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는 만인의 인생영화다. 설령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지 못한 독자가 있다고 해도 이 영화가 남긴 “카르페디엠”(Carpe Diem)과 같은 캐치프레이즈나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서는 작품의 결말만큼은 여러 경로로 접했을 터다. 당연히 <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국에서도 큰 흥행을 거두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작가 톰 슐먼이 <씨네21>에 전해준 바에 따르면,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미국인들이 그에게 다가와 “영화를 보았다. 나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선생님이 되려고 한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만큼 <죽은 시인의 사회>는, 누군가의 인생을 내가 기꺼이 책임지도록 이끄는 이야기다. 이 텍스트는 10년 전 연극으로 재탄생했고, 여러 국가를 거쳐 2026년 한국 무대에 올랐다. 현재 NOL 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성황리에 상연 중인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국 초연을 축하하기 위해, 원작자 톰 슐먼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 1989년에 영화가 개봉하고, 2016년에서야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연극을 올렸다. 워낙 흥행한 영화인 만큼 이전에도 무대화 제안이 많았을 텐데.
연극, 뮤지컬 등 가지각색의 제안이 있었다. 정작 내가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한 프로듀서의 전언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원작의 군더더기를 다듬고 세월이 흐르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수정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그래서 대본을 다시 펼치니 각색하면 재밌을 듯한 부분이 보이더라. 내게 이 작품은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고, 스스로의 모습을 당당히 지켜낼 용기를 얻는 이야기다. 이건 시대를 초월한 주제이므로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 느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만큼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다시 살아 숨 쉴 수 있는 때가 올 것 같았다. 자아 찾기는 시대를 타지 않으니까. 영화가 무대로 옮겨오면서 보다 유머러스한 요소를 가미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제작사는 영화에 비해 등장인물의 수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출연료를 줘야 하는 배우 수가 적을수록 좋으니까. (웃음) 주요 인물 일고여덟명은 줄이지 못하고 유지했는데, 그외의 캐릭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합치고 줄였다. 선생님의 친구 역할을 없애고 그 인물을 교장선생님 캐릭터와 합치는 식으로.
- 다양한 국가에서 이미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가 흥행을 거두었다고. 아무래도 국가별로 교육과 문화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양상이 다르지 않나.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관람했을 때 받았던 인상이 궁금하다.
처음 본 미국판 이외의 <죽은 시인의 사회>는 멕시코였다. 배우들이 장면전환을 위해 소품을 옮길 때마다 사이사이에 춤을 추더라. 멕시코다웠다. (웃음) 멕시코의 전통문화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텍스트에서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독일과 일본은 이 작품을 상당히 진지하게 풀어냈다. 독일 버전은 러닝타임이 3시간이었다. 독일은 연극이 3시간이 채 안되면 관객들이 제값을 못했다고 느낀다며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에 무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아니나 다를까, 독일에 가니 3시간15분짜리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상연 중이었다. 일본은 그보다는 짧았다. 2시간45분 정도? 일본 내에선 청소년의 자살 문제가 정말 무거운 사안이라는 걸 알았다. 공연 내내 객석에 큰 동요가 없었는데, 닐의 마지막을 보며 모두가 오열했다. 또 프랑스는 그 어느 국가보다 자유분방한 프로덕션으로 진행했다.
- 주인공 존 키팅은 로빈 윌리엄스의 존재로 각인된 배역이라 배우들이 자기 색채를 입히는 데 애를 먹을 것 같다. 정작 제작 당시에 당신은 <소피의 선택>을 본 직후라 케빈 클라인을 염두에 두었고, 프로덕션은 더스틴 호프먼을 물망에 올렸다던데.
처음 로빈 윌리엄스가 캐스팅되었을 때 그가 이 작품에 어떤 종류의 유머를 가져올지 무척 걱정했다. 워낙 톡톡 튀고 정신없는 로빈 식의 유머가 키팅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현장에 도착해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텍스트에 자신만의 매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로빈은 책상 위에 올라가 선 자세만으로 관객들에게 영감을 선사할 수 있는 배우다. 사실 처음에 케빈 클라인을 떠올렸던 이유도 <소피의 선택> 속에서 다리로 훌쩍 뛰어오르는 장면 때문이었다. 그 한숏을 보고 저 모습이 바로 책상 위에 선 키팅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 로빈 윌리엄스가 존 웨인과 말런 브랜도를 흉내내는 장면이야말로 배우로서 그가 지닌 특질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비하인드가 있다. 로빈은 첫 촬영 이후 연극 스케줄로 인해 2주간 뉴욕에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그날 연기에 뭐랄까, 생기가 덜했다. 피터 위어 감독에게 넌지시 로빈의 연기에 생동감이 없다고 전했고, 그는 알고 있다는 듯 “2주간 고민해봅시다”라고 답했다. 2주 후 피터가 촬영장에 복귀한 로빈에게 대뜸 즉흥연기를 시키며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치고 싶습니까?”라고 묻더라. 로빈이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존 웨인, 말런 브랜도의 성대모사를 하며 <맥베스>를 읊는 장면이 즉석에서 탄생했다. 로빈은 그날 정확히 키팅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았던 것 같다. 키팅의 강의는 로빈의 특기인 스탠드업 코미디와 궤를 같이한다는 걸, 홀로 강의하더라도 그건 독백이 아니라 청중으로 상정할 수 있는 학생들과의 대화라는 걸 깨달은 듯 보였다.
- 작가로서 촬영 현장에 계속 상주했나.
그렇다. 그때만 해도 배우들이 대사와 의도를 제대로 소화해내는지 감시하는 일에 혈안이었다. 카메라 뒤에서 아주 사소한 걸 꼬치꼬치 캐물었다. 토드(이선 호크)가 자작시를 읊는 장면을 촬영할 때가 기억난다. 이선이 자꾸 단어 하나를 빼먹더라. 심지어 그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인, “진실이란 발을 항상 차갑게 만드는 담요 같다”를 낭송하는 신이었다. 계속 피터에게 다가가 “저 친구가 단어를 빼먹어요!”라고 속삭였다. (웃음) 돌아보면 배우들의 명연기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내 머릿속엔 오직 단어 생각밖에 없었다. 촬영 현장을 즐기기보다는 걱정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 하루는 피터가 내게 “부탁 하나만 할게요. 나한테 말하기 전에 속으로 10초만 세어줄래요?”라고 하더라. 그간 과했나 싶어 “정말 미안합니다. 그냥 집에 갈게요”라고 사과하니 피터는 “아뇨. 상처받지 말아요. 그냥 내가 이 장면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는 뜻이에요. 그러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진짜로 10초면 됩니다”라고 해명했다. 우리는 늘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마음이 열린 감독이 작가인 내 생각을 묻고 들었다.
- 영화와 연극을 보며 키팅 선생이 지키는 선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는 교실 안에서는 학생들을 북돋지만 교육자적 행동 및 실천은 어디까지나 교실 안, 혹은 학교 안에 머문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한계를 일찌감치 깨달은 교육자처럼 느껴지는데.
작중 배경인 1950년대의 미국엔 키팅 같은 선생님이 없었다. 그저 그들은 수업을 업무로 여길 뿐, 학생과 교사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을 절대 넘지 않았다. 키팅도 그 당시 교사다. 학생들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가 어떤 곳인지 책을 통해 알려주고, 아이들을 독려하긴 하지만 그의 교수법은 어디까지나 개입을 최소화하며 간접적으로 관여할 뿐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말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1950년대의 교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행동 방식이었다고 생각하고, 아마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키팅이라고 교육계의 관행을 바꾸겠다는 사명감이 왜 없었겠나. 하지만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좁다 보니 한번에 한명의 학생만 바꿀 뿐이다. 웰튼 아카데미의 교장과도 약간의 언쟁이 있지만, 키팅은 자신이 교장의 마음을 바꾸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 영화와 연극 모두 같은 이야기 구성을 취한다. 닐의 비극적 결말에 대해 개봉 당시에도 반응이 분분했을 것 같은데 연극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닐의 마지막이 그려진다.
키팅에게도 드라마가 필요했다. 그가 아무런 시험대나 시련에 오르지 않고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나 또한 청소년 자살이라는 소재를 맘 편히 쓴 건 아니다. 하지만 키팅에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면 다른 길이 없었다. 이 전개가 큰 충격이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밀고 나갔다. 닐이 아버지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 아니면 가출이었다. 하지만 가출로는 완성할 수 없는 충격과 비애가 있다고 보았다. 언젠가 피터가 잉마르 베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가가 욕을 먹는 패착 중 하나가 사랑받는 인물을 자살로 종결짓는 거라나. 어떡해야 하나 싶었는데 바로 피터가 응수하더라. 베리만이 틀렸길 바라자고.
- 많이 회자되는 결말은 어떻게 쓰게 됐나.
처음 대본을 쓸 땐 결말부가 비어 있었다. 키팅에 대한 청문회가 열리고, 학생들이 증언을 요구받는 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구상 정도였다. 하지만 내심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웰튼 아카데미 정도라면 굳이 법정에 학생들을 불러 증언하게 할 필요 없이 당장 교사를 해고해버렸을 테니까. 어느 순간, 학생들이 키팅이 억울하게 유죄 취급받는 걸 지켜보며 느끼는 좌절감 속에서, 토드가 우뚝 일어서는 장면이 번뜩 떠올랐다. 그러려면 장소는 청문회장이 아니라 교실이어야 했고, 키팅은 이미 해고된 상태여야 했다. 이후 바로 토드에게 “캡틴, 오 마이 캡틴” 대사가 붙었고, 나머지 모든 요소들이 퍼즐 조각처럼 그 자리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져갔다.
- 지금까지도 작품 속 키팅이 외치는 ‘카르페디엠’이 두루 쓰인다. 이 인용구가 관객에게 미칠 파급력을 알았나.
사실 작중 카르페디엠이 쓰이는 맥락은 ‘현재를 즐겨라’보다 복잡하다. 그 장면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다룬다. 현재를 붙잡는 일은 결국 자신의 이면을, 끝을, 죽음을 직시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마지막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끝이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이 강해지지만, 이 깨달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원동력을 계속 찾아 나서려고 한다. 작가로서 매일매일 그렇게 살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작품들을 창작하고 싶다. 그게 작중 대사처럼, ‘내가 쓰고 싶은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