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천국제영화제는 ‘관객 워크숍, 영화의 일생’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음악감독, 미술감독 등 영화에 인접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가 자신들의 창작 과정을 관객들과 공유하는 행사다. 이중 ‘음악감독 포럼: 장르영화의 흥행을 이끄는 또 다른 언어’엔 최근 장르영화 음악에서 두각을 보이는 김지혜, 채민주, 허준혁 음악감독이 자리했다. <군체> <살목지> <노이즈> 등 근래 극장가에서 흥행한 장르영화에 어떠한 음악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포럼 진행 전 준비에 한창이던 세 명의 음악감독을 만났다. 포럼에서 나눌 이야기를 비롯하여 각자의 작업 방식부터 애용하는 악기, 최근 한국 영화계 속 음악감독들의 업계 진입 경로부터까지 다양한 차원의 질문들을 던졌다.
- 오늘 포럼을 위해 준비한 이야기는 각자 무엇인가.
김지혜 최근 작업한 <살목지>를 중심으로 준비했다. <살목지>에는 크게 2개의 음악 테마가 등장한다. 하나는 인물 테마, 하나는 공간 테마다. 우선 살목지는 설정상 무척이나 고요한 저수지다. 자칫하면 <그래비티>의 우주처럼 공간의 소리가 부재한 곳으로서 심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공간을 설명할 목적으로 보컬이 들어간 곡을 활용했다. 이런 식으로 작품에 맞춰 어떻게 음악의 콘셉트를 조율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허준혁 최근에 작업한 <84 제곱미터> <노이즈> 둘 다 층간 소음에 관한 스릴러 장르의 영화였다. 소음이라는 소재가 중심이 되어야 하기에, 소음과 음악이 어떻게 영화 속에서 잘 섞일 수 있는지 설명하려고 한다.
채민주 <군체>가 메인이다. 지금껏 여러 좀비, 크리처 장르영화를 작업했는데 <군체>는 기존의 좀비물과 다른 콘셉트를 가져가야만 했다.
- 각자 언급한 예시 작품들의 구체적인 작업 과정을 듣고 싶다. 음악과 함께 조응해야 할 사운드 디자인 측면과의 협업 과정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허준혁 <84 제곱미터> <노이즈>는 방금 말했듯이 층간 소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음악 작업을 해야 하는 가편집본 단계에는 그런 소음 사운드 이펙트가 작업이 안 된 상태다. 아무래도 음악 작업은 사운드 디자인보다 먼저 진행되고, 후반 작업 중에서도 일찍 시작되는 편이라 그렇다. 다만 이런 경우엔 꽤 난감하다. 사운드 믹서와 미리 소통해서 어떤 부분에 어떤 소리가 들어갈지 간략하게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자주 연락하다 보니 낮술 친구가 되기까지 했다. (웃음) 음악의 선율 같은 것들을 최대한 빼고 박자감만 기저에 까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채민주 <군체>는 사운드 디자인과 음악의 경계가 무척 중요한 작품이었다. 좀비들이 동기화되어 공명하는 장면이 핵심이었다. 처음 연상호 감독님과 이야기했을 때 감독님께선 좀비들의 소리가 어떤 사운드라기보단 음악적이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음악을 마치 사운드 같은 느낌으로, 음악적 프로세스로 만들어지길 원하셨다. 바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허준혁 마치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의 활 소리처럼?
채민주 맞다. (웃음) 깊이 고민하다가 악기를 먼저 찾았다. 한 5년 전부터 음악 작업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인데, 영화의 키가 될 수 있는 시그니처 사운드를 구한다. 누가 들어도 ‘아, 이 작품에 나오는 소리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만들려고 한다. 사운드의 영역일 수도 있겠으나 음악적 측면에서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군체>의 좀비 동기화 신에는 브라스를 쓰게 됐다. 금관악기인 브라스에 날카롭고 기괴한 보이스 등 여러 소리를 합체시키고 가공해서 좀비의 공명음을 만들었다. 관객분들은 뱃고동 소리라고도 하더라.
김지혜 <살목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딱딱”거리는 박자 소리가 시그니처 사운드가 쓰이는데, 실제 돌들을 부딪쳐서 만든 소리였다. 돌을 퍼커시브(현악기를 때리거나 쳐서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연주 기법- 편집자) 주법으로 쓴 것이다. 그 원재료를 신시사이저로 변형시키거나 퍼커션처럼 사용해서 작중 내내 깔리는 소리로 만들었다.
허준혁 돌의 종류가 뭐였나? 화강암인지 현무암인지?
김지혜 그건 모르겠다. (웃음) 여러 종류의 돌을 공수해서 작업하긴 했는데 종류까지는···.
채민주 설마 진짜 살목지에서 가져온 돌···?
- 무서운 상상이다. 허준혁 음악감독은 원래 일렉트로닉 기반의 대중음악으로 이름(밴드 해오)을 알렸었다. 대중음악의 악기나 특성을 영화음악에 적용한 부분도 있을까.
허준혁 한 80~90%를 신시사이저로 작업한다. 나머지는 10~20%는 현악기를 쓰는 것 같다.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항상 업데이트해서 시험해 보고 애용하게 된다. 첫 편집본을 받으면 요리할 때 재료 준비부터 하듯이 여러 소스를 만들어 둔다.
채민주 신시사이저 하니 생각나는 작업이 있다. 보통 넷플릭스 시리즈는 로고가 뜨는 순간엔 음악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선산> 때는 작품의 키 사운드를 처음부터 강렬하게 제시하고 싶었다. 현악기에 신시사이저를 섞어서 1화가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소리를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그 소리가 시리즈 전반에 다 적용이 됐다. <기생수: 더 그레이>도 마찬가지고, 앞서 말한 것처럼 작품만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만들려고 한다.
- 오늘 포럼의 주제는 ‘장르영화’다. 장르는 관습적인 면을 지키면서도 조금의 변주를 주어야 재미가 생기기 마련이다. 음악적으로는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고려하나.
김지혜 작업하는 장르영화의 음악들이 다 관객의 체험으로 통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서 <살목지>를 보신 관객들이 <살목지>에 들어갔다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그 경험을 직접 느끼기를 바란다. 장르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등장인물을 잘 따라갈 수 있게 인물 중심의 음악을 설계하는 편이다.
채민주 장르영화는 유명한 정전들이 있고 역사가 있다 보니 이미 사용된 음악들이 많다. 그래서 답습을 피하려 최대한 애쓴다. 다른 영화를 보기보다는 작업 중인 작품의 시나리오와 편집본을 보면서 계속 싸운다. 장르영화 음악을 오래 작업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유다. 계속 언급하게 되는데 <군체>가 그런 면에서 큰 숙제였다. 연상호 감독님의 이전 필모그래피와도 달라야 했고, 근래 나오는 좀비물과도 달라야 했다. 반복을 피해야 했다. 결과적으론 영화음악에 관습적으로 쓰이던 현악기를 다 뺐다. 작품의 규모를 웅장하게 키우기 위해 오케스트레이션은 거의 필수로 쓰이는데 그런 것조차 정말 최소한으로 쓰려했다. 대신 100%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활용했다. 이런 식으로 되도록 장르영화의 새로움을 찾으려 한다.
- 음악이 영화의 주제를 과잉되게 키워야 할지, 자기 정체를 되도록 숨겨야 할지가 영화음악의 주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채민주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음악감독으로서 음악을 뽐내고 싶은 순간이 당연히 있지만, 작품을 위해 참아야 할 때가 많다. 음악 작업을 한창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시기에는 멜로디 중심의 인물 테마나 메인 테마를 명확하게 만드는 편이었다. 그런데 2019년쯤부터 장르영화엔 최대한 테마를 쓰지 않고, 음악인지 사운드인지 그 모호한 경계를 오가는 작업에 치중하게 됐다. 음악이 너무 과하게 영화를 주도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허준혁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포함해서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 세 편 모두가 멜로디를 쓰기에 어려운 장르였다. <노이즈>에서는 그래도 자매 사이의 절절한 스토리가 다뤄지는 부분이 있어서 멜로디가 있는 음악을 넣었는데, 감독님께서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 (웃음) 앞부분에 한 1분 정도만 쓰게 됐다. 멜로디가 뚜렷하게 필요한 영화에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 영화 음악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김지혜 요즘은 본인의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마련한 뒤에 제작사나 연출자에 접촉하면서 업계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비해서 본인의 음악 작업을 하다가 영화음악에 진입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듯하다. 아무래도 산업의 시스템이 견고해지다 보니 이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채민주 또 최근엔 음악감독들이 작곡을 다 수행하는 편이기에 실질적인 작곡 역량을 키우는 일도 도움이 되겠다. 예전과 달리 기획이나 디렉팅만 하는 음악감독은 잘 없어 보인다.
허준혁 아직 두 선배님에 비해 경력이 짧은 터라 특별히 조언할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조금 더 열심히 해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