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IMFF #4호 [인터뷰] 인생은 기상천외 롤러코스터, <진세이> 스즈키 류야 감독

종종 영화는 한 사람의 인생으로 비유되고는 한다. 한 명의 삶 안엔 수많은 장르가 뒤섞이고, 두 시간 남짓한 필름 속엔 탄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 갈등과 조화가 모두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몫의 삶은 온전히 목숨을 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아예 인생(じんせい)을 제목으로 한 애니메이션 <진세이>는 영화의 내용은 물론 필름메이킹의 과정까지 모두 한 사람의 인생과 같다. 스즈키 류야 감독이 18개월간 홀로 연출, 각본, 작화, 스코어 작곡해 완성한 장편 데뷔작이고, 100년을 사는 주인공은 아이돌 스타였다가 유명 배우가 되고, 괴담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전쟁의 생존자가 된다.

- 학부 전공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영화였다고. 장편 데뷔작인 <진세이>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행로를 요약한다면.

(실사)영화를 전공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니 스태프진을 꾸려 내 영화를 찍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시간이 비어 이 타이밍에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서 만들 수 있고 큰 돈이 들지 않는 애니메이션에 눈을 떠 지금까지 왔다. <진세이>를 만들기 전에도 2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1인 작업으로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은 순수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나만의 스타일과 페이스가 어느 정도 정립됐다. 하여 <진세이>에서도 같은 작업 방식을 유지했다. 이를테면 단편을 찍을 때처럼 <진세이>의 시나리오는 모두 애드리브로 이루어졌다.

- 애드리브로 이루어진 시나리오가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그날 그날 떠오르는 영감이 있으면 스토리에 반영한다.

- 그래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는 이야기인데 시간의 분기점은 정해두었어야 하지 않나.

100년을 다룬다는 설정은 있었다. 또 영화를 제작하던 때가 2024년 즈음이라 영화의 흐름이 급격히 전환되는 부분을 이쯤으로 해두면 좋겠다는 느낌 정도가 들었다. 그러니까 영화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만 정했고 나머지는 즉흥적인 영감에 따라 구성했다. 이 이야기의 스케일이 미약하게 시작해서 창대하게 끝나지 않나. 그 안에서 마치 롤플레잉 게임을 플레이하듯 알 수 없는 인생을 탐구하도록 서사를 배치했다. 관객들이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 속에 말려들길 의도했다.

- 그 기상천외함에 화면비의 가변성도 포함일까.

90분 넘는 영화를 보는데 화면이 매번 똑같으면 관객도 지겹지 않겠나. 연도별로 화면비를 바꾸면서 관객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영화를 즐기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비가 넓어지는 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꽃피는 인생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영화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명백한 생략이다. 관객이 그 안을 상상력으로 채우길 바라서 그렇게 했다. N차 관람을 의도한 전략이다. 반복 관람을 하다보면 생략된 부분 안에서 이야기의 의미나 의도를 스스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요새 극장으로 걸음하는 관객의 수가 적지 않나. 이렇게라도 하면 관객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극장을 재차 찾을 것 같아 선택한 전략이다.

- 영화가 시작점으로 삼는 1994년은 한국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의미심장한 해다. 일본에선 어떤가.

내가 살아본 경험에 근거해 플롯을 짰다. 내가 1994년생이고 2025년까지는 살아봤지 않나. 그래서 그 파트는 내가 아는 현실의 규모에 맞춰 그렸다. 그리고 중반엔 대전환이 일어난다. 이전까지의 내용은 현실에 근거한다면, 아직 살아보지 않은 연도에 대해서는 상상력을 폭발시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계의 스케일을 그리면서 거듭 일본 관객층의 수요를 생각했다. 일본은 대중영화와 아트영화를 소구하는 층이 명확히 나뉜다. 두 층을 모두 포섭하려면 양쪽의 장점을 모두 지닌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영화의 전반부는 스토리로 관객을 이끄는 반면 후반부는 예술영화를 즐기는 관객이 반길 법한 이야기를 전개하려고 했다.

- <진세이>의 주인공의 긴 인생만큼 여러 이름으로 분화된 삶을 산다. 이름이 곧 정체성의 일환이라면 이 설정이 매 챕터마다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과 퍽 어울린다.

사람이 이름은 하나여도 여러 호칭으로 불리지 않나. 자녀가 태어나면 누구 엄마, 아빠로 불리거나 SNS에서는 닉네임으로, 직장에서는 직책으로 호명된다. 살면서 가지는 이름의 개수만큼 인격이 생길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지점에 흥미를 느껴 주인공의 여러 정체성을 분화했다.

- 오프닝 시퀀스를 포함해 여러 몽타주로 작품의 미학을 완성했다. 이 작품을 보고 <업>(2009)을 떠올리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몽타주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는데, 사실 기술적인 이슈가 크다. 나 자신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캐릭터를 생동하게 만드는 기술에 능숙하지 못하다. (웃음)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제공해 마땅할 움직임을 만들려면 몽타주를 활용하는 게 쉽다. 대신 몽타주를 다양하게 활용하면 그 자체로 <진세이>의 시그니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일찍이 <진세이>에 영향을 준 감독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기타노 다케시, 폴 토머스 앤더슨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영화가 세 감독의 세계와 어떻게 조응한다고 보나.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린다는 점에선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닿아있다. 물론 <데어 윌 비 블러드> 속 대니얼 플레인뷰(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달리 <진세이>의 주인공은 유명해질 생각이 없었는데 유명세를 얻었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다. 그리고 치닫는 유명세로 인해 피라미드 꼭대기로 점차 올라가는 남자의 일대기라는 점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떠올리게 한다. <진세이>를 보면 인물들이 대개 카메라 정면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숏이 많다. 카메라워크를 최소화하고 배우가 정적인 자세로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기타노 다케시의 시그니처 구도가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면 어떨까 싶어 이번 작품에 활용해보았다.

- 주인공이 행하는 폭력의 수위, 주인공 내면의 폭력성, 그리고 주인공이 처한 폭력적 상황까지. <진세이>는 폭력을 회피하지 않고 가차 없이 직시한다.

이전에 만든 두편의 단편도 유사한 묘사가 있다. 애니메이션이라 더 과감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내가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려도 실사에 필적할 순 없으니 오히려 제한 없는 수위를 추구하게 된다. 무거운 이야기여도 그림으로 그리면 좀 더 ‘팝’해진다는 감각을 믿고 세계를 개진해간다. 그런데 그렇게 잔인하던가? 주인공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보니 당한 일에 대해선 확실히 보복을 가하는 모습을 그려야 했다.

- 영화제 이후 앞으로의 계획은.

일본에서는 <진세이>가 지난해 5월에 개봉했다. 다닐 수 있는 영화제는 충분히 가서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모처럼 <진세이> 이야기를 하게 돼 기쁘다. 앞으로는 이도류를 잘 하고 싶다. 차기작은 전공을 살려 실사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싶은데 또 애니메이션도 놓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