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서 박광수 이사장이 발언 중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변화는 국제적 위상의 상승이다.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공인하는 경쟁영화제, 이른바 A리스트 영화제로 인증된 부산영화제는 이제 세계 영화계의 흐름과 더욱 직접적으로 맞닿게 됐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이 이번 영화제의 특징 가운데 ‘글로벌 위상 강화’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리스트에 오른 부산은 어떤 영화제가 되어야 할까. 박광수 이사장은 “부산영화제가 칸이나 베니스 같은 기존의 세계적 영화제를 단순히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현실에서 출발한 독자적인 영화제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올해 부산영화제의 변화는 단순히 규모를 키우거나 유명 인사의 수를 늘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경쟁부문의 강화와 세계 최초 공개작의 확대,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확장, 세계 영화인들의 참석과 여성 영화인의 성취를 조명하는 프로그램, 산업과 시장의 변화까지. 올해 마련된 프로그램들은 A리스트 영화제로 새롭게 출발한 부산영화제가 어디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보여준다.
더 많은 세계 최초, 더 강해진 경쟁
올해 부산영화제가 국제경쟁영화제로서의 변화를 가장 직접 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경쟁부문이다. 신설된 지 두 번째 해를 맞아 총 14편을 초청했다. 한국영화 <그날의 태주>(임하연), <긴긴밤>(염규복), <면도>(김정훈)를 비롯해 이란의 마지드 마지디 감독 신작 , 일본 히로세 나나코 감독의 <비트윈 투 리버스>,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사토코는 언제나>, 대만 리윈찬 감독의 <평범하기 위하여> 등 아시아 각국의 작품이 경쟁한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올해 경쟁부문을 꾸릴 때부터 지난해와 다른 온도를 감지했다”며 영화계 관계자들이 경쟁부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작품을 출품했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 공개작도 증가했다. 올해 공식 초청작은 59개국 247편으로, 이 가운데 월드프리미어는 95편에 달한다.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까지 포함하면 부산에서 처음 관객과 만나는 작품은 더욱 늘어난다. 공식 초청작 규모 역시 2019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개막작 김종관 감독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 정주리 감독의 <도라>, 김혜자가 9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송일곤 감독의 <여전히 찬란하게> 등 한국영화 신작도 부산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경쟁부문 확대와 프리미어 작품의 증가는 올해 부산영화제 프로그램의 주요 변화로 꼽힌다.
영화제의 경계를 넓히는 애니메이션의 약진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애니메이션의 약진이다.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 각각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는 등 전세계 영화산업에서 애니메이션의 존재감이 커진 흐름을 영화제 프로그램에도 반영했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의 책무 중 하나는 동시대 영화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기민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며 올해 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이 이처럼 크게 부각된 것은 “초유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중 특별기획 프로그램 ‘일본 애니메이션 특별전: 광기의 걸작, 전율의 기대작 12+1’이 눈에 띈다. 일본 애니메이션 100년사의 주요작과 최근작을 소개하는 특별전으로 총 13편을 상영한다. 일본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 <백사전>, <슬픔의 벨라돈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천사의 알>, 오토모 가쓰히로의 <메모리즈>, 린타로 감독의 <메트로폴리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마인드 게임> 등이 포함됐다. 국내 관객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보다 한국 극장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한 점도 특징이다. 린타로 감독을 비롯해 가도와키 고헤이, 가타노사카 료, 나쓰메 신고, 시노미야 요시토시 감독도 부산을 방문한다. 특별전 외에도 애니메이션은 경쟁부문과 여러 섹션에 걸쳐 상영된다. 경쟁부문에는 염규복 감독의 이 이름을 올렸으며 심야 상영 프로그램인 미드나잇 패션과 야외 상영 프로그램에서도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누가 부산에 오고, 누구의 이름을 다시 기억하는가
올해 부산영화제에는 국내외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한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자경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돼 15년 만에 부산을 찾는다. <다크 나이트>의 배우이자 <로스트 도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매기 질런홀은 신작과 함께 처음 한국을 방문한다.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필리핀의 라브 디아스 감독,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 홍콩의 허안화 감독도 부산행을 확정했다.
국내 게스트도 개막식에 참석한다.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유해진, 이민호, 현빈, 정우성, 우도환, 조여정을 비롯해 이희준, 손석구, 정성일, 유재명, 류승룡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지운 감독과 나홍진 감독, 이창동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인들도 영화제를 찾는다. 한편 올해 영화제는 여성 영화인의 성취를 조명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양자경이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홍콩영화의 거장 허안화 감독은 까멜리아상 수상자로 부산을 찾는다. 정한석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로 “여성 영화인의 빛나는 목소리와 성취에 대한 헌사”를 꼽았다.
영화를 보여주는 곳에서, 영화를 움직이는 곳으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에 대해 설명 중인 김영덕 부산국제영화제 마켓위원장.
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제21회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은 10월10일부터 13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도서와 웹툰·웹소설 등 원천 IP, AI 콘텐츠까지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마켓으로 운영된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과 부산스토리마켓을 통한 공동제작과 판권 거래, 글로벌 프로듀서들의 교류를 위한 프로듀서허브도 이어진다. 올해는 태국을 첫 주빈국으로 선정해 국제공동제작과 투자, IP 비즈니스도 확대한다. 완성된 영화의 상영뿐 아니라 제작 단계의 프로젝트와 투자, 공동제작, 판권 거래까지 연결하는 ACFM 역시 올해 부산영화제의 주요 변화 가운데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