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선율의 포크 음악이 흐르고 콜로라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 의 오프닝 시퀀스는 목가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주인공 힉(제이컵 엘로디)은 반려견 재스퍼와 함께 경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평온한 분위기와 상반되게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전염병으로 세상이 멸망한 이후다. 영화는 피터 헬러의 동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을 각색했다. 소설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집필하여 출간했고, 영화는 그 시기를 통과한 이후에 제작하여 개봉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화 속 세계는 미래지만, 일면 우리의 과거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과거의 감각과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 2기를 맞이한 미국의 현재와 미래까지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을 정치적, 사회적 텍스트로 읽어야 할지는 의문이 들지만, 그렇게 볼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영화의 끝에 종교적 공동체와 함께 사는 것이 현 세태에 대한 감독의 정치적 입장이라고 결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것도 아니며 대재앙 이후를 다룬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봐왔던 여러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의 백미는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힉의 이동 경로에 있다. 그것은 다분히 심리적인 방황의 궤적이기에 이 영화를 정치적, 사회적 텍스트보다는 트라우마를 겪는 한 인간의 심리 드라마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를 표방하지만, 속살은 서부극과 흡사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통해 얻는 감정은 무척이나 익숙하고 예상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전염병으로 인해 폐허가 된 세계에서 고립된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계를 풀고 공동체를 이루는 데서 오는 정겨움과 따뜻함은 이 영화가 지닌 장점이다. 이러한 감정을 만들기 위해 영화는 우리에게 힉의 빈손을 먼저 내민다. 그의 손을 채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힉의 상실감은 계속해서 그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힉의 경로는 아마도 대재앙 이후 자리 잡은 힉의 루틴일 것이다. 개들만 어슬렁거리는 텅 빈 도시에 도착한 힉은 온갖 물품을 챙긴 뒤 바로 떠나지 않고 자신의 옛집으로 향한다. 그곳에 누군가가 있다. 힉이 방문을 열면 임신한 아내가 그를 반긴다. 바로 다음 컷에서 힉은 침대에 앉아 자신의 오른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내는 그가 만든 환상이었다. 이 방은 과거가 그대로 보존된 추억의 장소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힉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과거를 불러들여 방 안을 채우는 것이다. 힉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붙들려 있다. 더불어 현재 사는 곳에서도 심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힉은 덴버 외곽에 있는 격납고에서 뱅리(조시 브롤린)와 함께 지낸다. 비록 둘뿐이지만 이곳은 엄격한 규칙하에 움직이는 공동체다. 이곳은 자국민 중심주의가 떠오르는 곳으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하다. 이곳의 첫 번째 규칙은 침범한 모든 자를 죽이는 것. 아버지의 연배로 보이는 뱅리는 사실상 힉의 아버지 역할로 보인다. 물론 둘은 대등한 관계이지만 말이다. 아버지(뱅리)가 세운 규칙에 동의하며 시작된 공동체는 그 규칙에 염증을 느낀 아들(힉)이 떠나면서 해체된다. 결정적인 사건은 밤에 일어난다. 힉이 덴버의 한 부랑자에게 들었던 약탈자 무리가 격납고를 침입한다. 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재스퍼가 죽고, 상심에 빠진 힉은 그길로 뱅리와 결별하고 그랜드 정션으로 향한다. 힉이 비행 중에 그곳에서 라디오 무전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절망의 끝에서 힉은 알 수 없는 음성에 희망을 건다. 반면에 뱅리는 격납고를 떠나지 않고 사수하려고 한다.
두 사람이 갈라서면서 영화는 힉의 여정으로 선회하지 않고 뱅리가 있는 격납고의 모습도 보여준다. 이러는 이유 중 하나는 격납고가 힉이 다시 돌아올 장소임을 암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곳 모두에서 약탈자들의 침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힉은 비행기 고장으로 불시착한 곳에서 팝스(가이 피어스)와 시마(마거릿 퀄리)를 만난다. 둘은 부녀 관계다. 팝스는 힉을 경계하고 시마는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 힉이 떠나는 조건으로 이들은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힉과 시마는 서로에게 끌린다. 시마 역시 남편을 잃었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울 만도 한데 힉은 머뭇거린다. 떠나지 말라는 시마의 부탁에 힉은 아내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염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했고 힉은 마지못해 인공호흡기를 떼버렸다고 시마에게 고백한다. 따라서 힉의 빈손은 아내의 상실감을 드러냄과 동시에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형상인 것이다. 힉은 자신의 손을 보며 이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힉은 시마를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힉의 죄책감은 팝스와의 대화에서 더 심각한 상태임을 엿볼 수 있다. 힉은 아내와 자주 갔던 산의 절벽에 비행기를 박아버리겠다고 팝스에게 말한다. 힉은 자신의 손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지만 그 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이기에 도망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가 최종적으로 생각한 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그전에 힉은 그랜드 정션으로 가야 한다. 자신의 빈손을 다시 채울 희망의 낙원이 그곳이 있다고 힉은 믿고 있다.
그랜드 정션으로 가는 힉의 여정은 불시착으로 한번 지연됐고, 이번엔 강제된다. 약탈자 무리가 침입하여 사람들의 평화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약탈자는 흡사 인디언처럼 보인다. 그러한 분장을 하고 말을 타고 떼를 지어 공격한다. 한편, 격납고에서도 약탈자 무리가 한밤에 급습하는데 이들은 거의 동물에 가깝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며 덤벼드는 이들은 좀비와 닮았다. 그전까지 뱅리의 극단적인 경계 태세에 대해 윤리적인지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이 약탈자들에 대해선 그 판단을 보류하고 뱅리가 살아남기를 바라게 만든다. 영화는 마치 피할 수 없이 밀려오는 자연재해처럼 약탈자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뱅리는 망루에서 약탈자들과 총격전을 벌이지만, 망루가 무기 창고 위로 쓰러지며 폭발이 일어난다. 뱅리의 생사는 뒤로 미루고 다음 장면에서 힉은 시마와 팝스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약탈자 무리에서 벗어난다. 세 사람은 정처를 완전히 잃은 상황이다. 힉을 따라 그랜드 정션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곳은 일당독재로 운영되는 파시즘적인 곳으로 공항을 점유하고 카니발리즘이 자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무전을 보내면서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그랜드 정션에 대한 묘사 역시 약탈자와 더불어 영화 전체에서 상당히 이질적이다. 좋게 보자면 극단적인 야만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야만의 반대급부인 문명은 메노파 교도들로 구성된 종교적 공동체다. 낙원을 꿈꿨지만, 지옥이었던 그랜드 정션을 떠나 세 사람은 다시 격납고로 돌아온다. 폐허가 된 그곳에서 세 사람은 기적처럼 살아남은 뱅리와 함께 이웃인 종교적 공동체에 합류한다. 그곳엔 전기도 있고, 농사도 가능하고, 아이들이 있다. 미래가 있다는 뜻이다. 모두 살아남아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힉과 시마는 연인으로 발전하며 영화는 끝난다. 표면상 해피 엔딩이지만, 힉이 종교적 공동체에 합류한 후 혼자 비행기를 몰고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것은 힉의 죽음이다. 그의 비행기가 향한 곳은 아내와 자주 갔던 산의 절벽이다. 이후에 하강하여 점프컷으로 힉의 옛집이 등장한다. 그는 방 안에서 자신의 빈손을 보며 아내를 불러낸다. 자살 충동과 환각은 힉이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서늘한 징후다. 힉은 과거와 이별을 고하고 공동체로 과연 돌아온 것일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글을 마무리짓고 싶었다. 당최 이 감독이 만든 영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흔한 할리우드영화처럼 보이는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은 아마도 리들리 스콧의 필모그래피에서 앞으로도 호명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작품에서 선보인 과잉적이고 과시적인 연출에서 한발 물러난 이 영화가 오히려 그의 가장 예외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