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IMFF #4호 [인터뷰] 당신을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로스트 랜드> 후지모토 아키오 감독

로힝야족 아이들 소미라와 샤피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여정에 오른다. 학살을 피해 살던 터전을 떠나 난민캠프로 왔음에도 더 나은 곳을 찾아 로힝야족 사람들은 다음 도착지로 떠날 채비를 한다. 로힝야족 언어로 로힝야족 사람들이 직접 출연한 최로의 극 영화 <로스트 랜드>는 그렇게 카메라가 로힝야족 중 한 사람, 혹은 목격자로 위치하며 이들의 위험한 여정에 동행한다. 영화감독으로서 로힝야족을 알면서도 묵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후지모토 아키오 감독은 다음 영화는 소년 전쟁병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5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부문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이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아 관객들과의 대화를 준비 중인 후지모토 아키오 감독을 만났다.

- 영화에서 로힝야족인 소미라와 샤피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한다. 발음이 한국어와 거의 똑같더라.

촬영할 때는 그게 한국 놀이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한국인 친구가 알려줘서 알게 됐다. 로힝야족 캠프에도 휴대폰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쇼츠로 <오징어 게임>의 놀이 장면을 보고 따라 하게 됐다고 하더라.

- 로힝야족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은 이유가 있나.

내 첫 영화가 미얀마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로힝야족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 얘기를 다룰 용기를 내지 못했다. 몇 년 후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고 많은 사람이 학살당했다. 거리 시위를 지켜보는데, 한 여성이 '내가 이제야 로힝야족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 로힝야에게 미안하다'라는 플래카드를 든 모습을 보게 됐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웠다. 저렇게 젊은 사람들도 목소리를 내는데 로힝야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이기고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동기가 강해졌다.

- 로힝야족 어른이 아닌 이토록 어린아이들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 이유가 있나.

원래는 15살 정도의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 그런데 로힝야족을 취재하다가 놀고 있는, 샤피 역할을 맡은 아이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됐다. 그 아이를 만난 후, 여정 속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생명의 바통이 이어지듯 아이가 여러 손을 거쳐 건네지고, 마침내 당신(관객)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여행이라는 모티프도 그렇게 도입하게 됐다.

- 두 배우 모두 굉장히 어리다. 실제 남매라고 알고 있는데, 이 작업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나.

소미라 역의 쇼미라와 샤피 역의 무함마드 모두 자기 역할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촬영 당시 소미라가 9살, 무함마드가 4살이었는데, 한 번 설명하면 완벽하게 해내는 천재들이었다. 나중에는 '이 장면은 다시 찍고 싶다', '감독님, 이 장면은 한 번에 끝내는 게 좋겠다' 같은, 배우로서의 제안까지 해줬다.(웃음) 촬영하면서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영화에 참여한 로힝야족 성인 배우들 역시 비전문 배우로, 이 영화가 첫 연기였는데도 다들 훌륭했다.

- 기타가와 요시오 촬영감독과 작업했다. 카메라가 로힝야족의 일원이 되어 여정을 담아내는 듯한 기법이라,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더라. 촬영감독과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나.

기타가와 감독에게 맡긴 부분이 많았다. 극영화라고 해서 모든 걸 찍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로힝야족에 대한 경의와 주의해야 할 지점들을 확실히 공유했을 뿐, 영화의 촬영 스타일은 기타가와 감독의 제안과 선택으로 완성된 부분이 크다.

- 영화 속 카메라는 로힝야족 사이에서 목격자이자 일원의 시선으로 움직이는 인상이다. 현실감을 살리고 싶었던 건가.

카메라로 완벽한 현실을 담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로힝야족의 감정이나 마음을 카메라로 대신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내 주관을 담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제3자의 관점에 카메라를 두어, 관객이 상상할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영화는 그저 보여줄 뿐, 로힝야의 마음은 관객이 스스로 상상하며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찍었다.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로힝야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 있어주길 바랐고, 카메라 역시 그 자리의 참가자 중 하나이길 원했다.

-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있길 원했다면, 시나리오와 달라진 부분도 많았겠다.

놀이 장면이 늘어났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아이들이 노는 장면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놀이와 장난감을 빼앗기는 장면이 중요해지면서, 그렇게 '아이다움'을 빼앗기는 과정을 의식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면서 달라진 지점이다. 연출진도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정말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많이 친해졌다. 놀이에는 언어적 설명이 필요 없지 않나. 국적과 상관없이 관객들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서는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 밀항 브로커의 폭력성이나 해상 이동의 위험도 사실적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폭력을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절제가 느껴진다.

그게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촬영할 때 로힝야족 사람들이 '이 영화를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로힝야족은 난민이라 여러 복지 혜택 중에서도 특히 교육을 받기 어렵고, 난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캠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있다 보니 부모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여기까지 왔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기 민족의 여정을 담은 이 영화를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폭력적인 장면이 많으면 아이에게 보여주기 어렵지 않나. 다만 로힝야족이 터전을 강제로 떠나며 겪는 위협에는 폭력 노출이 워낙 크게 자리하고 있어, 뺨을 맞거나 휴대폰을 빼앗기는 장면 등은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수위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는데, 지금도 이게 최선의 결정이었는지는 확신이 없다.

- 극 중 소녀가 알라에게 기도하는 장면이 유독 슬프고 성스럽게 느껴지는데, 로힝야족의 종교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찍은 장면인가.

그건 내가 연출한 게 아니라 이들이 매일 행하는 일이다.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보니 그걸 뺀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다. 놀이와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종교가 달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아이가 무엇을 기도하는지는 대략 짐작이 가니까. 결과적으로 그 장면은 내 기대보다 훨씬 좋은 장면이 됐다.

- 관객에게는 소미라와 샤피 모두 중요한 주인공이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소미라의 안전이 불투명하게 그려진다. 감독 입장에서는 큰 결정이었을 것 같다.

촬영 중에 그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든 두 사람 모두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할 수 없느냐, 각본을 고칠 수 없느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샤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했고, 영화 내내 샤피 주변의 사람들이 계속 바뀌다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과정이 매우 중요했다. 개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미얀마 쿠데타 이후 내 친구와 지인 중에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미얀마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SNS를 보면 바깥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돌아가더라. 미얀마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엄청난 트라우마와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영화에서도 그런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관객이 감정을 이입했던 인물이 사라지는 상황으로 관객에게도 강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전쟁이나 쿠데타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주목하게 만들고 싶었다.

- 로힝야족의 언어로 로힝야족이 직접 출연하는 영화를 만드는 건 큰 도전이었을 텐데, 로힝야족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았나.

이 영화로 수상을 할 때에도, 주인공 아이들은 난민이라 출국할 수 없어서 나 혼자 가야했다. 나중에 트로피를 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마을에서 상영회를 열어 다 같이 모여 봤다. 상영회에서는 로힝야족 사람들이 자기나 친구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박수 치며 좋아했다. 사실 이 영화에는 웃긴 장면이 전혀 없는데도 다들 웃으면서 봤고, 자기가 나오면 사진을 찍었다. 극장에서 촬영은 안 된다고 했는데도 다들 사진을 찍더라.(웃음) 그래도 이 영화에 출연하고 참여했다는 것이 그들에게 그런 기쁨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우리 주연 배우들은 정말 천재적인 연기자들이다. 로힝야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해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아이들이 계속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내게는 너무나 아픈 지점이다.

- 최근 난민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정서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다룬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영화제를 다니면서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유럽, 중동, 아시아 관계자들도 저마다 자기 나라에서 난민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 흐름 속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제천국제음악영화제처럼 이런 소재의 영화를 초청하는 것도 프로그래머의 의지가 아니겠나. 전 세계적으로 위험한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맞서려는 연대의 의지 역시 느껴진다. 국경을 넘어 이렇게 서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이런 작품들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