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밑자락에 가까워지자 멀리서부터 냄새가 달려나왔다. 탄내. 비 온 뒤라 잿더미 깊숙이 숨어 있던 매캐한 냄새가 흙 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모양이었다. 서울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제대로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의성에 닿은 건 점심이 가까워서였다. 휴게소에서 라면 한 그릇으로 때운 속이 다시 허해져 있었다. 의성에 들어서자 멀리서부터 능선이 죄다 앙상하고 검었다. 한창 녹음으로 푸르러야 할 땐데. 불에 그을린 채 서 있는 소나무들이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작은 삼각대를 들고 검은 숲속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레코딩 버튼을 누를 것이 없었다. 영상은 1초에 24장의 사진을 찍는 일인데, 여기서는 한 시간을 들여다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동영상인지 정사진인지 모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풍경을 찍는 일이 이번 작업이었다.
경북 의성의 고운사. 신라 때 세워진 천년 고찰이다. 2025년 봄, 큰 산불이 이 절의 사찰림을 삼켰다. 수백년 자란 소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재가 됐고, 보물로 지정된 전각들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사찰림의 97퍼센트가 탔다고 했다. 그 와중에 대웅전만큼은 지켜냈다니, 불이 지나던 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웅전을 지키려 애를 태웠을까. 고운사는 불탄 숲을 인공으로 다시 조림하지 않기로 했다. 어린 나무를 줄 맞춰 심는 대신, 자연이 스스로 숲을 복원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결정이라 했다. 나는 그 결정이 만들어낼 자연의 시간을 카메라로 따라가보기로 했다. 이 작업은 ‘그린피스’가 건넨 제안에서 비롯됐다. 처음엔 한번으로 끝날 일이었는데, 욕심이 생겨 내가 판을 키웠다. 10년 넘게 걸리는 무모한 계획에 선뜻 고개를 끄덕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불길이 지나간 능선을 걸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검은 재가 섞인 흙이 부스러지며 등산화 속으로 들어왔고 그을린 나무둥치에 스치는 곳마다 숯이 묻어났다. 옷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았지만 잘 지워지지 않았다. 땅에선 검은 흙을 뚫고 맹아가 솟고 있었다. 누가 심은 것이 아닌, 그저 자연이 한 일. 스스로 회복을 시작한 숲은 조용하지만 강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나는 한참을 쪼그려 앉아 그 작은 것들을 들여다봤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롱텀 타임랩스 카메라를 숲에 심는 일이다. 내가 그 자리에 매번 올 수는 없으니, 카메라가 나 대신 숲을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자연의 소생을 사람의 눈이 아니라 기계의 인내로 길게 관찰하는 일. 나는 조바심을 꾹꾹 누르며 마땅한 지점을 골라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살아남은 나무가 있으면 카메라를 매달기에 좋았다. 밑동이 불탄 죽은 나무라도 좋았다. 결국 비바람에 삭아서 쓰러질 때 카메라도 함께 쓰러질 것이고, 그 과정이 고스란히 촬영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대부분의 카메라를 5분에 한장 촬영하게 설정했다. 일출 즈음부터 일몰 때까지 부지런히 촬영하면 하루가 10초 남짓한 시간으로 담긴다. 설정을 마치자 녹화 시작을 알리는 표시등이 한번 켜졌다 숨을 죽였다. 이제 이 카메라는 내가 서울로 돌아가 다른 현장을 떠도는 동안에도, 잠든 동안에도, 홀로 깨어 숲을 찍는다. 지금 잡아둔 이 프레임 안으로 몇달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들 것이었다. 너무 오래지 않아 메모리와 배터리를 바꿔주러 다시 와야겠지. 설치를 마치고 한참을 가만히 서서 먼 산의 능선을 바라봤다.
나는 지금 이 검은 숲의 무엇을 찍으러 온 걸까. 카메라를 든 사람은 재난 앞에서도 먼저 프레임을 찾는다.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검은 능선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어떤 자리에 서야 화면이 더 또렷해지는지 살핀다. 그런 직업적 습관이 이곳에서는 조금 민망했다. 좋은 그림을 찾고 싶다는 마음과, 재난의 풍경을 스펙터클로 만들어도 되는가 하는 마음이 자꾸 부딪쳤다. 문득 내가 이 숲과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은 잊는 중이었다. 탔다는 사실을 지워가며 새싹을 틔우고, 검게 죽은 그루터기에서 새 맹아를 밀어 올리고, 제 집이 있던 자리로 돌아온 새의 울음을 아무렇지 않게 품으면서.
불교에 무상(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뜻. 한때의 모습도, 한때의 상처도, 한때의 아름다움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는 말이다. 숲에게 무상은 가르침이 아니라 그저 자연이었다. 잿더미가 거름이 되고, 빈자리가 새 숲을 불러들이고, 그렇게 어제와 다른 내일로 묵묵히 건너가는 일. 그런데 셔터를 누른다는 건 흘러가는 시간의 한 토막을 굳이 멈춰 세워 붙드는 일이지 않던가. 숲이 잊으려는 것들을, 나는 한컷 한컷 기억의 칸에 채워넣고 있었다.
산불이 나고 일년이 지난 뒤, 숲에는 수달과 담비와 삵이 돌아왔다고 한다. 멸종위기종까지 포함해 포유류 17종, 새 28종. 사람이 손을 떼자 그만큼의 생명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생각보다 빠른 복귀였다. 묘목을 심지 않음으로써 숲을 키우고, 손대지 않음으로써 돌보는 일. 고운사가 한 일은 결국 그 기다림이었다. 타임랩스 카메라를 세워두는 내 작업도 기다림에 기대고 있었다. 다만 그 기다림은 고운사의 기다림과 조금 달랐다. 절은 숲이 스스로 달라지도록 물러섰고, 나는 그 달라지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기다림이면서도 개입이었고, 물러서는 척하면서도 끝내 한 자리를 붙들어두는 일이었다.
숲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나무에 매달린 작은 카메라가 어둑해지는 능선 속에서 외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메모리에는 내가 일일이 보지 못하는 계절들이 천천히 쌓이겠지. 잿빛이 어떻게 초록으로 다시 뒤덮이는지, 밑동이 불탄 나무가 언제 완전히 쓰러지는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겠지. 숲은 비우고 나는 채운다. 이 어긋남을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채, 나는 산을 내려왔다. 등 뒤에는 불탄 숲과, 어둠에 물드는 숲을 가만히 응시하는 카메라가 남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