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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의 클로징] 소위 ‘러닝 크루’와 내 인생의 달리기

그러고 보면 성인이 된 이후로 줄곧 ‘커리큘럼’을 짜는 인생을 살았다. 우리말로 하면 교과과정, 학습 프로그램(도 외래어이기는 하다마는) 정도로 옮길 수 있을 텐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이니, 아뿔싸, 물경 30년이 훌쩍 넘었고, 앞으로도 족히 10년에서 20년은 그 일을 하게 될 듯하다. 당시 대학에는 ‘학회’라는 자발적 독서토론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나는 일주일에 다섯개를 넘나드는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위 나가고 학생회 활동하느라 강의는 빠져도, 그 모임들만큼은 꼬박꼬박 참여했으니, 지금의 나를 만든 8할은 그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학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그런 역할을 맡기는 했지만, 소규모 자발적인 모임을 넘어서서 전국적 규모에서 여러 대상에게 쓰일 커리큘럼을 짜고, 스스로 교재를 만드는 시도로까지 이어질 만큼 꽤 진지했고 꽤 깊었다.

당시에는 ‘커리’라는 줄임말을 흔히 사용했고, ‘교안’이라는 말도 섞어 썼다. 그러다 순우리말 운동 분위기가 일면서 ‘댓거리’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적도 있다. 기억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그릇된 용례가 우리에게 퍼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새삼 짚어보자면, 그 댓거리라는 말에는 필경 오류가 있었던 듯하다. 미심쩍어서 좀 찾아보니, 다른 곳에서는 토론이라는 단어를 순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댓거리라는 단어를 썼고, 커리큘럼의 대체어는 ‘배움거리’라 불렀다고들 한다. 어근을 따져보면 아무래도 그게 맞았던 것 같다. 물론 ‘댓거리’ 역시 싸움 혹은 싸우는 언행이라는 뜻의 우리말인 ‘대거리’를 잘못 쓴 것이겠지만 말이다.

토론이란 게 반드시 매번 멱살잡이할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꽤 치열하게 싸우기는 했다. 그 시절 학회의 커리큘럼이란 게 좀더 어린 친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나 신념을 깨주기 위한, 대체로 특정 방향으로의 ‘의식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철학적 전제와 인간관, 사회변혁의 지향점이 달라지게 만드는 긴밀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으니 점점 더 치열한 논전이 필요하기도 했다. 개개인의 머리와 몸을 가두고 있는 상자를 부수기 위한 그런 작업들 역시 일종의 또 다른 상자로 이어지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련의 상자들 바깥으로 나와 사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 부분 편협하고 오류투성이인 토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치열함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여러 번이나 상자를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고의 도구상자(toolbox) 속에 담긴 연장들을 새로 얻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상자 자체를 교체하는 경험이었을 테다.

커리큘럼이라는 단어는 ‘경주마차’ 혹은 ‘주행로’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어근의 뜻은 ‘달리다’이다. 나는 그동안 어떤 길을 좇아 무슨 마차를 타고 여기까지 달려왔을까. 내가 만든 커리큘럼으로 달렸던, 지금도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달려갈 그들은 어디에 닿을 수 있을까. 그 속도와 목표점도 중요하지만, 부디 그 길 자체와 그렇게 달려가는 행위가, 부디 즐겁고 행복하고 영감으로 충만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