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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현실보다 가능성, 김소희 평론가의 <더 드라마>

<더 드라마>

결혼은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영화가 즐겨 묘사해온 소재다. 결혼을 둘러싼 소동은 결혼식으로 방점을 찍으며 마무리된다. 결혼식은 관계의 끝이자, 영화의 끝이다. 결혼은 공주 캐릭터가 주도하는 디즈니 고전영화가 마침내 도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캐릭터는 역경을 딛고 혼인하며 해피 엔딩에 안착한다. 현실적인 방향을 고민하는 실사영화는 결혼의 주변부에 주인공을 위치시키며 돌파구를 찾는다. P.J. 호건은 <뮤리엘의 웨딩>(1995)에서 결혼의 환상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데 이어,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1997)에서는 주인공이 되기를 욕망하다가 결국에는 특별한 하객의 자리에 만족하는 인물을 다룬다. 한편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환호하는 결혼식은 군중이 모인 장소로서의 극장을 내포한다. <맘마미아!>(2008)는 결혼과 뮤지컬 장르의 이상적인 합을 제시하며, 무대에 이어 영화로의 성공적인 침투력을 과시한다.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혼인한 커플이 살벌한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상처내는 광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2019)는 헤어진 뒤에도 이어지는 관계로 마무리하며 사실상 이야기의 종료를 선언한다.

<더 드라마>는 젠데이아로버트 패틴슨의 신선한 조합과 예고편 속 스튜디오 촬영 장면이 주는 기묘한 느낌이 아니었다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 있다. <더 드라마>는 결혼식이 임박한 커플이 결혼을 준비하는 며칠에 한정한 이야기다. 결혼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해야 갑자기 누군가가 사망하는 비극이 아니라면 유혹과 외도 등의 전형적인 설정만이 가능한 한계 속에서 영화는 대중 서사의 볼륨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로 선회한다. 그 이야기는 결혼과 직접 관련되지 않으나 결혼이 진행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찰리(로버트 패틴슨)와 엠마(젠데이아) 커플은 들러리를 맡기로 한 마이크(마무두 아티), 레이철(얼래나 하이엄) 커플과의 술자리에서 지금까지 저지른 최악의 행동을 돌아가며 고백한다. 저녁 무렵 길 건너편에서 결혼식에 섭외된 DJ가 헤로인을 흡입하는 장면을 목격한 일이 계기가 됐다. 개에게 물린 여자 친구 뒤로 숨은 소심한 행동부터 이웃집 소년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괴롭혔던 잘못이 공개된 뒤, 엠마는 15살 무렵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총기 난사를 계획했었다는 뜻밖의 고백을 한다. 다른 이들의 고백과 달리 엠마의 고백만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실패한 사건에 대한 고백이었으나 실현된 행위보다 더 큰 파문을 불러온다.

<드림 시나리오>

행위와 비행위 사이의 미묘한 관계는 크리스토페르 보르글리 감독의 전작 <드림 시나리오>(2023)에서도 모티프가 된 바 있다. 교수 폴(니컬러스 케이지)은 동료에게 자신의 연구 아이디어를 도둑맞는데, 아이디어가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공식적인 발표 채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증명될 수 없다. 반대로 폴은 불특정 다수의 꿈에 폭력적인 모습으로 출몰하면서 이미지만으로 실제 삶이 위협받는 지경에 처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비행위로부터 두번 배신당한다. <드림 시나리오>가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 겹쳐보게 한다면, 결혼 준비와 맞물린 <더 드라마>의 이야기는 한층 현실적인 풀이처럼 보인다. 행위와 비행위 사이의 굴레는 결혼의 속성과 일견 부합한다. 결혼은 외도와 부정, 거짓말을 비롯해 하면 안되는 금기 행위가 내포된 제도다. 엠마와 총기 사이의 연관성을 떨쳐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찰리의 모습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되려 그에 관한 집착을 불러오는 부정의 굴레를 보여준다. 주제곡 중 커플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사용하는 노래의 제목은 ‘인사이드 아웃’이다. 무언가의 전환과 역전을 표시하는 노래의 제목은 실현되지 않음이 실현됨을 초과하는 상황과 들어맞는다.

행위와 비행위는 재현을 둘러싼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엠마의 과거는 독립적인 서사로 재현되는 대신, 기억처럼 현재의 흐름 속에 이식된다. 총을 들고 개인 방송에 접속한 열다섯살의 엠마가 지닌 거친 이미지와 아버지의 총기로 숲에서 총 쏘기 연습을 하다 청각에 손상을 입는 사고 현장, 그리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 등이 단편적으로 제시된다. 섬광처럼 노출되는 장면은 기억과 상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며 커플 중 누구에게도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이미지로 남는다. 엠마와 찰리가 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 예행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내는 빛과 소음은 기억의 속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과거 이미지는 엠마의 폭력성, 특히 엠마와 총기에 강박관념을 지니게 된 찰리의 감정 상태에 공감하도록 돕는다.

플래시백은 완결된 서사보다 짧은 콘텐츠에 몰입이 필요한 온라인 영상문화를 상기시키며, 재현하지 않으면서 재현하는 돌파구로서의 인서트를 보여준다. 이는 반성 없이 소비되는 영상문화 반대편에서 옳은 재현을 고민하는 경향에 대응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가령<더 드라마> 에서 문제시되는 총기 난사의 욕망이 만약 재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비판적인 의도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묘사한다고 해도 재난에 대한 착취로 비칠 수 있다. 게다가 재난의 새로운 비전과 기이한 매혹은 이미 거스 밴 샌트가 <엘리펀트>(2003)에서 몽환적으로 각인한 바 있으며, 초점 이동은 린 램지의 <케빈에 대하여>(2011)에서 가해자의 부모라는 고립된 연루자에게 시선을 두는 것으로 시도되었다. 총기 난사를 계획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다른 무엇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야기다. 재현할 여지가 남지 않은 듯 보이는 이야기를 구제하기 위한 <더 드라마>의 방식은,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로 사건을 봉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현의 제약을 벗어나, 서사로서의 이야기에서 오늘의 문화 코드에 맞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축출한다.

<더 드라마>

잠재된 총기 난사의 이야기는 피투성이로 정지된 몸이 즐비한 결혼식 이미지로 변형되어 재현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이 가득 찬 실제 결혼식의 공포는 꿈 이미지에 가깝게 채색된 재난 이미지보다 훨씬 생생하다. 찰리의 불안은 회사 동료 마샤와의 외도 직전 멈춘 껄끄러운 관계로 인해 배가된다. 결혼식 직전 긴급하게 교체된 DJ가 세팅 도중에 낸, 총이 발사되는 듯한 소음을 신호로 삼아 공공연한 적대의 살얼음판은 피와 멍으로 엉망이 된 찰리의 얼굴로 정점을 찍으며 마무리된다. 찰리의 얼굴은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 일으킨 환영의 소음을 멈추기 위해 스스로 저지른 애매한 부정행위가 훑고 지나간 표면이다. 엉망이 된 몰골로 어두운 밤 홀로 집에 돌아온 찰리가 엠마의 부재를 이기려 함께 듣던 음악을 재생하고 몸을 흔들다가 허공을 껴안고 잠시 멍해질 때, 찰리이면서 로버트 패틴슨이기도 한 그 얼굴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드라마다. 완벽함만이 아니라 지질한 인물을 연기할 때조차 어느 정도는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효용이 있던 패틴슨이 마침내 찾은 현실적인 얼굴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이때 흘러나오는 노래는 위기 때마다 반복 재생하는 커플의 은밀한 신호와도 같은 음악이다.

영화에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서론이 없다. 첫 만남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전형적이고도 기묘하며 무엇보다 관계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찰리가 통유리로 된 카페에 진입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찰리가 주문 후 자리 잡은 곳에서는 책을 읽는 엠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결혼식 연설문 속에서 이것은 그들의 첫 만남이라고 언급되지만, 그가 원래 엠마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될 정도로 그가 무엇에 반한 것인지 모호하다. 사실 카페로 들어설 때부터 찰리의 모습은 어딘가 경직되어 있다. 그는 마치 ‘레디, 액션!’ 신호에 맞춰 엠마에게 고백하는 미션이라도 받은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그마저도 엠마가 한쪽 귀는 들리지 않고, 다른 쪽 귀로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는 설정 속에서 찰리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엠마는 엔지를 낸 배우를 다독이듯 찰리를 향해 “다시 갈까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작은 상황극을 출발시키는 엠마의 이 말은 두 사람이 관계에 있어 크고 작은 중단과 위기를 겪을 때마다 주문처럼 반복된다. 거짓의 형식으로서 결혼에 무거운 진실을 집어넣고 소화하는 방식은 자발적인 거짓의 형식 하나를 추가로 도입하는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기꺼이 다시 거짓을 시작하는 담담한 몸짓이 비로소 관계의 시작을 알린다. 새삼 무겁고도 거대한 출발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