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앞에 세워진 작은 셔틀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다행히도 제 몸 하나 앉을 만한 자리가 남아 있네요. 정각마다 숙소에서 제천 시내로 출발하는 영화제 차량입니다. 이 차에 앉아 있는 이들 중에는 관객들의 편의를 살피는 사람도 있고, 기사를 쓰거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은 영화를 만들었거나 출연했거나 영화음악을 만든 사람일 겁니다. 영화인의 밤에 갔다가 내향인 이슈로 영화인의 밥만 먹고 나왔지만 이 버스 안에 실려가고 있으니 새삼 나, 영화 하는 사람인지도…? 같은 우쭐한 마음이 듭니다. 낮이면 시내로 나가 영화제를 즐기고, 밤에는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잡니다. 그 사이에 서울에서 보내던 일상은 잠깐 멈춰 있고요.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고서야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들 때가 있는데, 야속하지요. 가까이에서 신경 써주던 사람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가끔 만나는 새로운 사람에게는 고마움을 느끼는 꼴 같아서요. 졸리고 지친 영화인들을 가득 태운 까만 소형 버스가 제천의 산골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어제 본 영화 생각에 잠깁니다.
영화 <유하>는 무성영화라 대사가 없고 중요한 이야기는 자막으로 합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뭘 하려는지가 군더더기 없이 보입니다. 관객들은 단순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상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난한 절름발이 농부 유하와 그의 부인 마르야. 그들은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밭에서 양배추를 가꾸어 시장에 팔고, 양들은 건초를 먹이며 키웁니다. 집에는 쓰다듬기 쉬운 검고 온순한 개도 한 마리 있어요. 어느 날, 이 농촌을 지나가던 한 남자의 스포츠카가 고장 납니다. 도시에서 온 신사처럼 보이는 셰메이카. 그는 유하의 집에 하루 머물며 차 수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셰메이카는 마르야를 유혹합니다. 저런 남자에게 너는 과분해. 너의 젊음이 시들기 전에 나와 함께 도시로 가자.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게. 마르야는 갈등하다 결국 자유를 찾아 그와 함께 떠납니다. 하지만 셰메이카는 그런 수법으로 순진한 여자들을 꾀어 매춘굴에 팔아넘기는 고약한 아저씨죠. 마르야는 충격을 받고 후회하지만 셰메이카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 웃어도 될까요? 험상궂은 얼굴의 배우들을 보면 웃음이 터져나오려다가도 약간 눈치가 보이네요. 마르야가 떠난 봄으로부터 시간은 흐르고 시골집에 혼자 남겨진 유하는 허망한 표정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가을, 이라는 자막이 표시된 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유하의 도끼입니다. 회전하는 숫돌 위로는 물이 흐르고 그는 비장하게 도끼날을 가는데요, 그것은 날렵한 살인 도구 같은 게 아니라 장작을 패던 도구를 막 가져온 듯 둔탁한 산도끼처럼 보입니다. 그걸로 뭘 어떻게 하겠다고, 진지한 그의 모습이 어딘가 가여워서 웃음이 납니다. 어떻게든 도끼 손질을 끝낸 유하는 배낭에 도끼를 넣습니다. 가방 안에 잘 들어가지 않아 길쭉한 도끼 손잡이가 튀어나와버렸습니다. 그 상태로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았는지 유하는 무사히 시내버스를 타고 셰메이카의 집에 도착합니다. 이제부터 두 남자는 단판 승부를 시작합니다. 긴장감이 고조되던 순간, 셰메이카가 총으로 유하를 쏩니다. 총탄에 맞은 유하는 비틀거리면서도 셰메이카에게 도끼를 휘두릅니다. 느릿하고 절뚝거리는 몸짓이지만 분명한 살의가 느껴집니다. 당황한 셰메이카는 한발 더 쏩니다. 가슴팍에 두개의 구멍이 뚫렸지만 유하는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구멍 난 댐에 손가락을 넣고 일시적으로 재앙을 막은 소년처럼 그는 복수를 마치기 전까지 자신의 죽음을 참기로 한 겁니다. 그렇게 셰메이카는 유하에게 살해되고, 마르야는 아이와 함께 떠나고, 유하는 흘러 흘러 어떤 쓰레기장에 도착합니다. 그곳이 자신이 죽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라는 듯이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정이 되자 그는 풀썩 넘어져 쓰레기 중 하나가 되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에는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있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검은 개가 뛰쳐나오는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개는 줄곧 유하의 보살핌을 받던 존재였습니다. 유하가 도끼를 어깨 한쪽에 메고 떠나던 그날, 다른 한손으로는 개의 목줄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씨 좋은 이웃 부인에게 개를 맡기고, 복수를 위해 버스에 오르지요. 그리고 바로 다음 컷, 전속력으로 버스 뒤를 따라가는 개의 앞모습이 고조될 대로 고조된 음악과 함께 화면 가득 튀어오릅니다. 말도 못하는 개가 살인하러 가는 유하에게 할 수 있는 건 그를 향해 있는 힘껏 내달리는 일뿐이겠지요. 주인님, 가지 마세요. 가면 그놈도 죽고 주인님도 죽어요…. 3초 남짓한 그 장면에서 개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모르게 으핫! 하고 웃음소리를 내고는 이내 민망해졌습니다.
어쩌면 나를 따라오는 것은 죽음의 그림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녀가 떠난 이후 복수의 화신이 매일 유하를 맹렬히 쫓아와서, 시내버스를 타지 않으면 거기에 잡아먹힐 것 같았기에 유하는 결국 셰메이카를 죽이러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지도요. 아니면 삶이 나에게, 혹시 나를 데려가는 걸 잊은 건 아니냐며 쫓아오는 걸까요? 그런 유하를 굳이 쓰레기장까지 걸어가게 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 아키가 웃기고 참 별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굽이치는 산 길을 달리는 영화제 셔틀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대며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지금 나를 쫓아오는 검은 개는 무엇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