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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측면에 주의하라, 김소희 평론가의 <호프> <군체> <휴민트> 그리고 <디스클로저 데이>

<군체>

올해 상반기 블록버스터영화는 내게 자동차 액션 시퀀스로 각인된다. 자동차 액션은 초기 영화에서 시작해 오랫동안 반복되었으니, 더는 진귀한 볼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의 자동차 액션 장면은 여기에 보아야 할 것이 아직 남았다고 말하는 듯하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의 자동차 액션 시퀀스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아찔한 스턴트로 요약된다. 기술이 발전한 이후에는 사고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비추며, 부서지는 파편 조각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포착하는 근접촬영에서 기거할 공간을 찾는다. 마이브리지가 달리는 말의 움직임을 찍은 것처럼, 이제는 빠른 속도 속에 자리한 인간의 모양을 관찰한다. 반면 어떤 영화들은 관객을 액션 시퀀스에 환호하던 때로 기어이 돌려놓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디스클로저 데이>는 차체가 기차에 물린 채 끌려가던 승용차가 마주 오는 기차에 의해 붕괴할 위기에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찾아오는 탈출은 예고된 공식이라고 해도, 어떤 묘사는 공식의 틀을 넘어선 체험을 실현한다. 놀라움과 공포, 안도감과 감탄이 시시각각 교차하며 감정이 나노 단위로 쪼개지는 광경을 목격한 기분이었다.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두 운송수단의 대결이 서사 내부에서 어느 한쪽의 완벽한 파괴로 귀결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영화의 세계에서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나홍진의 <호프>에서 성기(조인성)가 달리는 말에서 양배(음문석)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옮겨가는 신을 마주할 때도 두 운송수단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어느 한쪽의 파괴 없는 완벽한 공조로 묘사된다. 한편 <휴민트>의 자동차는 동류라고 인식했던 내부의 분열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박건(박정민)과 금태(이신기)의 대결은 두 자동차가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직진 혹은 후진하거나, 자동차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상태에서 자웅을 겨루는 방식의 액션 시퀀스로 표출된다. 겨울이 액션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계절임을 증명해온 류승완은 쌓인 눈이 흩날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얼어붙은 땅에서 두대의 자동차가 나란히 옆으로 회전하면서 펼치는 추격전을 선보인다. 이는 피아식별이 불분명한 대상간의 분열상을 드러내는 적절한 방향으로서의 ‘측면’을 보여준다. 주차된 차량 사이를 가로지르며 등장한 임 대리(정유진)의 승용차는 서로 다른 욕망을 매개하는 대상으로서 자동차의 위치를 보여준다. 양측과 한면씩 맞닿은 자동차는 앤태거니스트인 황치성(박해준)에게 뚫어야 하는 대상이고 그와 마주한 조 과장(조인성)과 박건 측에게는 몸을 숨기는 방패가 된다. 자동차는 분열하는 세계와 인물을 연결하는 동시에 분리한다.

<호프>가 말에서 자동차로, <디스클로저 데이>가 자동차에서 기차로 이동하는 환승 액션을 보여준다면, 연상호는 <부산행>의 주요 무대인 기차를 버리고, 수평의 기차를 수직화한 모양의 빌딩에 인물들을 유폐시킨다. 연상호의 좀비가 소리에 민감한 존재였다면, <군체>의 좀비는 시각에 민감한 대상으로 그려진다. 진화 이전의 초기 좀비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입간판이나 영상 이미지와 실제 인간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업데이트를 통해 인간의 이미지와 실제 인간을 구분하게 되자, 생존자들은 향수를 통해 인간의 냄새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공유하도록 유도하며 감염의 시간을 어느 정도 유예한다. <군체>는 두 외톨이인 권세정(전지현)과 서영철(구교환)의 대결이지만, 두 사람은 각각 개인과 다수를 대변한다. 업데이트와 리셋으로 요약되는 다수의 세계에 대응하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건 무언가를 적당한 때 일시적으로 빌려 장착하는 임기응변이다. 자동차는 세정이 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빌려 입는 의복과도 같다. 좀비가 입은 후드점퍼를 빌려 입듯, 주인을 잃고 버려진 자동차를 타고 좀비를 추격하고 유인한다.

세정의 승리로 일단락되는 <군체>의 결말이 어딘가 미진한 느낌을 준다면, 개인의 승리가 가족이라는 사적인 소집단의 희생과 와해를 전제하는 모순에서 온다. 배우 고수가 연기한 규성은 좀비들이 이미지와 실재를 구분하게 된 최초 업데이트 직후 죽을 위기를 맞는다. 규성은 좀비를 피해 점포 안으로 숨어들어 입간판으로 유인한 뒤 빠져나가려다가 측면에서 날아든 좀비에게 공격을 당한다. 가까스로 도망쳐나왔지만, 다시 측면에서 날아든 다른 좀비 떼에 감염되면서 극 바깥으로 퇴장한다. 주요 인물의 죽음에는 대부분 이를 목격하는 얼굴의 리액션이 있었다. 감염이 관계를 갈라놓을 때, 마주 본 얼굴 사이에는 정념이 피어난다. <부산행>의 인길(예수정)과 종길(박명신) 자매가 그랬고, <군체>에서도 현석(지창욱)과 현희(김신록) 남매를 통해 인간과 좀비 사이의 매개가 표출되었다. 하지만 규성의 죽음에는 대응하는 얼굴이 부재한다. 그의 죽음은 관객에겐 너무 이르며, 이혼한 전 부인인 세정은 충분한 감정의 매개도 아니다. 다만 규성의 죽음을 통해 전 부인 세정과 아내 설희(신현빈)가 영상을 통해 서로 대면하는 순간이 등장하므로, 그의 죽음은 두 사람의 원거리 대면을 위한 물러남이다. 규성이 유리문 바깥에 기댄 채 좀비에 의해 죽어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유리문 안에서 그의 죽음을 목격하는 세정의 무리 편에 서서 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호프>

앞서 묘사한 장면이 그렇듯, 인간과 비인간의 대결을 다룬 영화에서 카메라는 괴물이나 피해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인간 곁에 머문다. 이를 염두에 두고 <호프>에서 범석(황정민)과 성애(정호연)가 스텔라를 몰고 바미기르(캐머런 브리턴)를 추격하는 시퀀스를 보자. 다리를 다친 바미기르가 범석과 성애에게 쫓겨 차도를 막 지나던 순간, 측면에서 달려오던 유조차에 부딪혀 일어난 폭발 사고로 사망한다. 즉 그가 죽는 이유는 우발적인 사고 때문이다. 괴물이 우발적인 사고로 죽은 적이 있었던가. 내가 보지 못했거나 기억이 흐릿한 영화도 있으니 일단 괴물이 우발적인 사고로 죽는 경우는 드물다고 해두자. 괴물의 죽음은 늘 인간이 애를 써서 끝까지 싸운 뒤에라야 겨우 죽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만약 그가 불운에 의해 죽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일종의 보상 혹은 괴물의 악행에 합당한 징벌이라는 의미가 생성된다. 그런데 괴물의 죽음은 양쪽 다 아니다. 그가 한 마을을 초토화했다고 해도, 범석의 눈에 비친 눈물방울을 통해 괴생명체에 숨겨진 서사가 암시된 터다.

이 순간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장면이 추격하는 인간 주인공을 소외시킨 채로, 카메라와 컴퓨터그래픽 이미지가 합을 맞춘 결과라는 데 있다. 심지어 사고를 당하는 순간, 바미기르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힌 숏이 등장한다. 이 장면과 봉준호의 <괴물>에서 현서(고아성)가 괴물에게 납치되는 강변 시퀀스를 함께 놓아보고 싶다. 현서의 손을 잡고 괴물을 피해 달리던 강두(송강호)가 어느 순간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뛰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저 멀리서 이제 막 넘어진 몸을 일으키는 현서와 마주 보게 된다. 달려갈 새도 없이 현서는 괴물에 납치되어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괴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나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존재이며, 카메라는 강두의 얼굴을 통해 남은 인간의 감정을 각인시킨다. 이 장면의 구도에 앞서 묘사한 <호프>의 장면을 적용할 때, 인간-괴물피해자 삼각구도 속에서 괴물은 괴물에 의해 납치되는 가장 약한 존재의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

숲에서 이뤄지는 외계인과 인간의 추격 장면에서도 외계인은 주인공과 일직선 위에서 추격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측면 공격으로 외계인의 추격을 지연시키는 쪽은 인간이다. 디지털화된 비인간 존재가 카메라에는 걸리지 않는 비가시화된 영역을 관장하며 인간을 위협하는 구도가 익숙하다면, 이제 미처 눈치채지 못한 인간의 공격으로 외계인이 치명상을 입는다. 인간 캐릭터에 대한 외계인 캐릭터의 위치는 미묘한 뉘앙스에서 조금씩 어긋난다. 정면으로 보았을 때는 가까이에 있는 것 같은데, 측면에서 바라보면 거리가 훨씬 멀다. 이것은 영화의 흠결이기보다는 디지털화된 캐릭터 역시 카메라 혹은 다른 캐릭터와 보폭을 맞추는 인간임을 드러낸다. 외계인이 영문 모를 대화를 나누는 엔딩 시퀀스가 암시하듯, <호프>는 인간으로 번역되지 않고도 액션 시퀀스의 문법만으로 성립하는 비인간 존재의 영화를 상상하게 한다. 제목 ‘호프’가 희망을 암시한다고 짐짓 순수하게 믿어보자면, <호프>가 희망을 거는 건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