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혁·전소니, 소프라노 조수미, 방송인 이금희에 이은 네 번째 ‘<씨네21>의 친구들’은 <톡이나 할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 <더 커뮤니티2: 보이지 않는 손>(이하 <더 커뮤니티2>) 등을 연출한 권성민 PD다. 이 기획이 가물가물할 독자를 위해 모처럼 설명하면, ‘<씨네21>의 친구들’은 <씨네21>을 애정하는 이들을 만나 영화를 경유해 그들의 현재를 응시하는 인터뷰다. 권성민 PD는 <씨네21>의 정기 구독자고, 당연히 시네필이다.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를 비롯한 그의 저서와 일련의 연출작을 보면 영화를 알레고리 삼아 우리 사회의 긴급한 이슈를 각성하도록 돕는 고유의 작법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의 신작 <더 커뮤니티2>는 서로 원하는 것과 가진 것이 다른 참가자들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이는 거래 서바이벌이다. 부제 ‘보이지 않는 손’이 드러내듯 13인의 참가자는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재화를 두고 경쟁하고, 거래 불발 시 생사여탈권을 쥐기 위해 전쟁마저 불사한다. 신자유주의가 시장의 자유와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세계화를 이끌었지만 그 이면에 패권주의와 전쟁의 논리를 동시에 굴린, 자본주의의 지난 100년에 대한 강력한 은유다. 그 안에서 인간은 무얼 추구해야 할까. <더 커뮤니티2>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선제시하듯 1화 오프닝에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인용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며 이익을 추구할 때, 보이지 않는 손이 비로소 작동해 공동체 전체가 공생할 수 있다고. 그 균형에 이르는 과정을 <더 커뮤니티2>가 10화에 걸쳐 선보인다. 또 한번 흥미로운 사회실험실을 연 권성민 PD가 <콘클라베> <빅쇼트> <아르마딜로>를 프리즘 삼아 <더 커뮤니티2>의 메시지를 전한다. <더 커뮤니티2>는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 웨이브에서 공개된다.
의심 없는 확신이 낳은 비극 - <콘클라베>
- 개봉 역순으로 이야기를 하자. <콘클라베>를 보고 관객으로서 느낀 인상은.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처럼 영화가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면 일단 좋아하고 본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석류의 빛깔> 또한 난해한 와중에 미장센이 탁월해 쾌감이 일었다. <콘클라베>는 블루레이까지 소장 중인 영화다. 극장에서 처음 관람했는데 컷 하나하나가 다큐멘터리 스틸 같아 좋았다. <콘클라베>와 동시에 경쟁했던 영화는 <두 교황>이다. <더 커뮤니티>가 나왔을 즈음 신념이 다른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쌓는다는 점에서 <두 교황>과 연관짓는 평이 나왔다. 두 작품 중에선 <두 교황>을 조금 더 좋아한다. <콘클라베>는 애정을 마구 쏟기에 조금 비장하다. (웃음) 그리고 <콘클라베>를 처음 봤을 때 서바이벌프로그램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 결론이 날 때까지 특정 집단이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장소에서 이전투구를 벌이고 그 안에서 헤게모니의 유동이 드러난다는 점에서인가.
구조보다는 국면이 닮지 않았나. 삼삼오오 모여 이 방 저 방에서 쑥덕대고 양쪽을 오가며 말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그 속에서 정보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더 커뮤니티2>에서 화이트, 레드, 블루로 참가자들을 그루핑할 땐 숙소의 물리적 환경이 중요했다. 그룹별로 격리된 숙소, 또 숙소 내에 그룹원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응접실, 전체 참가자가 모일 제3의 공간을 모두 갖춘 공간이어야 했다. 이 세 조건을 충족하는 촬영장을 찾기 위해 많은 곳을 답사했다. 이 물리적 환경이 곧 <더 커뮤니티2>의 이야기와 통한다. 애청자들이 그루핑의 기준을 종종 묻는데 가치관 테스트의 결과를 반영한 동시에 집단 안에서 갈등할 수 있는 여지까지 고려했다. 이 안에선 집단간 정치와 집단 내 정치가 동시에 발생하고, 집단끼리 경쟁하면 집단 내 이견이 무의미해진다. 참가자들은 오롯이 개인일 수 없다. 집단화가 이루어졌으므로 모든 확신과 결정이 가속화되고, 집단의 실익을 위해선 공익을 저버리는 행위가 세계관 안에선 합리화되도록 구조를 설계했다.
- <콘클라베>의 시나리오를 쓴 피터 스트로갠 작가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콘클라베 과정 중 바티칸 내부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는 결국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갈등을 축소한 하나의 축도(縮圖)”라고 밝혔다.
<더 커뮤니티2>에선 그룹이란 용어를 쓰지만 참가자들 또한 각자의 그룹이 특정 국가의 대유임을 눈치채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쟁, 동맹, 생존과 죽음 등 대부분의 서바이벌프로그램에서 습관처럼 사용하는 개념이 <더 커뮤니티2> 안에선 현실 정세에 비견하는 무게로 다가온다. 출연진이 이 상황에 말도 못하게 이입 중이란 걸 매번 편집실에서 절감한다. 사건은 허구지만 이들의 감정은 진짜다. 촬영 현장이 몰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더 커뮤니티2>는 시계와 호스트를 없앴다. 왜 서바이벌프로그램을 보면 NPC스러운 딜러가 종종 나오지 않나. 참가자들도 사람인지라 인간 NPC와 시간을 보내면 끝내 정이 들어 감정을 나눈다. 그런 상호작용의 요소를 모조리 제거했다. 방송엔 전해리 성우의 더빙으로 안내 멘트가 나가지만 현장에선 비인간 음성인 TTS(Text to Speech)가 모든 공지를 대체했다.
- 사회현상을 다루는 서바이벌 예능을 만드는 PD로서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이며, 다양성은 교회가 받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라는 로렌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의 명강론은 어떻게 들었나.
내 맘 같더라. (웃음) 나도 크리스천인데, 의심은 크리스트교 교리에서 부덕의 극치다. 그런데도 종교를 포함해 지나친 확신이 세상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드는지를 늘 경계하고 의심하며 산다. 오랫동안 숙고한 주제와 일치하는 강론이라 내 안에도 오래 남았다. <콘클라베>는 나에게 의심 없이 확신으로 돌진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계속해서 경고하는 영화다.
- 추기경의 조합이 성비든 민족 구성이든 매우 불균형하지 않나. 영화도 이를 간파해 아그네스 수녀(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시선과 일갈로 세계에 균열을 내도록 연출했고. 반면 <더 커뮤니티> 시리즈는 참가자의 인구통계학적 비율을 어떤 척도에서 보든 균등하게 구성했다고 느껴진다.
<콘클라베>의 그 시선이 결말부까지 이어져서 좋다. 성비는 중요하다. 가장 눈에 띄는 라벨이라 그렇다. 특히 시즌1은 젠더가 중요한 화두였기 때문에 특정 성별이 첫 라벨링에서 유리하게 활용되면 안된다는 판단이 분명했다. 대개의 서바이벌프로그램은 남성 출연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어떤 모임이든 아무 정보 없이 처음 만날 땐 라벨링만으로 파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많은 서바이벌에서 출연 비율이 높은 남성 참가자가 파벌을 형성해 정치를 시도하고 남은 여성 참가자를 이해관계에 따라 어떻게 편입할지 고민하는 그림이 연출된다. 참가자 구성의 비례 요건은 연령이나 가치관, 정치 성향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보이지 않는 손에 관하여 - <빅쇼트> <아르마딜로>
- <빅쇼트>는 경제와 금융 이론을 다루는 영화라 <더 커뮤니티2>와 가장 연관성이 크다. 왜 정치(시즌1) 다음으로 경제를 택했는지 물으면 영화의 선정 이유까지 답을 들을 수 있겠다.
자연스러운 확장이었다. <더 커뮤니티2>의 제작 논의는 꽤 빨리 나왔는데 당시 내 거취 문제로 개시 시점이 늦어졌다. 그새 시간이 생겨 여러 고민을 했다. 시즌1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지의 베일이었다. 출연진이 서로의 위치나 입장을 전혀 모르는 채 상호작용시키는게 중요한 동인이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하자니 시즌2의 출연진이 시즌1을 예습할 것이 빤해 최초의 기획의도를 적용하기 어려웠다. 컨셉은 전면개정하되 사회과학적 이론을 주요 소재로 하는 <더 커뮤니티>만의 큰 틀은 유지해 연속성을 주려면 무얼 택해야 할까. 정치 다음으로 딸려나오는 건 경제다. 통상 정치와 경제를 한 단어로 묶어 이야기하고 지난 시즌도 경제 내용이 일부 들어가 있으니까. 다만 시즌1은 정치·경제 중 정치에 방점이 찍혔다면, 시즌2는 경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외에도 언어, 종교 등 인문, 사회, 철학에서 다룰 수 있는 여러 소재가 후보에 있었다.
- <빅쇼트>는 경제 원리의 해설이 불가피한 영화다. 그런데 복잡한 개념의 설명이 공식 나열에 그치지 않고 내러티브에 녹아들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재밌는 경제학개론을 만들어냈다. 같은 맥락에서 거시경제학의 원리를 <더 커뮤니티2>의 미시적 세계 안으로 녹여낼 때 무얼 고심했나.
러이프, 크레딧, 보석은 모두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개념이다. 그룹별 생산량이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 필요한 재화보다는 생산 효율을 높이는 재화를 만들어 교환하면 모두가 평형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을 기반해 룰을 짰다. 원체 경제학이 게임이론과 연동되는 점이 많으니 비디오게임의 장치도 다수 빌려왔다. 복잡한 경제학 개념을 게임의 층위로 재구성할 때 무얼 취사선택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더 커뮤니티> 시리즈는 기존 서바이벌과 달리 승자독식 구조를 택하지 않는다. 최후의 생존자 수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시스템을 활용해 모두가 마지막까지 균등하게 가져가는 전략을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이 서바이벌인 이유도 상금(보석)과 생존권(라이프)에 있다. 비교우위의 필수 재화가 상금과 생존권을 결정짓는 두축이고, 서바이벌을 매듭 짓는 요소로 크레딧을 설정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크레딧이 없다면 상금 획득도 생존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적용 방식에 관해선… 내가 대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전부 과외 월급으로 충당했다.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거의 80명을 가르쳤던 것 같다. 개중 공부와 담 쌓은 친구들은 무조건 복잡한 개념을 추상화해 가르쳐야 했다. 그래야 개념이 전무한 이들에게 직관이 생긴다. 그때 쌓은 노하우가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 시청자로서 전쟁의 오남용을 근심하다가도 막상 <더 커뮤니티2> 5화의 전쟁을 볼 땐 손에 땀을 쥐고 감상했다. <빅쇼트>를 볼 때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가 야기한 참극을 알고 있고 영화 또한 월가의 시스템에 역으로 베팅한 아웃사이더들을 승리자로 묘사하지 않음에도 이 영화를 즐기며 감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관객과 시청자를 체제의 공모자로 일부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두 콘텐츠가 닮아 있다.
<부산행>에서 노숙자(최귀화)가 등장하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봤다. 영화 속 군중이 노숙자를 향한 혐오 반응을 내비치면 관객은 자연히 자신을 윤리적 주체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그런데 막상 좀비 떼가 석우(공유)와 딸을 위협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노숙자가 시간을 벌어주길 바라고 그때 윤리를 저버리는 자신을 보며 놀라게 된다. 한창 <더 커뮤니티2>를 기획할 당시 아무리 가상 세계지만 전쟁의 개념을 끌고 들어오는 게 맞는지 오래 회의했다. 현실의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비인도적인 학살이 매일 벌어지고 있으니까. 배틀, 습격, 약탈 등 대체어도 고려했는데 그럴수록 사안의 심각성이 탈각되는 느낌이 들어 현실의 뉘앙스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 <빅쇼트> 속 은행 간부는 사태를 근심하는 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커렐)에게 당신도 제도에 부역하는 위선자라는 취지의 말을 한다. 방송 내에서, 시청자 반응에서 전쟁을 최대한으로 막으려는 화이트팀을 두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그런데 위악보다는 위선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도덕률도 있지 않나. 위기에 내몰린 중에도 위선이라도 지키려는 사람들, 공동의 가치를 찾기 위해 차악의 최선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조명한다는 점이 <더 커뮤니티> 시리즈만의 미덕이다.
이어서 언급할 <아르마딜로>가 드러내듯, 전쟁에 돌입하는 순간 싸우는 이들에게 당연히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마구 돈다. 그 안에 스펙터클이 있다. 군대에서 전술 훈련만 해도 모의 살상이 아무렇지 않아지니까. 서바이벌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들 중엔 화이트팀처럼 본래의 선한 목적을 지키려는 반응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층도 있다. 반응의 다양성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더 커뮤니티> 시리즈는 무조건적 도파민에 도달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수호하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들이라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 이익을 넘어 공익을 추구하려는 태도는 분명 눈여겨 볼 만하다. 그랬던 화이트팀도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적 아비규환에 접어들 거다.
- 전쟁다큐멘터리 <아르마딜로>는 덴마크 군 당국의 전폭적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혹시 이같은 방식으로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아 만들고픈 프로그램이 있나.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르마딜로>가 덴마크 국방부의 지원을 받고 그 안에 이토록 충격적인 장면을 담아내 극장 개봉을 하고 심지어 흥행까지 이뤘다는 점이 놀랍다. 특정 기관의 지원을 받은 프로그램은 그곳의 자체 심의를 통과해야 하지 않나. 단체의 부조리나 비리까지 담을 수는 없는데 <아르마딜로>가 그걸 해냈다. 사실 병폐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의 시청층은 영화나 예능프로그램만큼 다양하기가 어렵다. 영화나 예능은 사안의 저관여자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데 여기엔 장르의 허구성이 한몫을 한다. 허구의 세계를 다루면 이에 따른 담론 역시 허구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다루려는 주제에 관해 큰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토론의 판을 제공하는 게 예능의 목적이자 역할 아닐까. 발화의 장이 열리니 말이다.
- <아르마딜로>가 개봉한 이후 덴마크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사회인민당과 같은 진보 정당은 평화유지군의 교전 수칙 위반 및 전쟁 범죄 의혹을 제기하며 아프가니스탄 파병 철군을 강력히 주장했고, 보수 정당은 영화가 자극적인 편집으로 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하다가 진보 진영의 논리를 들어 파병을 정당화하는 정책을 입안했다. 두 시즌의 <더 커뮤니티> 또한 담론의 스펙트럼을 최대한으로 펼치며 시청자로 하여금 자기가 서 있는 진영의 신념을 투영하도록 돕는데.
그래서 이 예능프로그램이 우선 재미있다는 인식을 주는 게 중요하다. 시즌1의 방영 전 작중 ‘사상검증 테스트’가 페미니즘의 반대 사상으로 이퀄리즘을 명명해 논란이 일었다.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당연히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도 권성민을 찾더라. 안티페미니즘을 말하는 이들은 내 머리 길이만 보고 PD가 여자라고, 심지어 지금보다 머리가 짧던 10여년 전 MBC 해직 당시(권성민 PD는 2014년 MBC의 세월호 참사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후 MBC로부터 정직 및 해고 처분을 받았고, 징계에 대한 정직처분취소 소송과 해고무효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편집자)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하며 순서를 바꿔 이 인간은 탈코르셋운동의 주범이라고까지 했다. (웃음) 다양한 공격을 받았는데 결국 방송이 시작하니 모두가 프로그램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통합을 이루더라. 서바이벌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봐온 시청자들은 <더 커뮤니티>의 문법을 낯설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들 역시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냈다.
- <아르마딜로>는 평화유지군이 어떻게 살상을 주도하고 인명을 경시했는지, <빅쇼트>는 규제가 사라진 시장이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 보여줬다. 제도가 지닐 수밖에 없는 모순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 커뮤니티> 시리즈의 메시지와 공명한다는 인상이다.
물론 사안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판단이 있다. 그 점이 연출자로서 내레이션이 개입되는 구간, 인터뷰 푸티지가 삽입되는 위치 등에서 드러나니 결백하게 객관적인 방송을 만들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방송을 통해 거듭 실험을 하고 싶다. <더 커뮤니티2>의 경우 규범의 강제가 적다. 최소한의 룰, 위기를 만들기 위한 군수업자 캐릭터가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리더들의 협의를 통해 완성된다. 최대한 개입을 피하고 출연진이 오직 상호작용을 시도한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발화가 인구에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커뮤니티2> 5화의 제목이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이다. 존 케인스가 <화폐개혁론>에서 언급한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를 인용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인위적 개입 없이도 시장은 균형을 찾는다고 주장한 자유시장주의자에 반발해, 개입 없이 균형만 기다리다간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나온 말이다. 이 관점이 거시 담론에서 늘 지워지는 것 같다. <더 커뮤니티2> 전체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 손’으로 돌아가자면, 출연진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모두가 재화의 균형을 이룰 수도 있다. 이 경우 탈락자 없이 모두가 상금을 차지하는 결론에 도달 가능하다. 시장의 승리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지. 설령 이 쇼가 시장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되더라도 제작진은 개입 없이 그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사회실험 쇼를 만드는 제작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인정의 분배를 말할 때다
- 골라준 영화 세편 이외에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가 후보에 있었다.
<오디세이>가 다루는 세계가 ‘제우스의 법’이 의미를 잃는 전환기 아닌가. <더 커뮤니티>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을 빌리면 그건 구두 합의에 가까운 것이다. 트로이전쟁이 발생한 이유도 누가 헬레네의 남편이 되더라도 그를 뺏기는 위협을 당할 때 모든 구혼자가 힘을 합쳐 발생할 소요를 막자던 맹세에서 비롯했다. 모두를 강제하는 규범이 아니라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맞추려는 무형의 시스템이 세상을 굴러가게 만든 것이다. 황금률에 의해 서로를 대할 때 파국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긴장을 깬 자가 오디세우스고, 그 고뇌 과정이 <오디세이>에 드러난다고 보았다. 짐작건대 크리스토퍼 놀런 또한 지난 70년간 구축된 세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실정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인권선언과 세계의 하한선을 수호하던 약속이 무력해진 동시대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그 합의를 파괴할 때 견제할 수단이 없는 현실을 비슷하게 근심하지 않았나 싶다. <더 커뮤니티2>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아직 방영 예정인 에피소드를 편집 중인데 무얼 넣고 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계속 <오디세이>를 떠올린다. 반년이 다 되도록 책 한권 못 펴고 줄곧 편집실에만 갇혀 살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딱 다섯편 봤는데 그 안에 <호프>와 <오디세이>가 있었다. <더 커뮤니티2>의 프레임 안에 몰두해 있으니 계속 이 프로그램의 렌즈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더라. 공교롭게 두편 모두 <더 커뮤니티2> 한 회차만큼의 러닝타임을 가졌다. (웃음)
- 세 작품 모두 편집이 돋보이는 영화다. 추기경들의 정치 공방을 정통 에스피오나지물처럼 편집한 <콘클라베>, 관객이 센티멘털해질 여지를 차단하는 <빅쇼트>의 불연속적 편집 그리고 장르 혼용을 시도하는 <아르마딜로> 중 예능 PD 권성민이 추구하는 편집은 어디에 닿아 있나.
<콘클라베>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드라마타이즈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걸 예능에 적용하고픈 욕심이 있다. 다른 PD들과 <더 커뮤니티2>를 나누어 편집하는데, 재능있는 한 PD가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의 편집을 들려줬다. 한 인물의 표정을 길게 보여주고 감정선까지 깊이 파고드는 편집을 좋아하는데 <더 커뮤니티2>는 그걸 원없이 할 수 있어 즐겁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자니 좋았다. 드라마타이즈가 강화된 프로그램은 촬영 원본이 제작진을 도와줘야 한다. 특히 예능은 영화와 달리 카메라가 감춰져 있고 출연진 또한 동선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니까. 그 안에서 드라마타이즈가 가능한 장면을 건지는 노하우가 이제 좀 쌓였다. 이를테면 리더간 협의만큼은 영화적으로 찍히길 바랐다. 마치 협약이 이루어지는 정상회의처럼 화면을 뽑고 싶어 세트를 가설할 때부터 카메라의 앵글과 출연진의 위치를 지정해두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조명을 설치했다. 그렇게 하니 출연진끼리 오디오가 겹치지 않는다. 다들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반응한다. 연극적인 효과가 생기니 예능 제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혹시 대본이 있느냐며 묻는다. 아니다. 환경이 조성되면 참가자들이 대사처럼 느껴지는 대사를 절로 뱉는다.
- 메인 연출 입봉작이었던 <가시나들>에선 교육을, <더 커뮤니티>에선 정치를, <더 커뮤니티2>에선 경제를 주제로 삼았다. 제도로서도 학문으로서도 세 카테고리는 모두 가치라는 희소한 자원을 사회 구성원에게 어떻게 분배할지를 고민한다. 이 세 주제를 오가며 교육, 정치, 경제 분야에 기대하는 바가 변하기도 했나.
<가시나들>은 이미 존재하는 교육부 주관의 성인 문해학교 지원사업을 방송을 통해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가시나들> 방영 이후 많은 노년층 여성이 문해학교를 찾았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고무적이다. 다만 교육은 정치나 사회가 다루는, 나눌수록 제로섬 게임이 되는 유한재와 달리 나눌수록 모두가 수혜를 누리는 몫이 커진다. 그런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이 좋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물적 자원의 분배가 야기한 사건만은 아니지 않나. 지난 20년 사이 세계는 우경화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승세를 탄 진보 담론은 유효기간에 달했다는 신호가 터지며 많은 정치경제학자들이 분배와 인정(認定) 사이에서 논쟁했다. 진보 담론이 유물론적 분배에 갇혀 인정의 분배, 분배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현실이 끊임없이 지적됐다. 지난 시즌에 더해 <더 커뮤니티2>의 후반부가 이를 명징하게 다룬다. 인정의 분배가 불발돼 파멸에 이르는 구간이 계속 등장할 예정이다. <더 커뮤니티> 시리즈는 쇼의 측면에서 중요한 주제를 연성화한다. 커피하우스가 공론장의 효시였던 것처럼 목적 없는 수다를 떨듯 인정의 분배에 관하여 논하는 것이다. 제도와 체제가 물적 토대에 집중하는 동안 문화와 예술을 다루는 이들이 감정에 경도되지 않는 선에서 인정의 분배를 말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