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초 천만 영화의 <실미도>와 N차 영화의 시초 <왕의 남자>, ‘전지현 신드롬’의 출발지 <엽기적인 그녀>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중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 대중문화예술이 화려하게 꽃핀 2000년대 중심에는 투자배급사 시네마서비스가 있었다. 2016년 이후 10여년간의 공백을 거쳤지만 이선빈·박지환·박영규 등의 라인업을 선보인 <감옥의 맛>으로 이제 막 새로운 챕터를 연다. 천만 영화뿐만 아니라 중간 규모 영화로 창작의 활로를 넓히고 신진 감독을 꾸준히 발굴해온 이곳엔 한국영화의 계보가 기록돼 있다. 극장가가 침체에서 벗어난 중요한 시점, 시네마서비스가 다시 꺼내든 카드는 무엇일까. 역사와 미래를 동시에 끌어안은 박영목 시네마서비스 대표를 만났다.
-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2016년 이후 10년 동안 시네마서비스가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객들에게는 회사가 사실상 영업 종료한 것처럼 비쳤을 듯하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다양한 콘텐츠를 고민해왔다. 엔데믹에 접어든 2022년부터 시네마서비스도 다시 기획을 정비하며 본격적으로 활동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 강우석 감독이 <두 포졸>이라는 작품을 기획했다. 조선시대 버전의 <투캅스>였지만 촬영 직전 시나리오를 다시 다듬으며 중단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감옥의 맛>을 만났다. 주피터필름이 제작하는 이 작품으로 다시 투자배급에 나설 수 있게 됐다.
- 긴 공백을 깨는 작품으로 <감옥의 맛>을 선택한 이유는.
주피터필름이 <감옥의 맛>으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15억원의 자금을 받았다. 그런데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지원금이 확정됐음에도 투자를 포기하는 제작자들이 속출했다. 그때 주필호 대표와 강우석 감독이 이 작품을 살려보고자 의기투합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좋았다. 현재 한국영화는 지나치게 양극화돼 있다. 대작 아니면 독립영화. 그 사이에 있던 중간 규모의 영화들이 사라졌다. 역사적으로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지지해온 힘은 중간 규모 영화에서 나왔다. 젊은 후배 감독들도 그 안에서 계속 발굴되고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런 영화들이 설 자리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 <엽기적인 그녀> <봄날은 간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중간 규모의 영화들을 투자배급해온 시네마서비스의 복귀는 단순한 사업 재개 이상의 의미가 있겠다.
시네마서비스가 20년 넘게 영화계에 있으면서 선순환구조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믿는다. 제작자와 감독들이 함께 움직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도록 도모했다. 그런데 회사가 10년 동안 사실상 멈춰 있으니 이대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투자배급을 재개하기 전까지 사무실엔 강우석 감독과 조연출 두명, 나, 실장 한명 정도만 있었다. 이전에는 직원이 100여명이었는데 5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대로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산업의 침체기에 휩쓸려 조용히 퇴색된 역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후배 감독, 후배 제작자, 후배 배급 관계자에게도 포기하지 않는 레퍼런스가 되고 싶었다.
- 시네마서비스의 복귀를 설명하면서 ‘토착자본을 기반으로 한 투자배급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토착자본은 무엇인가.
외부 투자를 전혀 받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자는 중요하다. 다만 투자사에 휘둘리지 않고 싶다는 뜻에 가깝다. 이전에는 투자사가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창작에 관한 최종 결정은 제작사가 상당 부분 쥐고 있었다. 지금은 투자사가 제작사의 고유 영역까지 관여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토착자본은 창작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투자자는 필요하다. 다만 제작사의 판단과 크리에이티브를 믿어달라는 것이다.
- 시네마서비스는 한국영화사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도 ‘다양성’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산업적 가치로 인식됐나.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도 시네마서비스가 제작·투자·배급했다. 산업 내에서도 많은 의미가 생겼다. 한국영화로도 이 정도의 수익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영화산업에 내어줬다. 투자 시장의 물꼬를 튼 역할을 한 셈이다. 극장 환경도 크게 변했다. 예전에는 한 극장에서 줄을 서서 영화를 봤다면 멀티플렉스가 확산되면서 상영관 수 자체가 대폭 늘었다. 우리도 그때 멀티플렉스 프랜차이즈인 프리머스 시네마를 시작했다. 당시 CGV나 메가박스는 극장을 직접 소유하고 확장하는 방식이라 지방까지 빠르게 확대하기엔 자금의 한계가 있었는데 프리머스 시네마는 지방 극장들과 일대일로 제휴를 맺었다. 일종의 대리점처럼 프리머스 시네마라는 브랜드를 활용한 것이다. 멀티플렉스 전환에 필요한 자금도 지원했다. 그렇게 지방의 박스오피스 규모를 넓히는 효과까지 낳았다. 그 뒤에 CJ ENM이 이를 인수했다.
- 시네마서비스가 한국 영화산업에 남긴 또 하나의 중요한 기록이, 최초의 천만 영화를 만들어낸 거다. 2003년 12월, <실미도>가 개봉 두달 반 만에 세운 역사다.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도 시네마서비스가 제작·투자·배급했다. 산업 내에서도 많은 의미가 생겼다. 한국영화로도 이 정도의 수익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투자자들이 더 많은 자금을 영화산업에 내어줬다. 투자 시장의 물꼬를 튼 역할을 한 셈이다. 극장 환경도 크게 변했다. 예전에는 한 극장에서 줄을 서서 영화를 봤다면 멀티플렉스가 확산되면서 상영관 수 자체가 대폭 늘었다. 우리도 그때 멀티플렉스 프랜차이즈인 프리머스 시네마를 시작했다. 당시 CGV나 메가박스는 극장을 직접 소유하고 확장하는 방식이라 지방까지 빠르게 확대하기엔 자금의 한계가 있었는데 프리머스 시네마는 지방 극장들과 일대일로 제휴를 맺었다. 일종의 대리점처럼 프리머스 시네마라는 브랜드를 활용한 것이다. 멀티플렉스 전환에 필요한 자금도 지원했다. 그렇게 지방의 박스오피스 규모를 넓히는 효과까지 낳았다. 그 뒤에 CJ ENM이 이를 인수했다.
- 그렇다면 지금 시네마서비스가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산업적 문제는 무엇인가.
배급작을 상영할 극장을 잡는 게 너무 어렵다. 중간 규모 영화들이 극장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영화관도 대규모 작품으로 수익을 내면 중간 규모 영화에 상영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적 공감대가 넓게 퍼져 있었다. 그게 우리의 문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관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문제가 시급해서 잘 팔리는 작품 위주로 편성한다. 물론 이해한다. 극장에 무조건 책임을 요구할 수는 없다.
- 앞으로 시네마서비스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창작자와 제작자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소 개인적인 소망인데, 강우석 감독님이 흥행의 성패를 떠나 ‘이 영화로 내가 다시 만족감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은퇴하면 좋겠다.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