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적들을 위하여>의 GV를 진행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이 작품을 보고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극적인 연출을 덧붙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한한 페데리코 루이스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감독은 연출 상황을 먼저 구상하되,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실제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복싱 소년이 패배한 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이때 감독은 소년에게 “눈물을 흘려달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그저 혼란스러운 소년에게 “울어도 괜찮다”라고 솔직하게 감정을 쏟아낼 상황을 마련했을 뿐이다. 그 눈물의 정체가 분함인지 두려움인지 해방감인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건 저기 화면 너머 진실한 무언가가 터져 나온다는 실감이다.
원하는 감정을 요구하는 것과 어떤 감정이 도착할 자리를 열어두는 건 전혀 다른 태도다. 페데리코 루이스 감독은 이를 ‘연결’이라고 표현했다. 카메라는 ‘그때 거기’에 있었던 무언가를 ‘지금 여기’로 옮겨오는 장치다. 그 가능성을 인지했을 때, 카메라는 지나간 시간과 닿을 수 없는 장소를 시공간 너머의 누군가에게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극과 다큐를 구분하고 연출과 실제를 나누는 건 내 좁은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누고 분류하고 설명하려다 보니 어느새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마침 멀리서 반가운 소식이 도착했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오랜 시간 자신의 질문을 밀고 온 작가의 새로운 영화가 다시 세계의 관객과 만났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갑다. 수상 결과만큼이나 이창동 감독이 전한 말들이 오래 남는다. 영화는 결국 서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어주는 작업이 아닐까. 한 사람의 구체적인 고통이 스크린을 건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에게 도착한다.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을 잠시 바라보게 되고, 가보지 않은 시간과 장소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야말로 카메라가 오랫동안 지켜온 자리이다. 페데리코 루이스 감독이 말한 ‘연결’과 이창동의 영화 세계가 문득 내 안에서 겹친다. 주제도, 방식도, 세대도 다른 두 감독이 카메라를 매개로 우리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올 추석에는 간만에 극장가가 미어터진다. 한주 앞선 <인턴>을 시작으로 추석에는 <타짜: 벨제붑의 노래>와 <암살자(들)> <가능한 사랑>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부활남: 더 레드>도 개봉한다. 시리즈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지우 감독의 <스캔들>은 놓칠 수 없다. 인터뷰만 진행해도 한권을 넉넉히 채우고 남을 작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 이번 추석 합본호에는 가능한 그들 모두의 목소리를 담아보았다. 인터뷰를 통해 장르도, 형식도, 저마다 향하는 방향도 다르다는 걸 새삼 실감한다. 단지 작품 수가 많다는 걸 넘어, 다양한 경로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올 추석은 그야말로 풍성하다.
영화를 만날 때 우리는 자꾸 먼저 이름표를 확인한다. 극인가 다큐인가. 영화인가 시리즈인가. 극장인가 플랫폼인가. 장르영화인가 작가영화인가. 물론 구분은 필요하다. 길을 찾으려면 지도와 이정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분류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이지 경험을 가두는 경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적들을 위하여>의 소년이 흘린 눈물이 연출과 현실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왔듯, 영화는 언제나 우리가 그어 놓은 선보다 자유롭게 움직인다. 때론 멀리 있는 사람에게 가는 길이 되고,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는 문이 되거나 살아보지 못한 삶을 잠시 경험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호에는 그 입구마다 작은 이름표를 달고 이정표를 세워보았다. 부디 그 길 위에서 여러분과 마주치길 소망하며. 행복하고 영화로운 한가위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