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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나를 탈피하는 희열, <첫세계> 배우 심수빈

<첫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배우 심수빈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촬영 전부터 틈틈이 익히다 영화의 배경인 섬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미술팀 소품을 빌려 연습했다. ‘삐걱거리는 거 아닌가? 부자연스럽지는 않나?’ 모니터 속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 순간이 잦았지만, 어떻게든 바퀴를 굴려냈다. 2025년 여름에 다녀온 <첫세계> 여행은 그런 기억들로 빼곡하다. 이제 그 추억을 관객과 나눌 차례다. <첫세계>는 제5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플랫폼 부문을 시작으로 오는 10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들를 예정이다.

<남매의 여름밤>으로 주목받은 윤단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첫세계>는 소꿉친구였던 소녀와 소년이 할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재회하면서 애타는 마음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심수빈 배우는 17살 진으로 분해 두재(김어진)라는 우주에 온 신경을 빼앗기는 한 시절을 살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자 심수빈 배우의 데뷔작인 <지우러 가는 길>을 찍기도 한참 전이었다.

“오디션 때 받아본 대본에는 진이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이 발췌돼 있었다. 명랑하고 통통 튀는 시골 소녀가 거기 있었다. 진이 너무나 되고 싶어 열심히 했는데, 감독님이 내가 연기를 끝내자마자 ‘귀엽다’고 하시더라. 좋은 뜻인 걸까 혼자 생각에 잠겼다가 캐스팅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에 너무 기뻤다!”

그날 이후로 1년 넘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다른 작품들에 참여하며 크랭크인이 늦어지는 속상함을 잊으려 했다. 그러다 마침내 <첫세계>로의 초대장이 발전된 시나리오와 묶여 도착했을 때,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는 심수빈 배우는 그곳이 “하나의 정답이 있는 현장은 아니었다”고 돌이켰다. 윤단비 감독이 요청한 건 “특정한 표현이 아닌 인물이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어려운 장면이 있으면 분석하고 준비하기를 반복했는데, <첫세계>는 공부한다고 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느끼는 대로 연기해야 했다. 배우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가 그렇게 작업했다. 촬영감독님은 이 섬을 나가면 이런 영화를 영영 못 찍을 것 같다고 하셨다. 지금을 즐기자는 얘기에 공감하면서, 불안을 잊어보려 했다. 진심으로 임하자고 되뇌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진이는 어떤 상태일까? 오직 그 질문에 집중해 답을 구하는 것이 심수빈 배우가 한 일이었다. “두재를 오랜만에 마주했을 때는 마음이 복잡했을 테다. 사정을 알음알음 들어 원망할 수는 없어도, 괜히 서운하고, 또 반갑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처음 만나니까 설레지 않았을까? 두재를 좋아할수록 진은 자기 감정에 몰입했을 것이다.” 그래서 심수빈 배우는 두재에 관한 미스터리를 굳이 파헤치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적힌 대로 이해했고, 감독에게 따로 질문하지 않았다. 그로서도 진이 받아들이는 만큼 두재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첫세계>에는 타인을 향한 관심이 커질수록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역설도 새겨져 있다. 심수빈 배우는 이 여정 전체를 “거울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게 되는 과정”으로 요약했다. “불덩이를 한입에 삼킨 것처럼 어쩔 줄 모르겠는 첫사랑의 감각이 상대를 상처입히기도 하고, 자아도취에 빠지게도 하는데, 그게 끝나고서야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면서 성장한다.” 한껏 달뜬 소녀가 되고자 “진이가 똥강아지 같았으면 한다”는 윤단비 감독의 부탁을 잊지 않으려 했다. “평소 고양이 같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들어왔기에 스스로 최면을 걸어야 했다. 나는 사랑둥이다, 나는 사랑둥이다….”

요즘 그는 조금 다른 다짐을 하고 있다. 영화제를 순회하다 보면 발밑이 붕 뜰 것만 같아 차분해지려고 한다. 글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도움을 준다. “그때그때 느낀 것, 알고 싶은 것을 적으며 나를 알아가려 한다. 멘털이 흔들릴 때, 선택해야 할 때, 나를 알아야 분별력이 생기는 듯하다. 학교에 복학해 들은 시 창작 수업도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시 쓰기는 ‘순간적인 감정의 발현’이라고 했는데, 그게 내 글쓰기 방식과도 통한다.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시집도 읽어보고 있다.”

이로써 이루고 싶은 건 역시 “연기라는 초능력”이다. “<첫세계>에서도 새로운 나를 봤다. 진이 유독 자주 짓는 표정이 있더라. 입을 앙다물고 콧김을 내뿜는 듯한 표정이다. 내게 저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자연스럽게 몰두함으로써 얻은 발견이다. 연기하다 보면 이렇게 내가 나를 탈피하는 희열이 크다.” 그는 <첫세계>와 함께 손현록 감독의 신작 <새>로도 부산국제영화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춘다. 거기서는 교내에서 원인 모를 추락사를 목격한 학생으로 등장한다. 그가 하늘과 바다를 오가며 단련한 초능력을 확인할 날이 머지않았다.

FILMOGRAPHY

영화

2026 <첫세계> <새>

2025 <지우러 가는 길>

드라마

2026 <참교육> <기리고> <은밀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