다는 이끼의 숲. 바위도 나무도 쓰러진 등걸도, 두꺼운 이끼가 빈틈없이 덮고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누르자 젖은 스펀지처럼 폭신하게 들어갔다. 괜히 기분 좋은 촉감.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게 일이자 취미인 나로서도, 이 초록의 향연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길게 고민할 것 없이 카메라를 내리고 걷는 데에 마음을 모았다. 빗소리, 물소리, 잎이 서걱대는 소리. 숲의 소리가 온몸으로 들어왔다. 도시에서 굳을 대로 굳어 있던 마음 어딘가가 천천히 풀렸다. 정서적 스트레칭. 살아 있는 것들 한가운데 있다는 감각이 오랜만이었다.

섬에는 원숭이와 사슴이 길에 지천이었다. 이 섬에만 사는 고유종이라는데, 본토의 것들보다 몸집이 작다고 한다. 좁고 험한 섬에 맞춰 그렇게 진화한 것이라고. 신기한 건 녀석들이 사람을 별로 경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원숭이 몇 마리가 길 한복판에 앉아 느긋하게 서로의 털을 고르고 있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흘끗 한번 경계하는가 싶다가도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정말로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 짐승마저 섬을 닮아 있었다. 쫓기지 않는 녀석들의 얼굴이 보기 좋아서 한참을 구경했다.

다음날엔 ‘조몬스기’를 보러 나섰다. 7천년 된 삼나무의 이름이다. 왕복 22km, 부지런히 걸어도 10시간 남짓 걸린다고 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부터 산에 들었다. 옛날 목재를 실어 나르던 산림 철도의 침목을 밟으며 한참을 걸었다. 배낭에는 휴대용 화장실 키트가 들어 있었다. 의무는 아니지만, 트레일에 화장실이 제한적이라 모든 하이커가 상식처럼 챙겼다. 처음엔 거부감도 있었다만, 숲에 함부로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데에 동참했다. 제 몸이 만들어낸 것조차 도로 짊어지고 내려와야 하는 숲. 7천년을 버틴 나무 앞에서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염치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한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더니, 과연 걷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를 맞으며 걷는 일이 개운했다. 길에는 빗물이 고이지 않았다. 섬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여서 비가 금세 땅으로 스미고 아래 계곡으로 힘차게 흘러내렸다.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길은 질척이지 않고 발밑이 단단했다. 섬은 너무 자주 내리는 비를 제 힘으로 다 감당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거대한 그루터기 하나를 만났다. 윌슨 그루터기라 불리는, 오래전 베인 삼나무의 밑동이었다. 속이 텅 비어 사람이 여럿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안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뚫린 입구가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여자 친구와 나란히 그 안에 들어가 고개를 젖혔다. 과연 하트였다. 수천년을 산 나무가 베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기어이 사랑의 모양을 찾아냈다. 좀 이상하고, 좀 우습고, 또 기가 막히게 로맨틱한 일이었다.

마침내 조몬스기 앞에 섰을 때, 그 위용이란 말로 옮겨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사진을 찍어도 담기지 않을 실물의 아우라. 7천년 시간의 결을 고스란히 담은 거대한 몸통은 나무라기보다 지형 같았다. 척박한 화강암 땅에서 영양분을 거의 못 얻어 아주 천천히 자란 탓에, 나무의 조직이 빽빽하게 들어차 수천년을 살아온 나무. 빨리 자란 나무는 일찍 스러지고, 더디 자란 나무가 7천년을 산다. 속도의 얄궂은 이치. 나는 부르튼 발로 그 앞을 한참 서성였다.

내려오는 길에도 비가 오락가락했다. 올라갈 때 짊어진 화장실 키트는 다행히 쓸 일이 없어, 그대로 다시 짊어지고 내려왔다. 물론 점심 도시락의 빈 껍데기도 잘 챙겼다. 들어간 자국을 남기지 않고 무사히 숲을 나섰다. 비에 젖은 몸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외려 가벼웠다. 7천년을 산 나무는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오든 오지 않든, 비가 35일을 내리든 말든. 그 무심함이 내게 큰 위로를 주었다. 7천년 앞에서는 조급함도, 삶의 더딘 성취도, 다 잠시 스치는 비 같은 것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