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 기간에는 2026 제천뮤직필름마켓이 함께 열렸다. 영화와 음악의 협업을 견인하고 영화 제작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자 만들어진 영화음악 전문 마켓이다. 영화음악가들을 위한 1:1 비즈니즈 미팅, 공개 피칭, 네트워킹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었다. 이중 메인 프로그램은 ‘후반제작지원(영화음악) 피칭’이었다. 후반작업 중인 한 영화를 대상으로 다수의 음악감독이 공개 피칭을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최종 매칭이 성사된 장편영화에는 영화음악 후반제작지원금 800만 원을 수여한다. 여타 영화제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형태의 시도다. 올해의 매칭 대상 작품은 다큐멘터리영화 <청춘길일>이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거리의 사진가 양승우가 주인공이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된 홈리스, 야쿠자, 그늘 아래의 노동자 등을 오랫동안 찍고 있다. 5명의 영화음악가는 <청춘길일>에 차례로 피칭 시간을 가지며 작품에 어울리는 음악과 그 의도를 공개적으로 선보였다. <청춘길일>의 시퀀스 위로 5명의 음악가가 자기만의 해석으로 수놓은 음악이 흐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9월6일 10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된 ‘후반제작지원(영화음악) 피칭’은 <청춘길일>의 김병수 감독과 김경희 프로듀서의 작품 소개로 시작됐다. <청춘길일>은 영화제 사전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두 사람은 “항상 피사체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사진을 찍으며, 오로지 사진만 생각하며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이들을 찍는 양승우를 촬영했다. <청춘길일>이 예술이 우리에게 전하는 구도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김경희 프로듀서는 “10여 년 전 양승우 사진가와 운명적으로 만났던 것처럼, 오늘도 멋진 영화음악가분과 운명처럼 연결되기를 바란다”라는 기대감을 남겼다.
첫 번째 피칭 순서는 박준철 음악감독의 몫이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 이력부터 천천히 설명했다. 중학생 때부터 이어진 밴드 경력이 밴드 이날치의 베이시스트 등으로 이어진 경과, 영화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등이었다. 이어서 <청춘길일>에 관한 본격적인 해석에 돌입했다. “다큐멘터리영화는 보통 ‘현실을 기록한 영화’로 정의되는데, 양승우 사진가가 찍는 사진은 지금껏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던 현실’이다. 이 두 개의 의미가 서로 부딪히면서 나아가는 점이 흥미로웠다”라며 “작품의 감동을 치우치게 끌어내기보단 사진의 정적인 이미지에 맞추어 음악의 비중을 미니멀하게 조절하는 편이 좋을 듯했다. 또 양승우 사진가의 사진이 한국의 ‘씻김굿’과 비슷하고 평범한 농민들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농악 장단을 썼다. 페트병을 두들기는 소리나 비닐봉지를 구기는 소리 등 일상의 소리도 활용”했다고 밝혔다.
“피사체를 내려다보거나 올려보지 않고 마주한다는 양승우 사진가의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그 철학을 다큐멘터리로 마주하며 들었던 강렬하고도 쓸쓸한 정서, 소스로 받은 촬영 현장의 소리들을 활용해서 작업”했다는 신경철 음악감독이 두 번째 순서였다. 양승우 사진가의 전시장이 나오는 장면에선 그동안의 잠잠했던 사운드가 음악을 통해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을 조성하려 했다. “사진가의 기억 중 안타깝게 사망한 친구나 동료들을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점도 고려하여, 최대한 주인공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는 음악을 꾸리고 싶었다.”(신경철) 신경철 음악감독의 설명처럼 그가 취한 <청춘기일>의 음악은 부드럽고 정서적인 인상이 강했다.
세 번째 피칭에 나선 신세빈 음악감독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에 딱 맞는 음악을 찾아 나가는 일이 작업의 최우선 목표다. 영화 매체는 그러한 일을 하기에 최적인 종합 예술인 듯하다”라며 “2016년엔 음악가로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거리의 악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이렇게 영화음악가로 다시 제천을 찾게 되니 소감이 남다르다”라는 소감을 먼저 밝혔다. <청춘길일>에 대해서는 “음악적 요소나 효과가 크게 필요한 영화는 아니라고 느꼈다. 양승우 사진가가 피사체의 생활 한가운데로 들어가 장면의 일부를 남기는 것처럼, 이 다큐멘터리와 음악도 관객의 감정을 제한하거나 해석하기보다 다른 방향을 찾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세빈 음악감독은 영화 <웨이킹 라이프>에 자신의 음악을 덧씌운 작업 예시를 시연했다. “원래 음악이 없는 장면인데 인물들이 던지는 말의 호흡에 박자를 맞춰 음악을 넣은 작업”이며 “<청춘길일>에서도 양승우 사진가의 사진이 제시되는 장면이나 전후로 붙은 인터뷰 장면에 리듬의 요소를 찾아 조화롭게 이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작업 비화를 전했다.
윤시후 음악감독은 <청춘길일>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으로 네 번째 피칭을 시작했다. “양승우 사진가는 빛과 소금의 세계가 아니라 그 반대편의 어둠에서 태어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는다. 피사체들은 단순히 사진에 찍히는 대상이 아니라 그 사진 속에서 꿈틀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라며 “양승우 사진가가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도 영화 한 편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전체적인 상을 보셨던 것처럼, 나도 곡 하나를 만들 때 하나의 세계관을 제작한다고 생각하기에 닮은 점이 있음을 느꼈다”라는 감상이었다. 윤시후 음악감독은 네덜란드에 기반하여 활동하면서 해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즐기는 편이다. 이에 “<청춘길일>에도 어두운 뒷골목이나 유흥업소 등 통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공간이 등장한다. 이에 맞춰 해외의 여러 아티스트와 접촉하며 실험적인 분위기와 날 것과 같은 정서를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계획을 말했다.
피칭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한민희 음악감독의 발표였다. “‘어떻게 하면 영화의 세계를 완전히 체험시킬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영화음악 작업의 주요 포인트다. 최근의 작업들을 소개하며 그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3편의 영화, 장우진 감독의 <우주의 흔적>, 손현록 감독의 <새>, 윤주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소리그물>을 비롯해 2024년 제천뮤직필름마켓 작품인 임대청 감독의 <지금, 녜인>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가 소개됐다. “지난 경험과 <청춘길일>을 감상한 결과 짧은 피아노 소리 하나만이라도 잘못 넣었다간 자칫 인물들의 감정에 부적절하게 개입하게 될 듯하여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상상에 빠지게 됐다. ‘양승우 사진가가 만약 타인을 담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사진이 아니라 음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오프닝 시퀀스의 음악을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