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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황스러울 만큼 대담하게, <디거>

영화를 호러, 로맨스 등 장르로 구분하곤 하지만 배우의 이름이 하나의 장르처럼 통용되는 사례는 톰 크루즈가 유일하다. ‘톰 크루즈 영화’ 속에서 캐릭터들은 늘 전속력으로 달리고, 선글라스를 낀 채 오토바이를 멋들어지게 타며, 깎아지른 곳에서 훌쩍 뛰어내린다. 오랜 시간 이 배우는 관객이 기대하는 지점을 흡족하게 보여주기 위해 완벽을 추구해왔다. 언급한 유형의 장면을 볼 때마다 매번 감탄스럽다는 건 놀랍지만, 어느새 극 중 서사보다 배우의 개성이 도드라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매버릭, 이단 헌트, 잭 리처, 로이 밀러, 닉 모튼은 각기 다른 임무를 맡지만 다 비슷하지 않던가.

<디거>는 ‘톰 크루즈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을 완벽히 배반하는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뚱땅거리는 우스꽝스러운 음악이 흐르는 검은 스크린에 별처럼 보이는 작은 빛들이 흩뿌려져 있다. 톰 크루즈를 보러 온 관객에게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비인간 물질부터 보여준다. 가만히 대상에 다가가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다시 펼쳐진다. 별처럼 보이던 빛은 공기 방울, 그것도 불에 잘 타는 메탄가스다. 블랙 스크린은 하늘도 아닌 깊고 어두운 바다였으며, 하늘은 가장 낮은 바다 속으로 뒤바뀐다. 이같은 과격한 낙차는 영화 내내 반복된다. 연이어 뒤집히는 전개에 관객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쯤 톰 크루즈가 텍사스 석유 재벌 ‘디거’ 록웰이 되어 나타난다. 머리가 반쯤은 벗겨진 채 배가 불룩하게 나온 디거는 잠에서 깨어나 죽어가는 반려묘를 향해 애정을 퍼붓기 시작한다.

디거는 반려묘에겐 너그럽지만 다른 모든 이들에겐 차갑고 교만한 인물이다. 그린란드에 거대한 시추 시설을 세워 무리하게 석유를 뽑아내는 자본가이며, 빙하가 점점 깨지고 메탄가스가 흘러나온다는 보고를 받고도 시추를 멈추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이냐리투 감독은 그의 오만함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디거의 시추로 거대한 빙하가 떨어져 나가 유럽 대륙을 향해 돌진하게 만든다. 디거는 컴슨 미국 대통령(존 굿맨) 이하 정부 관료들과 회의를 열지만,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책임을 피하려고만 한다. 탐욕스러운 자들의 소동극이 카오스로 치달을 때쯤 이냐리투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처럼 시점을 바꿔 이야기 속의 이야기, 즉 액자식 구조를 짠다. 당황스러울 만큼 대담하게.

<디거>는 배우와 감독의 조합만으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이냐리투는 아카데미가 사랑한 감독이고, 톰 크루즈는 오랜 경력에도 오스카 운이 없었던 배우다. 이냐리투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만든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그동안 아카데미 무관이었던 디캐프리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겼고, 마이클 키턴과 배우의 삶과 겹쳐 보이는 <버드맨>을 완성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휩쓸었다. 이런 두 영화인이 만났기에 <디거>가 크루즈의 오스카를 위한 프로젝트란 세간의 평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이냐리투 감독은 <매그놀리아> <어 퓨 굿 맨> <트로픽 썬더>에서 크루즈가 땀 흘려 뛰지 않고도 관객을 휘어잡은 순간을 떠올리게 할 장면들을 배치해 그의 카리스마를 충분히 담아낸다. 그 결과 크루즈표 디거는 언급한 작품 속 연기보다 더 나아갔을까. 선뜻 답하기 어렵다. 엄청난 양의 대사로 관객을 몰아붙이나 액자식 구조로 인해 시점이 자주 바뀌어 디거가 하고자 하는 말이 과연 무엇인지 점점 모호해지고 흐려지기 때문이다.

CLOSE-UP

떨어져 나간 빙하가 유럽 대륙에 쓰나미를 일으키면서 디거 록웰은 유엔 회의에 불려나가 긴 증언을 한다. 많은 피해를 야기한 만큼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뉘우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마땅하겠으나, 디거는 오히려 고개를 더 빳빳이 들고 석유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톰 크루즈는 확신에 찬 인물이 교조적으로 연설하는 모습을 스크린 너머로 침방울이 튈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영화 초반에서 리즈 아메드, 잔드라 휠러, 존 굿맨과 함께 호흡하는 것과 달리 영화 중반 이후의 핵심 장면인 유엔 회의 신은 오롯이 톰 크루즈 홀로 끌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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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픽 썬더> 감독 벤 스틸러, 2008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레스 그로스먼(톰 크루즈)은 이름의 뉘앙스처럼 노골적으로 불쾌한 인물이다. 극 중 오지에서 영화를 찍고 있는 배우들이 인질범에게 붙잡히지만 레스는 몸값을 치르길 거부한다. 배우가 죽건 말건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톰 크루즈에게는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었다. 대머리에 푸근한 뱃살을 한 채 두툼하게 분장한 손을 휘두르며 춤까지 추는 그의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 <디거>의 디거 이전에 레스가 있었다.