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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두려움 앞에서 서로가 연결되길 꿈꾼다,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감독

직장을 잃은 주인공 정미는 돈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해 ‘0원 살이’ 도전을 시작한다. 잘 곳과 먹을 것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정은 급진적 실천가들과 함께하는 대안적 삶의 경험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박정미 감독은 이 도전의 증거를 남기기 위해 무작정 카메라를 들었다. 그렇게 2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촬영한 영상으로 첫 다큐멘터리 <담요를 입은 사람>을 완성했다. 여정 당시의 시점에서 10여년이 지났지만 그 생생한 증거들은 오늘날에 필요한 연결의 문제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적은 소비를 중심으로 한 그의 실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제야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한 것 같다는 그에게 첫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소회를 물었다.

- ‘0원 살이’ 도전에서 시작한 여정을 2년간 카메라로 담았다. 어떤 결심으로 카메라를 들었는지 궁금하다.

영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돈이 없으면 정말 죽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처음 떠올렸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게 내 수명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져 분노와 반항심이 올라왔다. 이 시스템을 상대로 돈 없이 살아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겠다는 결의가 생겼다. 그러다 문득 증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말과 글로만 설명하면 조작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로 여정의 모든 순간을 담고자 했다.

- 액션캠을 몸에 부착하는 촬영 방식은 어떠했나. 이 때문에 영화에 주인공의 얼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농장 일을 해야 하니 두손이 자유로워야 했다. 나를 찍지 않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처음에는 셀프 카메라로 찍기도 했지만 점점 줄어들었다. 뭘 먹고 어디서 자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니까 나를 신경 쓰면서 찍을 겨를이 없었다. 촬영 당시 고프로에는 뷰파인더가 없어서 모니터링을 할 수도 없었는데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던 것 같다. 화면이 삐뚤어져 있든 내가 나오든 안 나오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몇몇 대화 장면을 보면 대화 상대를 제대로 프레이밍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촬영자의 자세가 아니라 그저 편히 대화하는 자세로 그 상황에 임했기 때문이다.

- 촬영보다 삶과 경험의 시간을 우선했다는 태도가 결과적으로 영화의 형식이 된 것 같다.

여정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촬영은 부차적인 일이었다. 내가 잘 나오는 것에 집중하면 이 삶 자체를 충만하게 살아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 영상의 여러 포맷 중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멘토링 과정에서 러프컷을 보여줬을 때 “이게 어떻게 영화가 되겠느냐, 그냥 여행 유튜브로 올려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유튜브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올라가는 반면, 영화는 두 시간가량의 한 호흡으로 상영된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서는 영화가 지닌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를 전주에서 처음 상영할 때 공동 관람의 환경이 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다.

-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군복무 경험은 반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부터 ‘두려움’이라는 영화의 화두가 선명해진다.

처음에는 내 과거를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르고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만 생각했다. 이후 멘토링에서 만난 멘토 분이 내가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계속 내 과거를 묻길래 “저 사실 군인이었거든요”라고 답하니 그제야 이해가 간다고 했다. 아무것에도 구속받고 싶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이 누구보다 통제된 곳에서 생활했다는 모순이 나라는 인물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처음에는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편집을 진행하며 뒤늦게 중요성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내 여정의 큰 화두였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나를 움직여온 원동력마저 두려움이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두려움이 싫어서 군대에 간 것도 맞고, 막상 군대에 가니까 계급도 두렵고 전쟁도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군복무의 일화를 영화에 포함하게 되면서 내 삶이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쳐온 과정이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었다.

- 영화에 앞서 <0원으로 사는 삶>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을 쓰던 시간은 당시를 돌아보는 데 어떤 기회가 되었나.

여행 중에는 생존하고 기록하는 일만으로도 벅찼기에 구체적인 구상을 하기 어려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영상 푸티지가 너무 많아 일단 글부터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뒤의 관점에서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쓰고자 했다. 만약 10년 전 여행을 마친 시점에서 책이나 영화가 바로 나왔다면 내 메시지를 잘 전달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경험이나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의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 여정을 마친 뒤 어떤 방식으로 살아오고 있나.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살았다. 한달 생활비가 10만원 정도였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돈 없이 사는 건 어렵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에게 늘 받기만 하더라. 나도 베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필요한 만큼 일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았을 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지는 않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 어떤 작업을 계획 중인지.

원래 영화는 다시 하지 않으려고 했다. 꾸준히 영화를 하던 사람도 아니었고,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갇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기록하고 싶은 것이 생겨 조금씩 카메라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 돈 없이 사는 방법을 탐구해왔다면, 나에게 새로운 화두는 돈 없이 죽어가는 방법이다.

- <담요를 입은 사람>이 지금의 관객에게 어떤 질문으로 남길 바라나.

기후 위기가 코앞의 문제로 다가오는 오늘날이다. <담요를 입은 사람>이 전통적인 환경영화는 아니지만, 포괄적인 연결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간의 연결 말이다. 죽음과 멸종의 두려움 앞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