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천국제영화제는 국제경쟁 부문을 신설했다. 음악영화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작품성에 집중하여 꾸린 부문이다. 이중 <몸과 마음>은 유일한 한국 작품이다. <몸과 마음>을 정돈된 문장으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실험적인 형식의 영화다. 주인공은 분명하다. 연인 인애(정하담)와 도환(김영훈)이다.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죽어가는 흑백의 세계, 도환은 느닷없이 스스로 세상을 뜬다. 인애는 연인의 죽음에 반발하기 위해 도환의 몸을 이래저래 조각내 소유하려 한다. 인애의 돌출적인 행동에 맞춰 영화의 톤도 환상적으로 변한다. 인애의 현실과 환상 사이에 도환이 부활하고,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교차한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2024) 등의 단편 영화로 10여 년간 꾸준히 유수의 영화제를 찾았던 전찬우 감독의 첫 장편이다. 첫 장편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기백일지, <몸과 마음>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자기만의 형식적 탐닉을 이어간다.
- 국제경쟁 중 유일한 한국영화다. 소감이 어떤가.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싶다. 경쟁부문에 올랐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최근 가장 화제인 아이라 잭스 감독의 영화나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같은 거장들과 한 부문에 이름을 각인했단 사실만으로도 영광이다. 주변 사람들이 영화제 가서 ‘너 꼭 잘하고 와’라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웃음)
- 무척이나 독특한 영화다. 아이디어의 시작점은 무엇이었나.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생이었던 11년 전 인디포럼에서 첫 단편 영화 <이승민, 2015년 2월 28일>을 상영했었다. 그 영화도 한 남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도 우리나라의 청년 자살률이 굉장히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샌가 당연한 사실이 된 것만 같은데,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태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고 쫓다가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단 사람들이 그렇게 죽지 않는 게 더 중요하겠단 마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랑’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 사랑을 주제로 삼았는데 시신 절단이라는 소재가 겹치다니.
물론 혹자에겐 다소간의 비약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설정이다. 다만 나라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함께 사는 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애도 그렇게 도환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인의 시신을 토막 내어 타살을 주장하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사랑했기에 분노의 감정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가장 큰 분노의 표출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절단이라는 모티프를 떠올렸다. 함께 했던 공간에서 상대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려는 것이다. 인애가 “네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서 나의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했음에도 함께했던 기억과 감정의 잔흔은 마음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에 여러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이 과정이 다소 폭력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른 장치들을 통과해서라도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들고 싶었다.
- 다만 영화가 마냥 슬픔에 잠기지는 않는다. 블랙코미디 같은 요소도 많고, 희극적인 요소로 분위기를 통통 튀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역으로 좇을지라도 비단 안 좋은 기억만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함께했던 좋은 추억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지녔던 거대한 희망도 있었을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다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적으로는 그러한 순간들의 면모를 이미지적으로 담고 싶었다.
- 스프링, 태엽, 공장 설비, 장난감 로봇 등 다양한 오브제가 유의미하게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어떤 연유로 활용하게 됐나.
우선은 영화에 익살을 더하고 싶었다. 태엽이나 스프링처럼 어떤 동작이 확실한 물건들로 움직임을 더한 것이다. 평소에 스프링 공정 과정을 찍은 유튜브 영상 보는 게 취미다. 한국은 기술 유출 때문에 공개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일본 쪽에는 그런 영상들이 더러 있다. 정말 많은 한국의 스프링 공장에 연락했고 유일하게 촬영을 허락해 준 공장을 찾을 수 있었다. 작중에 나오는 스프링 공장의 인부 역할이 실제 공장의 대표님이시다. 스프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진다. (웃음) 기본적으로는 원자재를 딱딱 끊어내는 절단의 과정이라 그런지 작중 인애와 도환의 설정과도 겹치는 면이 있었다. 작중에 인애와 도환의 관계 말고도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나온다. 스프링의 성질도 비슷하잖나. 튀어 오르는 기능이 있는 동시에 이것저것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니 더 안성맞춤이라 여겼다.
- 이미지와 형식 위주의 작품이므로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한데.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감히 제언을 해보자면 인물들의 대사를 찬찬히 따라가 보시면 좋겠단 생각이다. 인애와 도환의 말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이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로맨스 서사다. 형식적 콘셉트가 뚜렷하고, 그 콘셉트를 끝까지 밀고 나가려 하고, 그 과정에 비약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로 접근하여 수용한다면 재밌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 대사뿐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형식과 시간 순서 등은 복잡하나 음악은 인물들의 감정을 명확하게 밀어 넣는다. 대사와 음악을 따라 즐기는 것, 그리고 이 영화의 과정을 풀이하는 것, 두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 영화의 여러 형식적 독특함에 관해서도 설명을 듣고 싶다.
첫 번째로는 흑백 화면을 쓴 이유부터 말하고 싶다. 우선 시간 감각을 완전히 분절하고 싶었다. 보통 영화에서 흑백이라 하면 과거의 시점을 보여주는 형태로 쓰인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전체를 흑백으로 만들었다. 지금 마주하는 시퀀스가 현실인지 과거인지 꿈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싶었다. 딱 한 번 의외의 장면이 등장할 때의 임팩트도 줄 수 있었다. 도환이 현실에 나타나서 태엽으로 인해 바뀐 모습으로 나타날 때다. 이때 영화가 고수하던 고유의 형식마저 붕괴하는 순간이 생긴다. 이러한 식별 불가능의 감각, 붕괴의 감정이 인애의 마음과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인간들의 제한적인 출현이다. 영화엔 총 6명의 배우가 나오고, 그중 조연인 인부 역할을 빼면 실질적으로 5명의 등장인물이 전부다. 엑스트라의 출연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모두 죽어가는, 죽은 시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 왜 죽은 시대인가.
12·3 비상계엄이 준 분노와 무력감을 빼놓을 순 없겠다. 분노를 넘어서 내가 이 사회와 국가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냥 이러다가 모두 다 죽겠구나.’ 싶었다. 모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서로를 혐오하기만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았다. 도환의 초반 독백에서도 “상식과 정의가 죽었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영화에 조금의 희망이나마 담고 싶었다. 마지막쯤 나오는 내레이션을 통해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대사를 던진다. 이 영화의 전반적 톤과는 다소 다를 수도 있는 내 기저의 마음이다. 인애와 도환만큼 열렬히 사랑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서로 조금이나마 다정하면 좋겠다.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가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것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