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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인물의 내면까지 드러나는 미술의 리얼리티, <산양들> 김영탁 미술감독

성적 우수자도, 특기생도 아닌 인혜(박혜진), 서희(이승연), 정애(박효은), 수민(최수인)은 면접반의 특별 관리 대상이다. 수능을 200여일 앞둔 시점에서 이들은 학교가 사육장의 동물들을 처분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애정을 갖고 돌봐오던 오리 ‘희선’과 다른 동물들을 구출하기 위해 네 아이는 머리를 맞댄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작전은 비밀리에 ‘쉘터’를 구성하는 것. 그렇게 4인방과 동물들이 함께하는 아지트가 산자락에 마련된다. 학교부터 숲속에 조성된 쉘터까지, 인혜와 서희, 정애, 수민이 발을 들이는 <산양들>의 모든 주요 공간들이 김영탁 미술감독의 손에서 탄생했다.

<산양들>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김영탁 미술감독은 자연스레 동물과 10대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영화의 분위기를 상상했다. “동물이 있는 현장을 관리하기 쉽지 않겠다는 걱정이 앞섰지만 시나리오가 워낙 귀여웠다. 이미지적으로도 재미있게 표현할 여지가 많아 보였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학교의 사육장, 4인방의 쉘터였지만 그에 앞서 찬영(이효제)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학교 전교회장 선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주력했다. “요즘 학교에서 어떻게 선거를 치르는지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기표대 등도 실제 전교회장 선거 때 사용하는 걸 그대로 영화에 적용한 것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 기타 요소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야 이후 등장하는 쉘터의 판타지적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쉘터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가능한 한 현실성 있게 제작하려고 노력했다.”

<산양들>의 유재욱 감독과 금효제 작가는 사전에 그려둔 사육장과 쉘터 그림을 김영탁 미술감독에게 건넸다. “동화 삽화처럼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니 감독님, 작가님이 어떤 톤 앤드 매너의 공간을 원하는지 바로 알겠더라.” 해당 그림을 가이드 삼아 김영탁 미술감독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사육장과 쉘터를 구상했다. “가만히 앉아 자료 조사만 하기보다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얻는 걸 선호한다. 캠핑도 자주 하는 편이라 내 경험을 살려 쉘터에 관한 구상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제작팀 팀원들과 회의할 때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처음엔 학교에 설치된 실제 사육장을 섭외하려 했으나 영화에 어울릴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한 사육장은 결국 김영탁 미술감독과 제작팀이 새로 제작해야 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디자인이 투박하더라도 우리가 어릴 때부터 흔히 봐온 형태의 사육장을 만들기로 했다. 대신 나중에 아지트를 완성했을 때, 두 공간을 오가며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영화의 중후반부, 아이들이 쉘터를 만든 이후 평범한 사육장에 색감이 더해지고 내부에 그림도 추가된다. “학생들의 내면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걸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사육장을 꾸미는 데엔 주연배우들의 손길이 더해졌다. “배우가 참여할 여지가 있는 경우, 가령 인물이 노트에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장면이 있을 때 배우들에게 해보겠냐고 권하는 편이다. 제작팀의 필체보단 실제 배우의 필체가 반영됐을 때 더 자연스럽고, 그 과정에서 내가 떠올리지 못한 발상을 배우에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되긴 했으나 배우들이 사육장에 페인트칠하는 장면도 실제로 촬영했다.”

쉘터 역시 로케이션을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여러 의견이 오갔다. “두개의 후보가 있었다. 하나는 넓은 평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아담하고 경사가 있는 구역이었다. 쉘터는 비닐하우스를 뼈대로 다른 재료가 추가된 형태인데, 경사진 면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어딘가 기운 채 엉성하게 완성된 비닐하우스가 오히려 고정관념을 벗어난 재밌는 결과물이 될 것 같아 결국 후자의 로케이션을 택했다.” 쉘터를 꾸밀 때 김영탁 미술감독은 인혜를 비롯한 4인방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 “대장이 되길 원하는 친구, 생존력이 강한 친구, 부모님이 농사를 짓거나 낚시 가게를 하는 친구 등 각자 살아온 배경과 성격이 전부 다르다. 그래서 쉘터의 디자인을 정해두는 대신 아이들의 특징을 반영하기로 했다. 각자 집에서 어떤 소품들을 가져올지 고려해 아웃도어용품, 캠핑용품 등을 준비하고 쉘터를 꾸민 천도 질감과 크기가 제각기 다른 것들을 활용했다.” 허수아비 또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아이들이 만든 허수아비는 어떤 느낌일지 계속 생각했다. 인형을 기본 뼈대로 삼고 학생들의 옷 중 하나를 입혔다. 아마도 그들의 아버지가 쓰셨을 법한 밀짚모자를 씌우고 ,시나리오에도 명시되어 있던 랜턴을 활용했다. 과감하게 허수아비의 눈에 배치해봤는데 다행히 너무 무섭지 않게 극에 잘 녹아들었다.”

쉘터 주변에는 사육장에서 데려온 동물들의 공간도 마련했다. “울타리는 동물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막는 존재지만 나중에 이들이 탈출한다는 설정에 맞게 제작해야 했다. 그래서 울타리를 세울 때 높이를 균일하게 정하지 않고 한쪽에 구멍이 생기도록 계산했다. 정형화된 스타일로 울타리를 두르면 쉽게 완성했겠지만 일부러 여러 소품을 섞었다, 시간은 배로 걸렸지만 그만큼 제작과정이 재밌었다.” 김영탁 미술감독이 사전에 우려했던 바와 같이 동물들이 제일 큰 변수였다. “닭 같은 조류들은 어느 순간 훅 날아 담을 넘어버린다. 동물 관리업체의 전문가가 촬영 현장에 함께했지만 동물이 탈출한 상황에선 제작팀까지 전부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긴장한 채 팀원들이 동물들의 탈출을 막을 망 같은 걸 들고 서 있어야 했다.” 그밖에 폭풍으로 쉘터가 무너지고 재건하는 신을 연출한 순간 또한 많이 힘들었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김영탁 미술감독은 회고했다.

김영탁 미술감독은 최근 <산양들>과 더불어 중소기업 현장실습생의 이야기를 다룬 <3학년 2학기>, 한 어부가 어촌을 탈출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아침바다 갈매기는>, 소외된 노인 간의 연대를 묘사한 <사람과 고기> 같은 작품의 미술을 담당했다. 전부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럴수록 작품의 현실감을 살리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감독님에 따라 어느 부분까지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어디서부터 영화적으로 미술을 풀어갈 것인지 지향점이 전부 다르다. 그런 톤 앤드 매너를 공유하기 위해 사전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이후에는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로케이션을 찾고, 영화와 관련된 사건 혹은 장소들에 관한 리서치를 많이 해둔다.” 특히 <산양들>이나 <3학년 2학기> 같이 10대들의 성장 서사를 다룬 영화는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지는지에 따라 초중반부의 아이들의 변화와 분위기를 설정해나갔다고 한다.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미술감독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있어서 사전에 작품에 관해 깊게 고민하고 여러 장치를 세심하게 설정해두는 편이다. 다행히 나는 이런 과정을 즐긴다. 개인적으로 참여한 작품마다 나만 아는 이스터에그를 심어두길 좋아한다. 촬영한 지 오래되면 이스터에그가 뭐였는지 나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지만. (웃음) 상업영화는 표현할 룩이 분명하기 때문에 정해진 계획과 절차를 그대로 밟지만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독립영화는 아이디어로 승부할 때가 많다. 저예산에서 오는 어려움을 아이디어로 대체하거나 나만의 이스터에그를 넣는 식으로 재미있게 승화하며 작업한다.”

미술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김영탁 미술감독은 학부 시절 하루에 2~3편씩 영화를 보던 학생이었다. “4학년에 접어들면서 취업에 관한 고민이 깊어졌다. 만들기를 좋아하지만 전공에 큰 미련이 없었고, 습관처럼 영화를 보다 우연히 영화 크레딧을 유심히 봤다. ‘영화미술은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재밌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 정보도 없이 곧바로 이 업계에 발을 들였다.” 첫 현장인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김영탁 미술감독은 20여년간 수많은 상업영화, 독립영화에 참여했다.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작업하는 영화미술 작업이 내게 잘 맞는다. 작품 한편을 끝냈다는 희열도 일을 계속 해나갈 원동력이 된다. 이스터에그처럼 나만 아는 장치를 곳곳에 숨겨두면서, 나만 아는 추억을 쌓아나가면서 재밌게 일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병행하면서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 자신의 첫걸음이 그러했던 것처럼 김영탁 미술감독은 이제 막 영화업계에 발을 들인 후배들에게 노하우와 기술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시스템을 잘 형성하고 업계 선배와 후배를 잇는 중간 다리가 되고 싶다”고 김영탁 미술감독은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들려주었다.

ITEM

카메라, 조명 커버

카메라에 관심이 많아 소니 미러리스 시리즈를 애용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AI가 전부 설정을 잡고 처리해주는 느낌이 들어 질리더라.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전부 처분하고 라이카 M11로 넘어왔다. 사용하기는 훨씬 까다롭지만 라이카의 아날로그 스타일이 좋아 만족스럽다.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보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다양한 곳을 다니고 사진으로 기록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다른 하나는 직접 제작한 조명 커버다. 3~4년 전에 유리공예를 해보고 싶어 자료를 사다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해 이것저것 만들었다. 그러다 남은 자투리 유리를 활용해 이 조명 커버를 만들었다. 질감과 개성이 각기 다른 유리 조각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 마음에 들고, 실제로 유사한 작업 과정을 거쳐 촬영 현장에 임하길 즐긴다.

FILMOGRAPHY

영화

2025 <산양들> <사람과 고기>

2024 <3학년 2학기> <로망스> <아침바다 갈매기는>

2023 <더 와일드: 야수들의 전쟁>

2022 <통영에서의 하루>

2021 <핫 블러드> <그 겨울, 나는>

2020 <거래완료> <디바>

2019 <젊은이의 양지> <저 산 너머> <버티고>

2018 <아워 바디> <내안의 그놈>

2017 <살아남은 아이>

2014 <타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