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날아온 소식에 잠시 8년 전으로 다녀왔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의 베니스국제영화제 기자회견장은 팬 사인회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질문보다 고백에 가까운 얼굴로 마이크 앞에 줄을 서는 외신기자들을 보다가 문득 2018년 칸에서 <버닝>을 취재하던 밤이 떠올랐다. 그날 상영이 끝난 극장 앞, 방금 본 것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흥분이 밤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영화제에선 영화와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이 낮아진다. 그래서였을까. 귀국 후 마주한 국내의 갈린 반응 앞에서 적잖이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제에서 만장일치처럼 보였던 사랑이 대중 앞에선 호불호의 치열한 전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같은 영화는 어떻게 다르게 도착하는가. 장소가, 곁에 앉은 사람들이, 주변의 공기가 반응을 만드는 법이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한국에는 영화제가 왜 이렇게 많은가. 엄밀히 말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국제영화제의 규모와 규격을 갖춘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질문의 의도는 안다. 이렇게 많은 영화제가 정말 필요한가. 관객이 많지 않은 작은 영화제를 굳이 유지할 이유가 있는가. 익숙한 질문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독특한 작가영화는 왜 필요한가. 가장 간단한 답은 한명의 관객에게 가닿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낭만만으로 영화가 지속되지 않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산업의 언어로 바꿔 말해도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낯선 시도와 실패가 없는 산업은 오래갈 수 없다. 누군가는 아무도 가지 않은 방향으로 먼저 걸어가야 한다. 막다른 길을 만나고 엉뚱한 샛길도 발견하며 길을 잃는 동안 지도는 조금씩 넓어진다. 그중 일부는 언젠가 중심으로 흘러들어 새로운 동력이 된다. 영화제도 정확히 같은 생태계다. 정점 몇개로 이루어진 피라미드가 아니라 크고 작은 물줄기가 얽혀 서로를 먹여살리는 습지가 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축제의 쓸모는 쓸모를 묻지 않는 데 있다. 무엇에든 효용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시간표에서 잠시 빠져나온 공백의 순간들. 무주의 잔디밭에 누워 올려다본 여름밤과 정동진의 바닷바람 속 한밤의 상영처럼 두번 반복되지 않을 1회성의 체험들. 장벽을 낮추고 기꺼이 팬이 되기로 한 축제의 시간. 그 밤들에 대해 정작 내가 기억하는 건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라 곁의 웃음소리와 상영이 끝나고 걷던 길의 온도였다. 작은 축제일수록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서 관객은 손님이 아니라 잠시 그 마을의 주민이 될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자리에 앉아 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어쩌면 그 경험 하나를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나서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제는 영화 여행객들을 위한 지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길이 낯설고 생소하고 사소할수록 지도는 세밀해진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흐름의 다발이 있어야 한다. 강은 지류가 많을수록 멀리 가는 법이니. 이번호에는 그 경로들을 하나씩 담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은 늘 하던 대로 성실하게 골랐고, 제천에서는 올해 온라인 데일리를 함께 만들며 축제의 장면들을 지면으로 옮겼다. 스웨덴영화제에서는 고전 걸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스웨덴 관객들이 보고 있는 자국 영화의 현재를 확인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술과 스태프에게 초점을 맞춘 대전특수영상영화제에서는 AI 시대에 필요한 고민의 현재를 짚을 예정이다. 따로 준비한 꼭지들인데 하다 보니 비슷한 시기, 네 갈래의 길이 우연처럼 필연인 듯 한 지면에 모였다. 지도란 원래 그렇게 그려지는 법이다. 이 가을, 당신의 좌석이 조금 낯선 자리이기를 바란다. 더 가깝게 말을 거는 영화가 그곳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